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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r 23. 2024

조울증 7년 차 (14)

악몽의 서막

시작은 피해망상이었다. 팀장이 나의 견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진을 위한 면담을 앞두고 있어서 팀장에게 포트폴리오를 전달하며 대표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다음날 팀장은 바빴는지 전달하지 않았고 나는 팀장에게 왜 전하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다. 팀장이 나의 승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운함을 담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팀장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나는 더욱 흥분했고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저 퇴사할게요. 더 이상 못하겠네요."


흥분한 나에게 지쳐버린 팀장은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생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말았다.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난 아직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재입사를 해서 팀장을 내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 지인 중 일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함께 팀을 꾸리자고 말했지만 각자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만약 수락했다면 큰 사달이 났을 것이다.) 혼자서라도 재입사를 해 팀장을 몰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만들었던 포트폴리오를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내가 퇴사한 사이 누군가 나의 포트폴리오를 수정했다! 퇴사하기 전 친하게 지내던 주임이 포트폴리오 작성 방법을 물어봐 내 자료를 공유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수정해서 사용한 것이다. 나는 격분했고 그녀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물었다. 내가 퇴사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자신이 사용했다며 허락 없이 사용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물론 그녀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나는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화를 내었다.


"내가 너 고소할 거야. 노동청에도 신고할 거고 변호사도 선임할 거야."


처음에 사과하던 그녀도 나의 발광에 지쳤는지 마음대로 하라고 하며 연락을 끊었다. 나는 그녀와 팀장이 공모해 나의 승진을 가로막았다고 확신했다. 이 사실을 대표에게 알려야 했다. 인사과장에게 연락해 대표와 통화하고 싶다고 전달했고 얼마뒤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그에게 '무능한 팀장'과 '야비한 주임'이 짜고 나를 물 먹였다고 설명했다. 내 포트폴리오를 가로채 승진하지 못하게 했고 그래서 내가 퇴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팀장으로 재입사를 시켜달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겠지만 그는 내게 고려해 보고 연락 주겠다고 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락이 오진 않았다.)



퇴사 후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심리상담이 있던 어느 날, 코로나로 인해 센터에 방문할 수 없었고 비대면으로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선생님과 회사에서 있던 일을 얘기하던 도중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내 몸속에 들어왔다!


"선생님, 제 몸에 천사의 영혼이 들어왔어요. 그의 이름은 라파엘이에요. 저는 다 나았고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대요!"


상담을 하던 도중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질병이 치료되었고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커다란 해방감을 느꼈다. 선생님은 진정하고 응급실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병의 증상이 아니라고 답했다. 진정으로 영적인 존재와의 만남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또다시 최악의 망상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증상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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