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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인생 Feb 28. 2024

해외 출장: 현실과 로망 사이

해외가 아닌 출장이 중심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나에게는 세 가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중에 한 가지는 이루었고, 나머지 한 가지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고, 마지막 한 가지는 지금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가 이룬 꿈은 바로 해외 출장을 자주 가는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상 해외에 자주 출장을 갈 수 있는 직업을 갖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무역학과가 사라지고 국제통상? 글로벌경영? 이렇게 바뀌었던데 내가 졸업한 학과가 사라져서 아쉬움은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직업이나 직장에 대해 잘 모르니 해외 출장을 자주 가려면 무역회사를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역학과에 진학을 했다. 결론적으로 무역회사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외국계 글로벌 패션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해외 출장의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었다.


직장생활이 힘들었고, 항상 힘들긴 하지만 원하는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직장 생활에 후회는 없다.




외국계 패션회사는 언제, 무슨 일로 출장을 갈까? 부서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표적인 출장은 신상품 론칭 관련 출장이다. 회사마다 달라서 내가 경험한 회사들을 기준으로 보편적으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외국계 패션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일 년에 2번(SS, FW - SpringSummer, FallWinter) 해외 본사 또는 본사에서 지정한 지역이나 도시로 출장을 간다.


예를 들어, 2025년 SS(봄여름)에 국내에 판매할 제품에 대한 품평회 겸 수주를 하기 위해서 2024년 5월경에 해외 출장을 간다.


출장을 가면, 2025년 SS에 전 세계에 출시될 패션 제품들이 테마별로, 콘셉트별로 잘 진열되어 있고, 보퉁 2박 3일 정도 일정으로 내년에 출시될 제품들에 대해 본사 PM(Product Manager)들로부터 설명을 듣는다.


주로, 해당 제품의 출시 콘셉트, 포인트, 마케팅 플랜 등 다양한 정보를 전달받고, 실제 우리나라에 어떤 제품을 얼마나 들여와서 팔 것인지를 결정하며, 때로는 이런저런 수정 사항을 요청하기도 한다. A 제품의 칼라를 추가해 달라든지, 동양인의 스펙에 잘 맞지 않으니 소매를 좀 짧게 해 달라든지 하는 요청들이다.


그리고, 미팅 일정이 끝나면, 본사에서 주최하는 저녁 모임에 참석한다. 저녁은 보통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된다.


미팅이 끝나고, 공식적인 일과가 끝났다고 출장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내년 신상품에 대해 품평서를 제출해야 하고, 얼마나 수입할지에 대해 Forecasting(예측)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미리 준비해 온 전년도 데이터, 매장 오픈 계획, 필요 물량과 SKU(Stock Keeping Unit), 매입 예산 등을 고려하여 작성해야 한다.


브랜드에 따라 Forecasting 자료 제출 마감을 귀국 후 일주일 후 정도로 여유 있게 주는 경우도 있지만, 출장 기간 내에 바로 제출하도록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주로 밤을 새워서 일한다. 품평회 마치고, 저녁 먹고 호텔에 들어와서 밤 10시부터 일하는 것이다.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으로 출장을 가니 시차가 안 맞아서 잠은 잘 안 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처음에 해외 출장을 갔을 때는 해외 현지에서 일정을 마치고 짧게라도 현지 도시를 둘러보거나 여행을 할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번은 미국 보스턴으로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품평회 및 회의 행사 장소가 보스턴 시내가 아닌 보스턴 외곽이었다. 지금도 정확히 거기가 어디였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내 생에 제일 힘든 출장이었는데, 그만큼 기억에 남는 출장이었다.




서울(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 일정이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출장 가서 필요한 자료들(판매 데이터, 재고 데이터 등)을 출력하고 준비하느라 출장 전날 잠을 거의 못 잔 상태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비행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창밖을 보며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아침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로 보스턴으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아니라 시내 매장을 몇 군데 둘러보고 밤 9시에 보스턴으로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슬슬 피로가 밀려왔지만 출장 일정을 잘 소화하고 밤 9시에 보스턴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정확히 기억은 아나지만 비행시간이 5시간 내외였는데, 동부로 갈수록 시차가 달라져서 보스턴에 도착하니 새벽 5시였다. 비행기에서 2일을 보낸 것이다.


더 최악은 호텔에 도착해서 짐 정리하니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8시부터 출장 일정이 시작이었다.


생각해 보라. 한국에서 비행기 타기 전날 밤새고, 비행기 10시간 타고, 하루종일 매장 돌아다니고 밤 비행기 타고 도착해서 바로 회의 일정 시작이라니. 침대에 누워본 게 며칠전인지 모르겠고,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피곤했다.


저녁 식사 일정까지 마치고, 그냥 침대에 쓰러졌다. 출장 일정은 그 이후로도 2일 동안 계속되었고, 2박 3일의 출장일정이 끝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경기도 보고 싶었고, 하버드와 MIT 캠퍼스도 가보고 싶었고, 랍스터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보스턴 외곽 어딘지도 모르는 호텔에서 회의하고 먹고 잠자고만 반복하다 귀국한 것이다.




물론 모든 해외 출장이 그런 것은 아니다. 조금 여유 있는 출장도 있고, 회사마다 다르지만, 출장 갈 때 개인 연차를 써서 자유롭게 더 머물다 오도록 배려해 주는 회사도 많다. 하지만, 6개월의 매출을 책임질 중요한 회의를 위해 출장 가면서 개인 시간을 여유 있게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여유 있고 즐거운 출장은 바로 시장조사 명목으로 거래처와 함께 가는 출장이다. 사실 말이 출장이지 거래처 분들에게 해외 본사 및 매장을 보여주고 투어 하는 성격이라 스트레스가 덜하고 시간도 여유롭다.


어떤 형태의 출장이든 중요한 것은 해외 출장은 '해외'가 초점이 아니라 '출장'이 초점이라는 것이다.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 회사에서 비행기표와 호텔, 그리고 경비를 제공해 주는 것이지 해외에 놀러 가라고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생각한다면 해외 출장에 대한 환상은 조금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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