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자작시!
서로의 날씨를 잃지 않기로 하자
우리는 오래전부터
서로의 기온을 조금씩 바꿔가며
같은 감정의 대기층 위에 서 있었다.
손끝의 냉기, 숨의 온도, 서서히 닮아갔다.
닮는 동안,
서로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너는 말했다, 이것은 내부의 투명한 선이라고.
나는 답했다, 이것은 체온이라고.
그 말의 중간쯤에서
보이지 않는 물방울이 맺혔다.
말이 증발하면 남는 것들이 있었다
살갗에 닿은 먼 공기
입술에 남은 짧은 여운,
손목 위에 흐른 미세한 진동까지
발목과 발목 사이
투명한 끈이 느슨하게 걸렸다
호흡의 틈마다 다른 소리를 내며
우리 걸음이 달라질수록
그 소리는 점점 젖었다
닿지 못한 곳이 더 많았고
발걸음 하나하나가 몸의 탐색이었다
끈의 울림은 바다 밑 조류의 흔들림에 섞였다
바다 밑 조류처럼
우리는 격렬하지만 조용히 흔들렸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한쪽이 조금만 움직이면
다른 쪽 모래가 일었다
그 진동은 말보다 오래 남았고
때로는 서로의 심장 속에서 파문이 번졌다
우리는 약속했다
무너질 때 서로 그 아래에 있지 않기로
비가 와도 한복판에서
서로의 날씨를 잃지 않기로
비가 스며드는 발밑
투명한 끈은 빗물과 함께 빛났다
말 없이도 서로를 느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라지지 않고
서로의 체온 속에 존재했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발목의 끈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조류와 호흡이 맞물리며
같은 감정의 대기층 위를 지나갔다
손끝과 입술, 심장과 심장 사이
투명한 선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선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날씨를 끝끝내 잃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