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한 7가지 요소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자신의 존재의의, 인생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의식을 가진 우리 인간이란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이 될 수밖에 없죠.
그냥 태어났으니깐 산다는 말로는 뭔가 허전합니다.
그저 생물학적인 요소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귀한 의미는 정말 없는 걸까요?
북유럽의 사회인류학자가 펼쳐낸 이 책은, 그 자신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정을 담아낸 책입니다.
2016년 암과 투병하면서 '느린 시간'을 통해 고찰할 시간을 겪게 된 저자가 자신의 풍부한 지식과 함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글로 그려냈습니다.
그 여정을 간단히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연히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그저 작가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안내를 해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안내도 솔직히 말해서 좀 불친절한 편입니다.
책의 리뷰에 내용이 어렵다는 말이 많은데, 이는 책에 함유된 지식이 어렵다기보다는 작가 본인의 설명과 예시가 다소 불친절하고 난해한 내용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르는 내용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은 넘기면서 읽는 게 더 좋을 거 같은 책이었네요.
그래도 분명, 좋은 책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부터, 책의 핵심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관계
2.결핍
3.꿈
4.느린 시간
5.순간
6.균형
7.실 끊기
첫 번째 의미는 '관계'입니다.
삶의 행복에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한 '대인 관계'입니다.
지겹게도 들어온,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생물이다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냐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상호 연관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내용이지만, 조금 더 깊은 내용들이 나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약점과 취약성을 존중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느냐다.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권리와 의무가 가득 찬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
저도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드려보겠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를 하지 않았던 저는, 그저 그런 지방대에 입학을 했고 편입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낮은 학벌에 대한 열등감과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으로 점철된 저는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했습니다.
편입에 성공하고 나서는 코로나가 터져서 타인과 교류할 기회가 박탈당했던 저는 20대 초반 ~ 중반까지의 이 긴 시간 동안은 남들보다 대인관계가 참 협소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지만 20대 초중반에 건강한 대인관계를 맺지 못했던 저는 어딘가 어색하고 어수룩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대화가 조금 더 서툴고, 배려심이 약간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원인은 결국, 20대 초~중반에 건강한 대인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죠.
대인관계는 행복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좀 더 성숙해지고 발전할 기회를 가져다줍니다.
그 기회는 인생에서 놓치면 안 될 소중한 요소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두 번째 의미는 결핍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결핍이 동기가 됩니다.
지금 내가 가지지 못했기에, 구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죠.
그 결핍은 항상 구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공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요.
"항상 구할 수 있는 것에는 가치가 없다." 어쩌면 인생의 의미에 대한 갈망은 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찾아오는 걸지도 모릅니다.
원하는 것을 즉시 얻으면 필요한 것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수익률 감소의 법칙에 따라 모든 혜택은 허공으로 증발한다.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으려면 갈망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결핍 없이 모든 것이 주어진 삶이라면, 인생을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내가 갖고자 하는 것, 원하는 모든 것이 즉시 주어지는 환경이라면 그저 쾌락을 탐닉할 뿐인 동물적인 삶만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결핍은 갈망을 부르고, 그 갈망은 행동의 동기가 되어 외부를 탐험하게 합니다.
때로는, 아니 어쩌면 자주 내가 원하는 갈망은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외부 세상은 자원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외부에 대한 탐험은 내부로 향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탐험이 발전한 것이 인문학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어쩌면 결핍은,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만든 원인일지도 모르겠네요.
챕터의 마지막에 작가님은 말합니다.
결핍은 삶의 방향성과 집중도에 필요한 요소이지만, 결핍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삶에 윤활유가 되는 마찰과 저항을 야기한다는 점일 것이다. 마찰과 저항으로 인해 당신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에 전력을 다하게 되고, 극도로 어렵지만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저항은 결국 성취로 이어진다.
결핍으로 인해, 외부에서 내가 구하고자 하는 대상과 자원을 찾게 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분명 쉽지 않은 사투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마찰과 저항이 필연히 발생하겠지만, 이 요소들은 삶에 있어 윤활유 같은 존재입니다. 저항이 있기에, 그 저항 끝의 성취가 달콤한 법이며 인생전체에 있어서 권태와 지루함을 잊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시지프스가 영원히 바위를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미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바위에 묶여서 꼼짝없이 세상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형벌이 더 가혹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고통도 성취도 없이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러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의미는 꿈입니다.
이 꿈에 대해서, 저는 좀 아리송한 게 있습니다.
당연히,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을 봤을 때 저는 꿈이, 우리가 인생에서 성취하고 싶어 하는 목표를 나타내는 걸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나오는 꿈은 진짜로 저희가 잘 때 꾸는 그 꿈이더군요.
저는 이 챕터가 이 책 전체에서 '옥에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왜 넣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서, 넘어가겠습니다.
네 번째 의미는 느린 시간입니다.
느린 시간은 말 그대로, 인생에 있어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걸 뜻합니다.
숨 가쁘게 바쁜 세상에, 우리는 쉬어가는 시간 없이 항상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바쁘면 안 하던 실수도 하듯이, 이렇게 숨 가쁘게 살면 분명 우리는 인생에서 놓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1. 세상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느리고 반복적인 요소
2. 느림은 필요불가결하다.
저도 <공공기관 취업 실패기>를 연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기간제근로를 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취업준비를 할 때 제 인생의 시간은 거의 멈추었습니다.
남들이 경력을 쌓고 앞으로 나아갈 때, 저는 멈춰서 저 자신을 돌아봤거든요.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제게 올바른 방향을 다시 한번 탐색할 수 있었고,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 '느림'이 있어야, 다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기 마련입니다.
작가는 일상 속에서 '느림'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산책을 권유합니다.
산책은 느리게 걸으며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는 행위이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산책을 좋아한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야말로 어느 누구 못지않게, 본인의 내면을 항상 마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느림은 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이게 바로 '순간'을 포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바빠서 놓쳐버리는,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하는 상태는 '느림'에서 오니까요.
그래서, 다섯 번째 의미로 '순간'이라는 챕터가 책에서 바로 전개됩니다.
이 순간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하루 전체의 기분을 좌우하기도, 어쩌면 내 인생 전체의 방향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3분 동안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1시간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그 강렬한 순간이 나의 몇 시간을 지배하기 때문인 것처럼요.
순간의 행복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으로 남아서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열심히 일하려는 직장인이 한 예시가 되겠지요.
인생이 의미로 가득 차려면, 행복한 순간이든 무언가를 성취한 순간이든 긍정적인 의미의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여섯 번째 의미는 '균형'입니다.
균형은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중요합니다. 운동도 휴식이 당연히 있어야 하며, 워커홀릭도 집에서 쉬는 시간이 분명 있어야 합니다. 맛있는 요리도, 짠맛, 신맛, 단맛, 감칠맛 사이의 완벽한 균형에서 나타납니다.
불교의 교리도,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을 제시하는 것처럼요.
이 균형은 조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요소들은 대부분 음과 양처럼 양극단을 가지고 있고, 이 극단이 조화를 이루어야 우주가 유지됩니다. 초식동물만 존재하는 생태계는 곧 멸종의 길을 걷게 되듯이, 양극단 모두를 적절하게 취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하겠네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극단에 몰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쁜 시기에 직장인은 철야를 하면서 야근을 해야 하고, 수험생들은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공부에 집중해야 하죠.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도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면 사람은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철야를 마친 직장인은 휴가를 가야 하고, 시험에 합격한 수험생은 그동안 못 만났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며 다시 건강한 대인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극단에 치우친 삶은 곧잘 무너져 내려서,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의미는 '실 끊기'입니다.
작가님 본인이 암에 걸렸을 때, 암환자를 위한 병동에 있었을 때의 경험으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즉, 이 실 끊기는 죽음을 뜻합니다. 죽음이 오면 모든 것을 끊어내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이를 '실 끊기'로 비유한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결국 죽음이고, 죽음이 있어야 삶의 의미가 부여되기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며, 그 끝의 순간을 우리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삶을 부정하는 사람은 있어도,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의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되며 항상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하여 끝이 납니다.
인생은 의미로 가득 차 있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작별을 고하고 그동안 쌓아온 실이 성장하고 번성하도록 놓아주어야 하는 시간. 나의 생각을 부처님의 생각과, 우체부를 참나무와, 게를 아귀와,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머와 연결하는 시간. 그래야만 원이 완성된다.
원은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습니다.
즉, 그 자체로 순환을 나타내는 도형입니다. 삶으로 의미하면, 시작과 죽음은 결국 같은 점에서 출발한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요? 죽음은 끝이기도 하지만, 시작이기도 합니다. 죽음이 없는 삶은 시작이 없으며, 의미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삶이 유한하기에, 우리는 무한한 의미를 추구하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부여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끝나지 않는 영원의 삶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의미를 추구할까요? 끝이 존재하지 않는 삶 속에서는 모든 예술마저도 그 빛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예술은 불멸성을 꿈꾸는 마음에서 출발할 텐데, 그 불멸성이 주어졌다면 출발점부터 사라질 테니까요.
작가님이 말하는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결국, 끝이 있기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거 같습니다. 작별이 있기에 우리는 성숙할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슬프지만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이 내려놓음이 있어야 우리 생명은 순환할 수 있습니다. 그 순환과정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내 삶은 비록 찰나일지라도 분명히 흔적을 남겼을 겁니다. 그 흔적은 누군가에겐 보잘것없거나 아무 의미 없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이 삶을 살아간 징표입니다.
그 징표들. 내 삶의 모든 고군분투와 나아가려 노력했던 투쟁.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도덕적인 사투 등. 이 모든 흔적들이야말로, 내 삶의 의미가 된다고 말하는 거 같습니다.
즉,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고자 하는 그 과정들 모두가 내 삶에 의미 있는 순간들이라는 게 아닐까요?
내 삶에 종지부를 찍는 그 순간에는, 인생의 모든 과정을 되돌아보며 "내 삶은 의미가 있었는가?"를 스스로 묻게 되겠죠. 그때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선, 내 인생을 의미 있는 순간들로 채워나가야겠습니다.
평생을 쾌락과 재미를 좇아 살았다면,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일이 고통스럽고 어려울 것이다. 목표가 없고, 쌓이지도 않고, 성취에 이르지도 못하는 활동으로는 삶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쾌락은 끝이 없는 행위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봤자, 독은 절대 차오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항상 아쉽고 갈증을 느끼며 더욱 큰 쾌락을 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갈망이 존재하는데, 죽음이 문득 나타나면 당연히 작별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인생에 착실하게 물이 가득 찬 독을 만들어놨을 겁니다.
마침내, 드디어 자신이 목표한 독들을 다 채우고 났다면,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에 웃으며 작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그저 죽음을 잘 맞아들이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키에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 이르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다르게 주장한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존재와 욕망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벌거벗은 유인원도, 세력을 주장하는 존재도, 연대하는 생물도, 잔인한 포유류도 아니다. 무엇 하나로만 규정지을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존재다.
가위라는 존재는 애초에 본인의 쓰임이 정해진 존재입니다.
무언가를 자르기 위한 행위만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그 쓰임을 못하면 폐기 처분되는 존재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비록 외부의 환경이나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영향을 받는다 한들, 결국 자기 스스로 선택을 해서 삶을 꾸려나가는 존재입니다.
그 선택은 본인의 욕망에 따라 당연히 선택을 할 것이고,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선택을 책임져야 합니다.
선택으로 인한 이 일련의 과정은 곧, 나 자신을 정의하게 됩니다.
인간은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걸어 나가는 존재이며, 그 길은 본인의 존재 의미를 나타내는 활로입니다. 내가 걷고자 선택한 길이 바로 나를 규정하며 그 길이야말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데이터는 통계나 언어로 옮겨질 때 정보가 되고 정보는 더 큰 맥락에 놓일 때 비로소 지식이 된다.
처음의 무질서한 데이터는, 방향과 질서가 정해지게 되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됩니다.
이것을 삶에 대입하면, 목적 없이 그저 걷기만 하는 것은 방황이고 어찌 보면 동물과 같은 삶입니다.
숨만 쉰다 해서,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고 하지 않으며 더욱이 사람의 삶이라고 칭하지도 않습니다.
내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걷는 사람만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득하다.
세상에 답들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을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 지혜를 통해서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인생을 정의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삶에서 나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우선은 질문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질문으로부터, 내 인생의 모든 길이 시작될 테니까요.
좋은 책인 건 알겠는데, 내용 전개가 솔직히 좀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A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B로 넘어가는 방식이 좀 많았던 거 같습니다.
같은 주제 아래의 내용이긴 하지만, 뜬금없는 내용들도 자주 나오고 그렇게 친절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인문학이 원체 다양한 지식들이 많다 보니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이 책은 특히나 좀 더 그랬던 거 같네요. 책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내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사유가 좀 많이 들어가다 보니 뜬금없는 흐름이 많이 나타나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세 번째 챕터에서 뜬금없이 인공지능과 백일몽, 기후변화 관련 등등에 대한 내용은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좋은 책은 맞는데 잘 쓰인 책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내용들이 많지만, 뜬금없이 나타나는 맥락 없는 내용들이 정말 주제와 연관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딱히,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친절하게 정리된 책은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네요.
책의 표지에 "나 자신과의 대화"라고 적혀있던데, 평소 저의 맥락 없는 의식흐름을 생각하면 또 맞는 거 같기도 하고요?
다소 불친절하고, 뜬금없는 내용이 많이 나와서 읽는데 힘들긴 했으나 분명 좋은 책은 맞습니다.
책 곳곳에 작가님의 통찰이 담긴 문장들이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분명, 그 자신의 인생을 통해 알아낸 지혜가 박혀 있기 때문이겠죠.
INTRO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책을 읽는다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 책은 정답지, 해설서가 아니라 그냥 참고서일 뿐이거든요.
사실, 인생의 의미는 그 어떤 책으로도, 그 누가 대신해서 찾아 줄 수도 없습니다.
인생의 의미야 말로, 우리 모두가 부여받은 본인이 스스로 독학해서 찾아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집입니다. 내가 이 삶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내일 당장 죽음이 존재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건 대체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답을 못 찾아도 인생을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목표 없이 그저 일상을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것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칠 겁니다.
발전과 성취 없는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의식을 가진 우리들에게 그보다 더한 고통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의 내 삶이 너무 공허하다면, 방향과 의미를 상실했다면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이상으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