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센치의 턱과 3센치 사이의 거리에서
나는 아침에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서 전동휠체어에 착석한 순간부터 불안감을 느낀다.
아침마다 장애인 콜택시(짱콜_짜증 나는 콜택시)를 한 시간 전부터 불러놓지만, 제시간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너무 일찍 잡히거나 굉장히 늦게 잡히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매번 장애인 콜택시와 눈치 싸움을 해야 한다. 어플 화면에 표시된 대기자수와 대기 시간을 살피며(대기 시간은 거의 맞지 않다) 어느 때 부르면 좋을지 도박을 하듯이 예측할 수 없는 시스템에 '이동 운'을 걸어본다. 이동 운이 좋으면 원하는 시간에 콜을 타서 편하게 출근을 하고(아니다 짱콜 기사님마다 성향이 달라서 성격이 있거나 말이 많으신 분이 걸리면 짱콜을 탄 게 더 피곤할 때가 종종 있다.) 기다려도 오질 않은 님처럼 제시간에 오질 않으면 지하철을 이용한다.
예측할 수 없는 짱콜보다 지하철을 주로 많이 이용은 하고 있지만, 지하철을 탈 때마다 늘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우선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고장 여부에 따라 그날의 출근 시간이 정해진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있으면 다음 역으로 달려가여 한다. 이런 날이면 출근 시간이 두배가 된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정상 운행이 된다고 해도 다음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나도 출근을 해야 하는 k직장인으로써 지각을 피해 지옥철에 합류해야 하는 처지인데, 비장애인들 눈에는 바쁜 출근 시간에 눈치 없이 거대한 전동휠체어를 끌고 나온 민폐 장애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은 지 지옥철의 틈을 뚫고 탑승 시도라도 하려면 사람들은 다음 열차 타라며 내 앞을 새치기를 해서 결국 못 타게 한다. 나는 '이 사람들아 나도 지각하면 욕먹어! 더 늦으면 소중하고 소중한 반차를 써야 한다고!'라고 소리치지만 열차는 떠나고 없다. 젠장
지옥철이 아니더라도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승강장 사이의 턱과 틈이다. 가끔 뉴스에 지하철 플랫폼에 껴서 사고가 난 사례가 방송되는데, 나는 일상적으로 겪어야 할 '일상 사고'이다. 전동휠체어로 지하철을 탈 때 승강장 턱이 높으면 순간 속도를 높여서 점프하듯이 타야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다가 문 앞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으면 망설임이 생겨 속도를 높일 수가 없어서 플랫폼 턱에 걸리거나 승강장 틈 사이로 전동휠체어 바퀴가 쏙 빠진다. 사람들의 소동이 일어나며 바퀴를 빼네 마네 하면서 순식간에 뉴스에 주인공이 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턱이 아니더라도 플랫폼 틈 사이가 넓은 역들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자주 가는 지하철역은 승강장 표시 번호를 외워서 타지만, 처음 가는 낯선 역은 어느 부분이 넓은지 몰라서 타거나 내릴 때 번지 점프하는 심정으로 지하철을 타야 한다. 내가 이런 불편함을 말하면 사람들은 지하철역에 도움을 요청해 보라고 한다. 이동은 일상이다. 매번 지하철역에 전화해서 경사로 설치 요청을 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언어장애가 있는 내가 전화 통화해서 응대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며 짜증 섞인 말을 들어야 하는 일을 매일 할 수 있을까? 사실 말을 반복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내 말을 알아듣기를 포기할 때 가장 많이 지친다. 언어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내 말을 알아듣는 걸 빠르게 포기해 버린다. 그것이 전화 통화일 때는 더 그렇다. 그리고 얼른 언어가 되는 주변 사람들을 바꾸라고 호통을 친다. 이 경험이 너무나 하기 싫어서 되도록 전화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매 순간 번지점프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지하철역에 경사로 설치 요청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이 좋아져서 장애인들이 나돌아다니고.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면 나는 그런 소리를 안 들을 것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90% 이상 설치되어 있다고 해서 장애인이 아무 불편함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직도 장애인들은 이동권을 말할 수밖에 없고, 일상에서는 '이동 운'을 기대하며 언제 올지 모를 짱콜을 기다리면서 번지 점프하는 심정으로 지하철을 타고 있다.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