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그녀를 만나러 광명에 갔다.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아파트형 공장 입구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움직임이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찍던 영상 속 여성스럽고 약간 섹스한 이미지와 좀 달랐다. 5월 오후의 찬란한 햇살 아래 화장하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는 땀과 기름기가 섞인 채로 빛이 났다. 커피숍에서 사 온 커피를 들고, 우리는 상가 뒤쪽 작은 공원 안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공원에서 발로 힘차게 공을 차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우리가 옛날 같이 일했던 시절이 머리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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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우리는 중국어와 영어를 동시 가르치는 유치원에서 만났다. 성격이 활발한 그녀는 4세 아이들을 가르치고, 내성적인 나는 5세 반을 담당했다. 고향은 다르지만, 모국어로 말이 통하다 보니 점차 친한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 도와줄 뿐만 아니라, 또한 상대의 고민과 불평을 귀담아듣는 존재가 되었다. 비록 1년 후에 출퇴근하는 것이 너무 멀어서 나는 먼저 떠났지만, 그녀는 계속 그곳에 남아 있었었다. 그 후에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전화 혹은 문자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그녀가 찍은 틱톡 영상을 보았다. 유치원에서 항상 유니폼 같은 티셔츠를 입었던 그녀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때로는 굵은 웨이브 파마 머리로 연출하고, 때로는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었다. 어떤 영상 속에는 여성스러운 치마를 입었지만, 어떤 영상 속에는 필라테스복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한 그녀는 틱톡 구독자가 몇 십 만명이나 있었다. 나중에 그녀가 영상을 찍는 것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다고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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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잘 못하고,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것은 너무 힘들고, 또한 명절마다 시댁에 가는 것도 심리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녀는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연히 보게 된 틱톡에 몰입했다. 옛날 화장에 관심이 없던 그녀는 기초 화장법도 배우고 운동 콘텐츠를 만들려고 매주 안양천을 따라 자전거도 자주 탔다. 틱톡은 자기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그녀가 말했다. 구독자 1명만 생겼더라도 하루 동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때론 “예쁘다” “매력적이다” 같은 댓글을 발견하면 인생이 사탕보다 더 달콤하다고 느꼈다. 비록 주변에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신경을 안 쓰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예뻐서 부럽기도 하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자체가 더 부러웠다. 그녀를 본받아 나중에 나도 책 소개하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내 눈앞에 있는 그녀는 얼굴에 고민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것 같다.
“언니, 나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 그녀가 말하면서 무엇인가 보여주려고 핸드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 여자를 봐요. 맨날 불평 불만하던 아줌마인데, 왜 구독 수가 나보다 많아요? 그 여자가 뭘 잘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
사실 우리 둘은 다 알고 있다. 한두 개 영상을 보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모든 것은 오직 독자에게 달려 있다. 물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초심을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것도 그녀의 주변 친구에게 이미 들었다. 그래서 평가보다는 그녀에게는 위로가 더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단지 다른 콘텐츠도 시도하면 어떨까 제안했다. 그리고 돈을 벌 목적이 아니면, 그렇게 너무 구독자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처음 시작처럼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산다면 마음이 더 편하고 계속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 끼인 먹구름은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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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개천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았다. 천 주변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나무들과 나뭇가지에 활짝 핀 꽃들이 바람에 따라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이 흔들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눈에 담고 싶어 나는 눈이 깜박거리는 것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조금 전 했던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함께 걷다가 도서관에 이르러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한참 읽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언니, 그녀의 영상 몇 개를 더 보내줄게요. 한번 보세요. 그녀를 욕하는 사람도 많아요. 헤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특별한 말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 언젠간 나도 글쓰기와 책 소개하는 초심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나의 초심과 시발점인데, 결국 “구독 수”와 “좋아요”가 나의 목적이 되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쓰던 다문화 이야기들은 나에게는, 또한 누구에게는 돈으로 계산하지 못할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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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는 구독자에 맞춰서 재미있고 알차게 만들어야 하지만, 내 인생을 더 재미있게 만들려는 초심에서 벗어나 그것이 목적이 되는 인생이 되면 안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