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을 꿈꾸는 돌+아이
사업을 구상하며 제휴할 업체들을 찾아다니고 있던 어느 날, 망상으로 만들어진 나의 신은 내게 메시지를 던졌다.
“너는 아이돌이 될 거야. 그리고 사람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을 거야. “
내가 아이돌이라니! 아이돌도 그냥 평범한 아이돌이 아니었다. 트랜스젠더 4인조 걸그룹. 이미 멤버들과 역할까지 모두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신의 정한 때가 되기 전까지는 발설해선 안 됐다.
집 앞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 가서 혼자 열심히 노래연습을 했다. 신기하게 조증기간에는 내가 노래를 정말 잘한다고 느꼈다. 평소에 내지 못했던 고음을 낸다거나 잘하지 못하는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하는 등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래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안테나 뮤직'의 연습생이 되었다. (이쯤 되면 다들 알겠지만 나 혼자만의 망상...)
가장 좋아하는 이진아, 권진아와 같은 소속사라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데모를 보내야 했기에 혼자 휴대폰으로 노래를 만들며 녹음까지 했다. 제목마저 거창하게 ‘For 유희열’이라고 지었다. (조증이 끝났을 무렵 다시 들어봤는데 너무 오글거려서 중간에 멈췄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했다. 늦은 밤 지인들이 일하는 신촌의 한 주점에 놀러 갔다. 지인들은 한껏 텐션이 올라간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기획사에 들어갔고 연습생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창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던 시기였고 노래실력도 나쁜 편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내 말을 사실이라고 믿었다. (전공이 실용음악과인 것도 내 허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모르는 손님 테이블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내 안의 모든 끼를 불살랐다. 그런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팁까지 챙겨주는 손님도 있었다. 가게가 마감할 때쯤 중앙에서 뉴진스의 ‘Hype boy'를 부르며 춤을 췄다. (참고로 난 타고난 몸치다.)
지인들과 가게를 나서려는데 신들이 갑자기 내게 공개 오디션을 요구했다. 나는 신촌 한복판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영화 ‘트루먼쇼‘와 같이 나의 모습이 전 우주에 생중계되고 있다고 믿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말리기 시작했지만 소용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신촌 한복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했다.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온몸이 땀에 젖어 속옷만 남긴 채 외투와 상의를 모두 벗어던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은 더 이상 나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경찰을 불렀다.
얼마뒤 경찰이 나를 찾았고 그들은 내가 주취자라고 생각했는지 계속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알아서 집에 갈 수 있으니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고성방가 외에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서였는지 경찰들은 내 말을 듣고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본가를 향했다.
가족들에게 아이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성정체성에 대한 갈등으로 3년간 방문하지 않았던 본가를 방문했다. 때마침 그때는 설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외가 친척들이 모여있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셨고 나도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며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식사자리에 앉았다.
아이돌이 될 예정이라는 헛소리를 하며 울고, 웃고, 화내는 등 감정이 널뛰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단번에 내가 조증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식사를 마칠 때쯤 망상 속 신은 시간과 장소를 정하며, 그 자리에서 정해진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그것이 곧 데뷔무대였다. 나는 가족들에게 데뷔 무대에 함께 있어달라고 말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신이 정해준 장소인 교회 본당에 들어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눈을 감고 그가 정해준 노래를 열창했다. 이제 눈을 뜨면 모든 사람들이 내게 박수와 환호를 지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그곳에는 단 한 명만이 존재했다. 허무했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눈앞에 있는 것은 상담선생님과 통화 중인 엄마뿐이었다.
상담선생님과 통화를 마친 엄마는 나에게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내가 다니고 있던 대학병원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여차자차 응급실 배드에 까지 누웠지만 거세게 난동을 부리며 나에게 의료행위를 한다면 신고하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결국 그날 입원할 수 없었고 엄마와 나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만약 그때 입원할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까지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