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버려도 추억은 못 버리겠어서요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독립이 하고 싶었을 뿐이다.
30대가 되었으면 독립을 해야지. 이립(而立)이지 않은가 이-립. 제 몸 뉘일 곳은 자기가 구해 자기 인생 살아야지.
빠른 년생이라 친구들이 30살이 된 2021년에도 30살, 친구들이 31살이 된 2022년에도 이제 진짜 30살, 친구들이 32살이 된 2023년에도 이제 진짜 만으로 30살을 살았다. 2023년 2월 14일 만 30살 생일이 지나고 나니 이제 더이상 비빌 구석이 없없다.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년간 고질적으로 앓아온 '독립병'이 도질 때마다 전세방이든 월세방이든 보러 다녔다. 집과 직장이 차로 20분 거리임에도 그냥 방을 보러 다녔다. 아빠가 그렇게 가성비 떨어지는 선택이 없을 수가 없다고 말려도 보러 다녔다. 그렇게 몇날며칠 방을 보러다니고 집에 돌아오면, 내 집(은 아니고 부모님 집) 내 방 만한 곳이 없더라. 그 코딱지만한 원룸에는 저 커다란 TV도, 소파도, 에어프라이어도, 커피머신도 없잖아..
몇년을 방을 보러다니고 - 포기하고 - 방을 보러다니고 - 포기하다가 올해 초엔 정말 나갈 결심을 했다. 월세방을 보러 갔는데, 이번엔 직장동료이자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갔다. 우리집 바로 앞에 있는 공원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5분 정도 떨어진 동네의 한 빌라로 분리형 원룸을 보러 갔다. 공인중개사와 집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더니 그제서야 '이 집은 아가씨가 들어갈 그 집은 아닌데- 구조가 똑같은 바로 옆집'이라고 소개했다. 집은 마음에 들었다. 원룸치고는 부엌도 크고, 방도 넓직하고, 베란다도 있고. 주차공간도 널널하고 보증금도 저렴했다.
그 집을 나서며 '내가 살게될 옆집'을 보려 발을 돌리자 집주인 아주머니가 "거길 뭐하러 봐! 내려가! 지금 봤잖아! 다 똑같아!"하며 나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주차장에 서서는 가계약과 본계약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사실은 이 집 명의가 내 아들과 며느리고, 나는 관리하는 사람인데 계약 때 우리 아들며느리는 못 온다'고 했다. 평일엔 일하느라, 주말엔 공부하느라 서울에 있는 아들며느리 내외가 절대로 여기는 못 내려온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아가씨가 아가씨 혼자 들어와 사는 것 같아서 당부하는데, 아까 본 그 옆집도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 혹~시나" 까지 말씀하시길래 나는 젊은 여성 1인 가구의 안전을 걱정해주시려는 줄 알았다.
"남자친구든 누구든 데려와서 살 생각 하지마. 그 옆집 남자도 혼자 산다더니 거의 살림차렸더라고. 그러면 수도세에 전기세에 두 배가 되는데. 혼자 산다고 하고 관리비 1인분만 내면 그건 아니지. 아가씨는 그럴 생각 말으라고 내가 미리 얘기하는 거야."
나와 친구들은 근처 중국집으로 가서 식사를 했고, 공인중개사는 계속 전화를 걸며 가계약을 독촉했다. 집 자체는 마음에 들지만, 내가 들어가 살 집을 보지 못한 것과 집 주인 아주머니의 성정이 마음에 걸렸다. 친구 A는 말했다. "너. 생각해봐. 너 너네 부모님한테 돈 10만원씩도 안 드리면서, 너 아까 그 아줌마한테 다달이 55만원씩 통장에 꽂아주고 싶어?"
그 말은 아직 시작도 못한 <2024 독립:월세살이> 프로젝트를 마감하게 했다.
독립 프로젝트 자체는 끝나지 않았다. 월세살이 프로젝트가 폐기처분 된 거지.
그동안은 돈도 빽도 없이 방을 보러 다녔고, 2024년 월세살이 독립을 결심하면서는 1년 동안 열심히 보증금 1,000만원을 모았다. 고로, 내 수중에 독립자금으로는 1,000만원 밖에 없다는 것. 월세가 아니라면 전세나 매매. ‘나는 돈이 더 필요하다.’
부자되는 방법, 부자들의 공통점, 재테크, 짠테크 등등에 대한 유튜브 영상과 책들을 닥치는대로 보기 시작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다들 나에게 일확천금을 벌거나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전에, '물건을 정리하라'고 했다. 부자들의 집에 공통적으로 있는 물건은 없지만, 공통적으로 '없는' 물건은 있다고. 바로 '필요없는 물건'이라고. 돈을 모으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뜻밖에도 물건을 정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고.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서 이미 있는 물건을 또 사기도 하고 비슷한 용도의 물건을 여러 개 구입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데만 돈을 쓰는 것 같은데도 돈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돈 관리도 잘 하지 못한다. 물건이든 돈이든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판단하는 기준이나 가치관이 있어야만 소중하게 대할 수 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우리가 넓은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물건들을 넓은 곳에서 살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건의 집세까지 내지 말라고 조언하는 그의 말에 나는 크게 동의한다. (90일 완성 돈 버는 평생 습관)
이 집에 더 살아도, 곧 내집마련 해서 독립해도, 내가 가진 짐을 줄이는 것은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물건이 무엇인지, 내게 필요한 물건과 필요 없는 물건이 무엇인지, 내게 가치있고 소중한 물건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로부터 내 생활을 정돈하는 것. 나는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1일 1버리기를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