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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Apr 14. 2024

삶의 네비게이션과 새로고침

인생에서 누구나 길을 한 번쯤 잃은 적이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로부터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되어 이성적으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사람들한테 받은 상처가 온 마음에 깊숙이 새겨졌다. 


직장을 그만둔 후로 집에서 나가질 않았다. 스스로 격리시키며, 히끼꼬모리(은둔형 외톨이)처럼 한동안 살았다. 그러나 혈연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나는 나를 책임져야 했다. 어떻게든 사회에 다시 나와야 했다. 하지만 재취업이 꽤 오래동안 되질 않았다. 어떤 곳이든 들어가야 했지만, 어떤 곳이든 나를 뱉어버렸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자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는 성격이라 버틸 때까지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다녔던 직장으로 돌아가~ 사장한테 잘못했다고 빌어라~ 널 받아준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했어야지. 그만두긴 왜 그만둬!” 엄마는 내가 ‘왜 그만뒀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장애를 가진 딸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 점이 엄마에게 그나마 남들 앞에 내세울 수 있었던 조건이었는데, 그 조건이 사라지자 무능하고 쓸모없는 장애인 딸이 되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 하셨다. 


엄마와의 전화 통화가 있었던 그날은 면접에서 또 떨어져서 우울한 채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이동 중이었다. 절망감이 온몸을 훑어지는 듯한 무게를 느끼면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하필 그때,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 전화는 견디고 참아왔던 어떤 무언가를 무너뜨리게 하는 방아쇠가 되어 결국 지하철 화장실로 달려가 펑펑 울게 만들었다. 아무리 닦아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평소에 잘 울지 않던 내가 몇 개월 간 쌓아놓았던 울분이 터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 사라질까. 전동휠체어 손잡이에 늘 걸고 다니는 가방 안쪽 지갑 속에 있는 신분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부랑자로 거리를 떠돌며 장애인 수용 시설에 입소하거나 아니면 인생의 종지부를 찍어 마감을 하는 것으로 끝낼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 속에 빈틈없이 채워져 갔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숨쉴 수 있는 길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암울했던 그 시절이 영화‘와일드’를 보며 갑자기 떠올랐다. 


영화 ‘와일드’는 가장 기대고 의지했던 엄마의 암 선고와 죽음으로 인해 절망에 빠져 인생을 자포자기하며 살던 세릴의 94일간의 PCT(Pacific Crest Trail)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여정을 통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장애가 있어서 한 번도 숨이 찰 정도로 걷지도 뛰지도 못해서 이 영화가 과연 내게 와닿을 수 있을까? 그런 좁은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길을 헤쳐나가는 건 장애/비장애와 상관없는 일이다. 길이 매끄럽고 평평하면 보행자도 편하고 휠체어 사용자도 편할 것이며, 길이 자갈밭같이 울통불통하면 보행자도, 휠체어 사용자도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다. 이렇게 생각하니 영화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세릴의 여정을 따라가며 어느 한순간에 동기화가 되어 버려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온갖 위험한 순간에 처했을 때, 마치 내가 세릴가 된듯 불안해서 나도 모르게 5초 빨리 넘기기 버튼을 연속 눌러댔다. 하지만 세릴은 그 순간마다 지난 추억을 떠올렸고, 엄마가 해 준 말과 방황했던 시간들을 기억해 냈다. 이 과정에서 세릴은 지난 날에 본인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비로소 자신을 알아가며 치유해 갔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고통이 전위가 되는 듯해서 견디지 못하고 5초 빨리 넘기기와 눈 감기를 반복하며 봤다. 그래도 중간에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세릴가 험난하고 고행길 같았던 PCT 여정을 완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혹여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세릴가 왜 그토록 자신을 망가뜨리며 최악의 삶을 살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세릴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해 보면 그때서야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으로 세릴의 여정을 함께 마칠 수 있었다. 


나 역시 앞에 썼던 일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몇 번의 힘든 고비가 찾아왔었다. 그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다른 길을 찾고자 삶의 네비게이션을 계속 새로고침을 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마침내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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