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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미의 허상, 뜨거운 혼돈의 진실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

by 달빛바람

붉은 장미의 허상, 뜨거운 혼돈의 진실

천장에서 붉은 장미 꽃잎이 폭풍처럼 쏟아진다. 눈부시게 완벽한 붉은빛, 만개한 관능의 심연. 중년의 남자 레스터 번햄은 그 비현실적 꽃잎의 바닷속, 숨조차 멈출 듯한 순간에 누워 딸의 친구, 10대 소녀 안젤라를 바라본다. 그의 회색빛 삶 속에 갑자기 떨어진, 금지된 욕망의 원형. 그것은 경이로움과 죄책감이 뒤엉킨 채, 육체와 마음을 동시에 흔드는 유혹이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바로 이 금지된 욕망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제목 ‘아메리칸 뷰티’는 결점 하나 없이 개량된 붉은 장미의 품종명이다. 완벽하게 잔디를 깎고, 직장을 유지하며 겉보기에는 이상적인 가족을 꾸리는 미국 중산층의 쇼윈도. 그러나 그 쇼윈도 안, 레스터는 스스로를 “사실상 죽었다”라고 고백한다. 가족에게 무시당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로 존재한다.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안젤라를 향한 ‘금지된 욕망’—그 붉은 장미의 환상이다.

나는 이 영화의 매혹과 냉혹함을 이해한다. 십여 년 전, 강남의 한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찾았던 날의 공기를 그대로 기억한다. 가을 햇살 아래 솟아오른 거대한 성채, 모터쇼를 방불케 하는 주차장의 최고급 외제차들. 나는 그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위축됨과 동시에 강한 열망을 느꼈다.

완벽히 조경된 산책로와 광장 한가운데 솟은 분수. 물소리는 현실의 소음을 잠식한 채, 통제된 낙원의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을까?’ 하고 상상했지만, 도어록이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내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쌍둥이의 장난감들, 아무렇게 던져놓은 옷가지, 과자 부스러기들로 거실 바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게다가 공기 중에는 정체 모를 시큼한 냄새가 감돌았다

아이들을 앉히고 수업을 시작하려던 순간, 안방에서 터져 나온 고성. 처음엔 작은 언쟁이었지만 곧 격렬한 싸움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비명과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나는 얼어붙었다. 그러나 두 아이는 그 파열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며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다 살짝 열린 다른 방의 틈을 보았다. 그 방은 집 안 다른 공간과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유리 장식장 안에 수십 개의 명품 핸드백, 비닐에 씌워진 고급 의류가 빈틈없이 걸려 있었다. 거실의 혼돈과 대비되는 완벽한 쇼룸. 깨달았다. 저것이 이 집의 ‘아메리칸 뷰티’였고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혹은 애써 외면하게 하는 주인의 ‘붉은 장미’였다.

차가운 가을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집을 나섰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던가? 밖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분수의 환상, 방 안에서 터져 나온 절규의 진실. 유리 장식장 안의 완벽한 핸드백, 거실 바닥에 흩어진 과자 부스러기. 어느 쪽이 진짜 삶인가? 그 쌍둥이 엄마는 그 완벽한 가방들을 바라보며 “나는 불행하지 않아, 나는 성공했어”라고 스스로를 증명했을지도 모른다. 레스터의 아내 캐롤라인이 홍보문구와는 다른 집을 팔기 위해 연기하듯 그녀도 ‘완벽한 상류층’이라는 허울뿐인 껍데기를 붙잡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환상에 기대 산다. SNS 속 완벽한 휴가, 타인의 화려한 성공담, 내가 가질 수 없는 ‘그 무엇’.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으면 지금의 지루하고 결핍투성이 삶이 구원받으리라 믿는다. 레스터가 안젤라를 욕망했듯 우리도 각자의 ‘붉은 장미’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은 말한다. 환상이 깨지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구원이 찾아온다고. 레스터는 안젤라를 소유할 수 있는 순간, 그녀가 상상 속 관능의 여신이 아닌 그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두려움에 떠는 10대 소녀’ 임을 깨닫는다. 그의 머릿속을 채운 붉은 장미의 환상은 사라지고 그는 욕망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한 인간으로서 그녀를 위로하고 진정한 어른으로서 행동한다. 그는 세상의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삶의 주체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진짜 삶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장미가 아닌 이웃집 소년 리키가 촬영한 ‘바람에 흩날리는 비닐봉지의 춤’에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쓰레기봉투의 무의미한 몸짓 속,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능력. 그것이 욕망 속 환상이 아닌 인생의 진실에 발을 딛는 태도이다.


삶의 진정한 주도권은 완벽한 환상의 성취가 아닌 통제 불가능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 순간에 비로소 싹튼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거실, 어지럽혀진 책상, 그리고 애써 외면하고픈 내면의 불안과 결핍. 이 모든 혼돈을 기꺼이 끌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출발선에 선다. ​본래 진실이란 이처럼 뜨거운 속성을 지닌다. 완벽하게 관리된 분수의 물줄기나 쇼룸의 결점 없는 가방이 그저 차갑고 아름다운 허상이라면, 우리를 진정 살게 하는 동력은 그 정반대 편에 존재한다. 그것은 엉망진창인 거실에서 기어코 터져 나오는 격렬한 다툼, 혹은 무표정하게 나를 응시하는 아이들의 시선처럼,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혼돈의 '뜨거움' 그 자체이다.

가을, 화려하게 물들었던 단풍이 하나둘 흩날리기 시작한다. 찬란했던 환영(幻影)이 사라진 자리, 우리는 레스터가 마지막 숨결 속에서 몸을 맡겼던 바로 그 ‘삶’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그것은 축복과 저주, 환희와 끔찍함이 구분 없이 뒤엉킨, 지독할 만큼 생생한 현실이다.
그 혼돈의 격류 속에서 무너져 버린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나는 괜찮다”라고 속삭일 때, 우리는 마침내 차갑고 매끈한 쇼룸의 유리를 깨고 밖으로 나설 수 있다. 그리고 태양처럼 뜨겁고 화강암처럼 단단한 진정한 행복의 땅 위에 비로소 첫발을 디딜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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