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을 목격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물 한잔으로 입을 헹구어 낸다.
TV에서 드라마가 끝날 즈음 섞여 나오는 광고는 곧잘 커피 광고이다. 드라마와 커피는 잘 어울리나 보다.
언제나처럼 잘생긴 남자배우는 맛있다며 나처럼 마셔보라했고, 그가 맛있다던 봉지커피 하나를 골라 송곳니로 윗자리를 잘근 물어 뜯어내어 오늘 새벽과 어울릴 듯한 맘에 드는 잔에 흩어 뿌린다.
어느새 부글부글하더니 이내 치익 소리를 끝으로 전기포트 주둥이는 증기기관차의 출발신호처럼 하얀 수증기를 뿜어낸다.
맞은편 아파트 불 켜진 곳은 두어 군데.
창가에 서서 멍하니 아래를 보긴 하나 5시가 되지 않은 너무 이른 시간인지 새벽일하는 경비원도 보이질 않는다. 밤사이 비가 내렸는지 가로등 밑동 근처에는 잔잔히 메말라가는 물가에서 가로등 불빛이 흔들려 보인다.
손아귀에 잡힌 커피잔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따스함을 느낄 때 저 멀리 아파트 정문으로 옅은 노란색등을 켠 차 한 대가 소리 없이 들어온다.
몇 개 동을 지나오면서 멈췄다 움직였다는 반복 하더니 내 발 끝선 즈음 2호 경비실 앞에 멈춰 선다.
운전하던 사람은 먼저 내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서너 호흡이 될 때쯤 뒷자리에서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한 손에는 윗도리를 쥐고 또 한 손으로는 문을 부여잡고 힘겹게 내려선다.
잠시 흔들거리는 다리로 보아 꽤나 취해 보였다. 어떤 좋은 일이 있던 걸까? 아니면 어떤 괴로움이 있어 지금 이 시간까지 술을 마셨을까? 그래도 음주운전은 하지 않으려 대리운전으로 집까지 왔으니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남자는 지갑에서 몇 만 원으로 보이는 지폐를 세어 대리기사에게 건넨다.
조용한 새벽이고, 또 언젠가 들은 '소리는 아래에서 위로 전달이 잘 된다'는 과학적 이유 때문인지 대리기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괜찮으시겠어요?"
남자는 손을 부채질하듯 흔들며 "수고하셨어요. 괜찮아요." 하며 술 냄새를 뿜어낸다.
대리기사는 몇 걸음 물러서더니 "고맙습니다." 하며 버스정류장 쪽으로 서둘러 움직인다.
아마도 늦은 귀가이거나 마지막 새벽 손님 콜을 받아 한 푼이라도 더 벌려하겠지.
내 커피 잔의 향은 어느새 남자가 여태 마신 술 내음으로 가득 차 버렸다.
처음처럼, 카스, 밸런타인 그리고 다시 처음처럼
남자는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좁은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찼고, 저기 먼발치도 이중주차가 되어있어 빈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아직 흔들리는 다리로 보아 운전하기는 어려워 보였으나 남자는 망설임을 보이지 않았고 운전석에 앉더니 천천히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그사이 식어버린 커피잔의 마지막 한 모금은 얼음물처럼 차갑고 질겨버린 쑥 줄기인 양 쓰디쓴 맛으로 변했다.
잠시 후 지하주차장 계단등은 흔들리는 남자를 걱정하며 있는 힘껏 불을 밝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남자는 윗도리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바지주머니에서 꺼낸 300원짜리 라이터를 칙하고 불을 내어 허연 연기로 술 냄새를 지워내려 한다.
남자는 맞은편 아파트로 들어섰고 나의 눈은 계속해서 남자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5층 계단불이 켜진 후 이내 남자의 집안 불이 켜진 것을 봤다.
아쉽다. 많이 아쉽다. 대리기사가 지하주차장까지 안전하게 주차를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신문 귀퉁이에서 보이는 아파트 주차장 음주운전 기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자의 음주운전 버릇은 머지않아 또다시 보게 될 것이다.
남자여 운이 좋았다. 다음 목격자가 내가 아니길 바라마지 않는다.
사진 빌려온 곳: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