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정신병원생활 season 2 - 2화
다음날, 나는 좁고 답답한 그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볼일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휴대폰은 물론 읽을 수 있는 책조차 없는 그 공간에서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문을 두드리며 내보내 달라고 소리쳤지만 난동을 부릴 때마다 간호사와 보호사가 들어와 주사를 놓고 재워버렸기 때문에 나중엔 포기해 버렸다. 사람들은 내가 있던 공간을 '안정실'이라고 불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정신병자들을 가두는 그 무서운 공간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하루가 더 지나고 나는 지루해 미칠 것 같은 안정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땐 단 한 번도 안정실 같은 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간호사는 나를 병실로 안내했다. 그때 당시 나는 상반신은 여성, 하반신은 남성인 애매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없어 1인실로 배정되었다. 1인실이었지만 침대와 수납공간만 있을 뿐 TV도, 화장실도 없었다. 대학병원의 1인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다. 침대엔 나의 휴대폰과 외투, 몇 가지 화장품들이 놓여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1인실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는데, 큰 병실에 얇은 가벽 하나를 세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벽간소음이 상당했다. 나는 당장 병원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병동 입구에는 험상궂은 가드들이 지키고 있었고, 의사가 퇴원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간호사가 약을 챙겨주긴 했지만 먹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망상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약을 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10시가 되어 병동의 모든 불이 꺼졌다. 조증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고 심심했던 나는 병실을 벗어나 병동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병원 내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열악했다. 화장실은 담배냄새가 가득했고, 샤워실에서 온수는 정해진 시간에 잠깐동안만 나왔다. 세탁기도 한 개뿐이었고, 심지어 병원복도 직접 세탁해야 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병동 중앙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앉아서 라면을 먹는 사람도 있었고, 두세 명씩 모여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조증기간에는 사교성이 매우 늘어난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 병동에 대부분은 알코올중독환자였다. 나와 같이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신의 딸'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나의 망상 속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피했다. (자기들도 정신병동에 입원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 나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둘 다 알코올중독으로 입원한 사람들이었는데 산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한 명은 신학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열변을 토하면서 내가 아는 진리를 이야기했다.
이름 안에는 영혼이 담겨있고 가명 혹은 세례명등을 쓰면 그에 상응하는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름(영혼)을 부여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름을 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각각 미카엘,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들은 병원 안에서 나의 신복이 되었다.
내가 느끼기에 이 병원은 좀 이상했다. 가끔 사람들이 외출해 술을 사 오기도 하고, 병원 내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심지어 전자담배는 병실 안에서 피울 수 있었다. 병원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다 알지만 눈 감아주는 눈치였다. 병원이라기보다는 수용소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당시 나는 수돗물이 성수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에 정수기물 대신에 수돗물을 마셨다. 오래된 병원이었기 때문에 수도관은 부식되어 있었을 것이고 깨끗하지 않은 물을 마신 탓에 두드러기와 발진이 일어났다. 피부과 진료를 보고 싶다고 말하니 진료과 중엔 피부과가 없다며 외출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보호입원 중이기 때문에 보호자가 동반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병원과 달리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부모님이 와야 했고, 결국 나는 피부과 진료를 포기했다. 대신 병원 내 내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나는 이 병원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짐을 싸들고 병동 문 앞에 갔다. 그리고 당장 원장을 불러오라고 소리쳤다. 이런 병원에선 하루도 더 지내고 싶지 않았다. 보호사중 가장 높아 보이는 아저씨가 나를 진정시키며 원장에게 연락을 했다. 원장의 오더가 떨어졌고, 나는 세명의 보호사에 의해 다시 안정실에 처박히게 되었다. 내보내 달라고 소리쳤지만 보호사는 소란을 피우면 안정실에 더 오래 가둘 거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나는 다시 지옥 같은 안정실에 에 갇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