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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01. 2024

조울증 7년 차 (23)

슬기로운 정신병원생활 season 2 - 3화

안정실에서 나온 뒤 나의 다사다난한 정신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미카엘이라 이름 지어주었던 알코올중독자 'G'는 매일같이 신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나의 병실을 찾아왔다. 매 식사를 내 방에 가져다주었고 내게 필요한 물건이나 간식들도 챙겨주었다. 너무나 충격스럽지만 병실에서 전자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G는 내게 전자담배를 조공(?)으로 바쳤다. 그는 정말 내가 '메시아' 혹은 그에 필적하는 존재라고 여겼다. 항상 나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에겐 뱀처럼 음흉한 생각이 존재하고 있었다.


G는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 장기투숙(?) 환자였다. 나라에서 여러 지원을 받고 있던 그에게 이 병원은 무상으로 잠자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종의 투숙공간 같은 곳이었다. 사실 G 뿐만 아니라 절반 이상의 환자가 그렇게 생활하고 있었다. 


주변사람은 잘 챙기는 G의 곁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항상 주변인들에게 나를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금세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도 세례명(?)과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들은 나를 흥미롭게 생각했다. 



모든 환자들이 내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환자들이 있었고, 그중엔 나의 성정체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을 넘어 혐오하는 사람 또한 있었다. 그중 독특하게 나에게 관심(?)을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바로 20대 알코올중독자 'K'였다. 


K는 탈색한 머리에 여드름이 많이 난 20대 초반의 환자였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동을 휩쓰는 내 모습이 불만이었는지 그는 내게 초면에 모욕적인 말을 했다. 


"네가 신의 딸이라고? 지랄을 하네. 정신병 달고 왔으면 조용히 쳐 있다가 나가. 우린 너랑 달라."


그는 철저히 알코올중독환자와 정신질환자를 구분하려고 했고, 알코올중독환자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심한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외모를 지적하며 인신공격을 했다. 


"못생긴 게 알코올중독까지 있고 네 인생도 참 너스럽다."


우리는 큰 소리를 내며 다퉜고 K는 나에게 죽일 듯이 달려드렀다. 다행히 주변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 막았고 보호사들이 그를 제압하였다. 그 정도 난동이었다면 안정실감이었지만 보호사는 각자의 병실로 들어가라는 말로 싸움을 마무리 지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K의 부모님은 조폭의 수장이었고, 병원에 거액에 돈을 주어 K의 편의를 봐주라고 했다고 하더라.)


다음날 K는 나의 병실에 찾아와 먼저 시비를 건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나는 사과를 받아주었고 나 또한 험한 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 후 K는 정말 귀찮을 정도로 나를 따라다녔다. 



얼마 되지 않아 젊은 환자가 새로 오게 되었다. 훗날(?) 나의 보디가드 된 'L'이었다. 그 또한 알코올중독으로 입원했고, 입원하기 전날까지도 혼자 소주를 20병이나 마셨다고 했다. (나는 그때 사람이 한 번에 소주를 20병까지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중요한 사실은 그는 매우 훈남이었다는 것! 중장년 혹은 매력적이지 않은 녀석들이 다반이었던 병동에 드디어 눈호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들어왔다. 


나이대가 비슷했던 'L'과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는 전 여자친구에게 미련을 갖고 있었고, 절반은 여성이었던 내게 여자들의 심리를 많이 물었다. 매일같이 전 여자친구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며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는 모습에 안쓰럽기도 했다. 그는 영적인 존재와 소통한다는 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마치 점집을 찾아오는 손님처럼 매일 같이 나의 병실을 찾아왔다. 심지어 부적까지 써달라고 했다. 


L은 가끔 내게 플러팅(?)을 연상케 하는 말들을 했다. 매일같이 퇴원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예쁜 누나가 퇴원하면 나는 누구랑 놀아. 나랑 같이 있자."


그는 그 뭣 같은 병원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존재였다.



분명 나의 병실은 1인실이었지만 매일같이 사람이 붐볐다. 취침시간을 제외하고는 G, K, L을 비롯해 여러 환자들이 다녀갔다. 신기한 것은 제정신이 아닌 내가 하는 얘기를 모두 믿었다는 사실이다.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있으면 나를 찾아와 신에게 대신 물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뇌 어딘가에 존재하는 망상세포에게 물어보고 어처구니없는 답을 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처구니없던 얘기들은 믿은 그들 또한 제정신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 정신병원에 입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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