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막 못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죠?
몇 년 전 한 친구의 영업으로 우리 사이에 핫했던 립틴트 팩. 입술에 20-30분 얹어놓고 있다가 떼어내면 입술에 그대로 색이 남아 우리끼리 '립타투'라고 불렀다. 밤에 이걸 해놓고 자면 다음날 하루종일 틴트를 안 발라도 된다며 좋아했다. 편하고 예쁘다며 파마약 같은 고약한 냄새도 참고, 성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용했다.
요즘은 실제로 '입술타투'가 있다. 립스틱이나 틴트를 바르지 않은 '쌩얼'에도 생기 있고 예뻐 보이는 입술을 위해 입술에 색을 입히는 시술이다. 쌩얼을 예뻐 보이게 하는 다른 시술로는 눈썹문신이나 속눈썹 연장/펌 등이 있겠다. 그뿐인가. 요즘은 겨드랑이/팔/다리 제모 레이저 제모는 필수고, 심지어 브라질리언 제모까지도 너무나 활성화되어있다. 동네의 어떤 샵에서는 '안 걸리는 화장', '월경 시 쾌적' 등의 멘트로 청소년들을 겨냥한 영업을 하고 있어 기가 막히기도 했다.
성형이나 화장, 네일아트나 패디큐어 등의 드러나는 꾸밈을 제외하고도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화장으로 예쁘게 꾸미는 것은 당연하고, 화장이 없을 때의 쌩얼까지도 예뻐야 하고, 얼굴을 제외한 몸 구석구석까지 모두 하얗고 예뻐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에 반대하면서도, 세상에는 예쁜 여자가 너무 많고, 나도 안 예쁜 여자보다는 예쁜 여자가 되고 싶고. 그렇게 눈썹문신이니 속눈썹펌이니 레이저제모니 그런 것들을 하면서 살았다.
근데 한 연애프로그램에서, 어떤 남자 출연자가 "형, 근데 제가 막 못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죠?"라고 묻는 거다. 진짜로 못생긴 사람이 저렇게 물으니 더 화가 났다. 남자들은 왜 자기들이 못생긴 걸 모르지?????
여자 초등학생들은 저학년들부터 '다이어트한다'는 말을 달고 살고, 다이소에서는 온갖 화장품을 산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올리브영에서 온갖 화장품과 제모크림 같은 걸 산다. 엄마랑 얘기가 통하는 애들은 피부과나 클리닉에서 팔/다리/겨드랑이 제모를 받기도 한다. 수능이 끝나면 쌍꺼풀 수술을 한다. 네일아트나 속눈썹 연장, 피부관리 등을 받는 건 취향이다. 나이가 더 들면 보톡스나 주름 필러, 기미미백 관리나 아이라인 문신 등으로 넘어가겠지.
적지 않은 비율의 여성이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어떤 남자는 죽는 그날까지 자신의 못생김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고들 들은 것 같다.
진짜로 누가 잘생겼고 못생겼고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에 따라 일생을 통해 받는 '메시지'가 다르다는 문제다.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의 메시지가 아직도 너무 강력한 건지, 혹은 나라는 개인이 메시지를 너무 강력하게 체화한 건지 여전히 꾸밈노동에 많은 시간 할애하는 내가 문제다. 아니,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메시지가 문제다.
립틴트팩은 어떤 의식이나 사명감으로 버린 건 아니고, 오래돼서 버렸다. 이제 사용하지 않아서 버렸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며 만났던 (거의 모든) 남자들은 모두 나를 쌩얼로 만났는데, 나는 왜 늘 내 쌩얼에 자신 없어하고 부끄러워했을까? 립틴트팩과 함께 쌩얼에 대한 부끄러움을 버려야겠다. 내가 막 못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