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고
잘 가게, 블랙 엘크
나는 지금 자네가 누운 대지 위를 걷고 있네
붉은 노을 뒤로 검은 구름이 밀려오고
바람은 이끼 낀 바위에 몸을 기댄 채
자네의 이름을 속삭이고 있지
이 편지가 닿을 곳은 없겠지만
하늘을 도는 매와 사슴의 발자국을 좇는 늑대가
이 말을 대신 옮겨주리라 믿으며
나는 침묵을 찢어 이 문장을 꺼낸다네
자네는 별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던 사람이었지
손에 총을 쥐었으나 영혼은 언제나 나무 그늘 아래 머물던 이
우리가 짐승처럼 살았던 시절이 있었건만
내 기억 속 자네는 언제나
그 잔혹함을 넘은 침묵의 고요함이었네
산처럼 말없이 존재하고
물처럼 누구도 거스르지 않던
태초의 바람 같은 숨소리
나는 울지 않았네 블랙 엘크
자네가 짐승처럼 묶이고 이름조차 없이 조롱당하고
‘죽은 검둥이’라 불리며
전시물처럼 내걸렸을 때에도
나는 그 비통을 눈물로 지우지 않았지
오히려 조각하듯 그 장면을 내 눈에 새겼다네
인간이 만든 이 세계는
언제나 자연의 법칙을 짓밟아 왔지
자네는 더 나은 죽음을 맞았어야 했어
늙은 들소가 숨을 고르는 저녁
해가 지고 노인이 마지막 담배를 피우는 시간
그처럼 조용하고 정직한 죽음이어야 했지
그러나 자네는
그들의 무지와 탐욕, 공포와 조롱 속에
찢겨 나갔네
그날 밤,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잠들었던 짐승의 울음이 들렸지
나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고
자네를 향한 분노와 회한을
총구에 실어 날려버렸다네
하지만 자네의 목소리가
그 순간 내 안에서 낮게 울렸지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잖아, 윌리엄.'
자네가 마지막으로 등을 돌리던 날
나는 처음으로 자네의 마음을 들여다봤네
살기 위해 쏘았던 나날의 무게를
멈추는 용기의 무게를
자네는 더는 죽이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나는 그날, 자네의 말발굽 소리에서
자비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지
늙은 말의 걸음처럼
고요하게 세상을 등지는 그 마지막 선택에서 말이야
이 땅은 알고 있네
자네가 짊어졌던 고통
자네가 삼켜버린 이름 없는 밤들을
사람들은 법을 말하지만
그 법은 늘 자네 같은 이를 망각하지
자네의 이름을 불태우고
자네의 얼굴을 조롱하며
자네의 죽음을 흥밋거리로 삼지
그러나 자연은 증언하고 있다네
밤마다 나무 위를 도는 바람이
고요 속에 엎드린 늑대가
아직도 자네의 억울함을 듣고 울고 있네
자네의 죽음은
호수 아래 기울던 달처럼 슬펐고
나는 그 슬픔을 등에 지고 살아남았네
살아 있다는 건 어쩌면
가장 잔인한 형벌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더 이상 아이들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해
거울 속 내 얼굴이 자네의 마지막 표정과 겹쳐지기에
내가 누구인지조차 희미해지는 밤이 많다네
내 뼈 또한 언젠가는 자네 곁에 묻히길 바라네
우리의 이름은 잊히더라도
별들과 풀잎들만은 우리를 기억해 주기를
자네는 다시 나무가 되고
나는 아직 이 땅에 묶인 채 헐떡이며 남겨졌지만
그날이 오면
나도 그 긴 겨울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게 되겠지
그때는 말 없는 자네와 마주 앉아
평화로만 다시 인사를 나누고 싶네
서로의 어깨를 조용히 맞댄 채 아무 말 없이
잘 가게, 블랙 엘크
산처럼 묵직했고 별처럼 다정했던 내 친구
자네의 침묵이 내 분노보다 깊었다는 걸
나는 죽기 전까지 잊지 않겠네
오늘도 나는
이 피비린내 나는 땅 위에서
자연의 법칙을 믿으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자네를 향해 걸어가고 있네
언제까지나
자네를 기억하겠네.
- 사라져 가는 그림자, 윌리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