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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Nov 16. 2024

제4화. 첫걸음은 조심조심!

  나는 일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해마다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궁금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 반 아이들과 소통을 잘할까 고민을 하게 된 것이 모둠일기를 쓰게 된 계기이다.

특수학급 담임을 맡게 된 후에는  모둠일기를 쓰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궁금하였다. 짧게라도 표현하게 하고 싶어서 감사일기를 쓰게 하다가 지금은 세줄일기를 통하여 포토문집처럼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연말에 인쇄하여 주면 좋은 선물이 된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특수교사로서 초임 5년 동안 일기를 썼다.

처음 신설되는 한 학급에 6명으로 시작하여 내가 그 학교를 떠날 때는 특수학급 3 학급이 되었다.  통합반 영어교사로서 21년을 보내고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내 자신이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었으니, 특수교육에 대한 선입견도 없었고 별로 두려울 게 없었다. 우리말로 ‘ 모르면 용감하다.’고 내가 생각한 대로 막 부딪혀서 관리자와 충돌하기도 하고 꿈은 많았으나 지금 생각하니 서투르고 많이 어설펐다.

기억을 더듬어 한 화에 일 년씩 초임 5년 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미니홈피의 방명록에 ‘새 글이 등록되었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내 휴대폰에서 들린다. 

싸이월드 홈피에 들어가 보니 현주(가명)가

 “쌤! 방학 어떻게 보내세요? 제 홈피에 놀러 오세요”

라고 글이 등록되어 있다. 들어가 보니 새로운 사진과 한창 관심이 많은 다이어트와 남친 얘기도 있고...

‘그래, 그래! 현주야! 네가 잘 살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구나’


  현주는 2006년 전문계 학교에 특수교사로 부임하여 첫 해에 가르치고 취업한 학생이다. 졸업한 지 3년이나 되었는데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가 보내주신 참기름을 들고서 찾아오는 정이 많은 사랑스러운 제자이다. 교직 생활하면서 일반계 고등학교나 중학교에 주로 근무하였는데 2006년 농업 전문계 고등학교에 신설된 특수학급에 근무하게 되었다. 특수학급이 신설되느냐 마느냐 학교, 동창회 등에서 많이 반대하여 어색한 분위기에서 부임하게 되어 상황을 살펴보니 두서가 막막하였다. 교실도 없어서 2층 상담실을 급히 개조하여 세면대도 없이 학생들 책상, 교사 책상을 넣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조금씩 교재를 구입하였다.

  차츰 학교 사정에 익숙해지고 보니 급한 문제점이 나타났다. 우리 학생들은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취업이나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선례나 프로그램이 없고 사실은 나도 직업교육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신변처리와 기본 생활 습관, 중학교는 기본적인 학업, 고등학교는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훈련과 진로 문제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당장 3학년 현주를 졸업시키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며칠 동안 계속 고민하였다. 매일 아침, 우리 반 교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출근하면 방실방실 웃으며 다가와

 “선생님 사랑해요!”

하며 껌을 한 개씩 주는 정말로 다정다감한 학생이다. 외할머니께서 부족한 자신의 딸을 대신하여 외손녀를 지금까지 외가에서 키워주시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 간담회 할 때 외할머니께서

“선상님! 우리 현주는 간단한 일거리 해서 돈 좀 모아서 서른 넘어 결혼시키면 제 할 일 다 한 것 같은데... 꼭 우리 학생을 잘 돌보아주어서 그렇게 해 주세이. 선상님만 믿니데이.”      

  현주의 생활 능력과 학업 능력을 검사해 보니 진학은 조금 어려울 것 같고 훈련만 체계적으로 받으면 취업할 수 있다고 확신이 들었다. 주말에 H면에서 이곳 버스터미널까지 와서, 다시 학교로 시내버스를 바꾸어 타고 기숙사에 오니 통학도 잘하고 있었다. 눈썰미도 제법 있고 컴퓨터도 간단한 한글 작업과 미니홈피에 스크랩해서 올릴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되고, 기숙사 생활을 3년 하는 동안 교복 세탁과 신변 처리 등이 능숙하게 되었고 주말에는 나이 드신 외할머니의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니 취업하면 잘 해낼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미소반 시간표를 짜려니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 학교 교육 과정은 1학년 때 국민 공통기본 교육과정을 하고 2, 3학년은 전공심화 과정을 하게 되어 있었다. 학급이 신설되며 특수교육 대상자를 모두 미소반에 모으니 3학년 원예과 여학생 1명, 2학년 식량과 남학생 2명, 1학년 원예과 여학생 2명, 식품과 남학생 1명으로 대부분 2,3급의 지적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모두 7명인데 전에는 국어, 수학, 영어 시간에는 우리 반에 오고 그 외 시간은 통합반에 배치하였는데, 2학년이 되면 전공에 따라 식량 재배, 축산, 원예, 조경, 농업 기초, 식품과학 등 그런 과목을 배우고 국, 영, 수를 비롯하여 사회, 미술, 음악 같은 과목이 아예 없었다.

  3학년이 되면 심화과정으로 2학년 때 배운 전공과 다르게 컴퓨터 실무를 선택하면 하루 종일 실습실에서 컴퓨터를, 식품조리를 선택하게 되면 역시 종일 조리실에서 제과나 요리실습을 하게 되어 있었다. 더욱 고등학교는 내신 때문에 출결을 엄격히 관리하고 실습이 많아 학생 파악이 중요함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1~3교시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는 통합반에서 교육을 받고 4교시에서 7교시까지 모두 우리 반에 와서 수업을 받도록 시간표를 계획했다.

  모두 모여 수준별로 전체 수업을 하니 장점은 서로 함께 있으니까 협동수업을 하고 친해진다는 것이고, 단점은 한 시간에 한 학생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힘드므로, 전체가 할 수 있는 수업을 자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주에게 직업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 고민하며 여러 정보를 찾고 있을 때 우리 학교가 마침 교육부 지정 산학연계 시범학교로 각 과별로 직업기초 능력 신장이란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하게 되었다. 각 과별로 계획서와 수업지도안도 짜게 되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특수반 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가 없어서 힘들었지만 여러 자료를 모으다가 시에 복지관이 없어서 북후면에 있는 경북 장애인 종합복지관에 문의하게 되었다.      

  원래는 집에 있거나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들에게 숙박을 하는 조건으로 직업 훈련을 하는데 부탁을 드리니 복지관 재활팀에서 흔쾌히 직업 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3월 말에 ‘매주 목요일 주 1회 우리 반 학생들 모두 데리고 경북 복지관에서 직업적응 훈련을 받겠다.’ 하고 결재를 받았다.

  한 국가도 대통령께서 어떤 국정 운영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듯이, 학교도 경영자가 특수교육에 대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 학교의 특수교육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장애이해 교육이 전혀 없는 학교여서 물론 각오는 했지만, 한 가지 일을 추진하면서 곳곳에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말씀 “통합교육인데 통합반과 똑같이 해야지 왜 특수학급은 교재장이 필요하냐?” 우리 학생들이 특별한 교육적 배려가 필요해서 특수반에 왔는데 가장 기본을 이해 안 해 주시니 가슴이 콱 막힐 수밖에... 신설 학급이라 결재 맡을 일은 많은데 특수반 일은 모두 다 쉬운 결재가 아니라서 거기에 받는 스트레스. 우리 학교 예산이 아니고 도 교육청 예산인데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또 설명드렸다.

“교실에서 가만히 수업하면 저도 제일 편하지만 이런 것이 우리 학생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고 진짜 필요한 교육과정입니다.”

“목요일에 선생님은 왜 교실에서 수업을 안 하느냐? 특수반 선생님이 직업교육을 왜 혼자 못하느냐?” 학생을 이동하여 행사하는데 따른 안전 문제와 학생들 식사, 북후면까지 교통 문제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한 가지 한 가지 설득하고 또 부탁하여 결국 주 1회 복지관에서 차량을 지원받고 직업적응훈련을 받게 되었다.

  팀장님을 비롯하여 복지관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고 미리 훈련받던 훈련생들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해지고 잘 적응하게 되었다. 시험이나 체험 학습 등 학사 일정과 겹치지 않는 한, 매주 가서 훈련을 받았는데 주로 한 일이 자동차 부품 조립이었다. 플라스틱 모형에 고무테를 깔끔하게 끼우는 일인데, 처음에는 속도도 느리고 모양도 안 예뻤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솜씨가 늘어갔다. 다 완성한 것을 10개씩 모아서 케이스에 넣고 나중에는 큰 박스에 넣는 것이었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고 주 1회였지만 일 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학생들도 나도 직업교육에 좀 더 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복지관에서 한 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으로는 부품 조립과 선물 포장하기, 버섯 채취, 동사무소 민원서류 발급받기, 미장원 가서 머리 손질하기, 기차 타고 의성 복지관 견학하기, 이력서 쓰기, 축구와 등산 등이 있었다.


  복지관에 가서 교육받으면서도 직업교육이 부족한 것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우리 학교가 전문계 학교이니 잘 활용하면 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친한 선생님 명단을 뽑아서 개인적으로 우리 반에 봉사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쭈어 보고, 승낙하시면 전문 부장님께 상의하여 교내 체험학습을 결재 맡았다.      

  체험학습 내용으로는 교내 동아리 활동이 왕성한 풍선 공예, 비즈 공예, 쿠키 만들기, 꽃꽂이와 꽃 포장, 중장비 등이었는데 그 선생님 여유 시간에 우리 반에서 수업을 받도록 했다. 그 수업을 받으면서 꽃 포장, 비즈 공예, 풍선 공예 등은 간단히 배울 수 있어서 나도 나중에 더 심화할 수 있도록 계기가 되었다.

  특히 중장비를 가르쳐 주신 김 선생님은 겁도 많고 잘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우리 반 학생들에게 격려해 주시며 굴삭기, 지게차, 포클레인 등 모든 기계 차 종류를 한 번씩 다 타 보게 해 주셨다. 옆에 도우미 학생들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기다려서 성공 경험을 가지도록 해 주셔서 지금도 김 선생님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다.


  연말에 학생들의 감사편지와 조그마한 선물을 돌렸다. 시간이 흘러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사일정을 보니 우리 학교는 현장 체험 학습을 과별로 1년에 2~3번 가는데, 시기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니 특수학급이 생기기 전까지 체험학습에 아예 불참한 학생들도 있었다.

  통합반 선생님들이 특수 교사가 없는데 우리 반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3학년 자영과 학생들은 졸업여행 겸해서 제주도로 체험학습을 가는데 현주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현주네 반 담임선생님은 작은 오빠와 동창이어서 내가 부탁도 많이 하고 도움도 받았는데 고맙게도 선뜻 현주를 제주도 3박 4일 체험학습을 갈 때 데리고 가 주셨다.

  전공과마다 체험학습 시기가 달라서 학생들은 숙박하는 체험 일정에는 엄두를 못 내었다. 못 가거나 남아 있는 학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내 교육철학은 무엇인가? ‘인생도 삶의 질이 있고 행복이 있듯이 교육의 목표는 Happiness 행복이다. 학교에 와서 행복해야 한다.’ 

  학부모 모임에서 “한 글자 더 아는 것보다 학생이 좋아하는 것 행복해하는 것에 초점을 두겠다.”라고 첫 모임에서  결국 심사숙고해서 정도가 제일 심한 식량과로 우리 반 학생 모두를 한 곳에 체험학습 보내고 숙소도 따로 한 실을 배정받아 특수학급 교사가 책임지고 숙박하게 되어 해결되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거쳐 전공과가 달라 경비 배정 문제가 있고 절차가 복잡해졌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체험학습을 같이 가게 되어 좋은 추억을 남기고 왔다.     

 

  2학기가 되자 전문계 학교의 가장 큰 행사인 전국 전진대회가 우리 학교에서 개최하게 되어 우리 반이 휴게실로 지정되어 또 이사하고 결국 2층 남학생 화장실 옆 지금 교실로 정착하기까지 일 년에 3번의 이사가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끝까지 설득하여 바닥공사와 싱크대가 설치되었고 치수 재어서 짜 맞춘 교재장, 나란히 한 면에 배치한 새 컴퓨터 비록 다른 곳에서 사용하던 것이지만 소파와 탁자 등 내가 원하는 대로 하드웨어가 완성되었다.

  이젠 좀 더 알찬 수업과 내실 있는 소프트웨어를 내가 채워 넣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의욕을 가지고 학생들과 생활하다가 11월에 복지관에서 ‘장애인을 위한 취업 박람회 ’가 개최되었다. 18명 채용에 300여 명이 왔는데 운이 좋게도 현주는 이력서를 제출했고 유온 복지 재단 나눔 공동체의 입사 면접을 통과하였다. 현주의 전공이 원예과였는데 적성에 맞게 그 회사에서 하는 일이 색깔별로 있는 새싹채소를 종류별로 넣어서 포장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근무는 12월부터 하였는데 통합반 선생님과 몇 번 방문해 보니, 갈 때마다 아직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회사의 모든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깨끗한 건물과 소음도 없고 쾌적한 환경이어서 현주 외할머니랑 견학하고서 안심하고 돌아왔다.

  나이가 제일 어려 회사 내에서 많이 사랑도 받고 주임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며 잘 따른다고 했다. 집이 시내가 아니라서 시외버스를 타고 S여고 앞에서 내리면, 회사 셔틀버스가 와서 태우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할머니 집까지 가는 통근 경로를 외워서 잘 다닌다고 하니 많이 칭찬해 주었다. 대우도 4대 보험을 가입해 주고 통근버스와 중식을 제공하고 85만 원 정도이니 괜찮은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가끔 전화를 주시는데 한해에 천만 원 정도 모았다고 자랑하셨다. 취업하고 꽤 오래 직장을 다녔고 가끔 문자 메시지도 보내주고, 홈피에 소식을 전해주니 나에게는 정말로 고맙고 기쁜 일이다.     


지금은 30대 중반이 되었을텐데 잘 살고 있을꺼야....


첫걸음은 조심조심, 현주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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