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Z 부. 자의 96% <돈. 걱정 환전소> 우여곡절 창업기
부자 아빠: 2008년 1월 우리 이민 비행기 탔을 때 기억나지?
가난한 아들: 그럼요, 저는 13살, 결이는 8살이었죠...
부자 아빠: 맞아, 그때 너희는 어렸고 아빠는 이민 결심에 어려웠지...
지금 생각해 보면 너희들의 인생 진로를 아빠 마음대로 확 바꿔버린 큰 사건이었어...
제법 뚱뚱한 기내용 이민 가방들이 날씬한 기내 복도를 따라 나란히 끌려왔다. 허리에 잔뜩 힘을 준 나는 머리보다 높은 수납공간에 가방 네 개를 힘겹게 들어 뉘었다. “휴 우…” ‘자, 이제 하늘을 나는 거야… 비좁아도 좀 참자…’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나의 온기가 남아 있는 짐들에게 속삭였다. 다시 한번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는 나란히 앉아 벨트를 맺다. 다른 탑승객들도 제각기 가방, 백팩, 어린아이, 옷가지 등을 챙기고 정리하느라 어수선했다. 그런 분위기만큼 표정도 다양했다. ‘우리는 이제 열두 시간 동안 운명공동체가 된 거야…’ 문득 ‘이 좁은 좌석에 앉아 꼼짝없이 열두 시간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급 피곤 해지며 조금 전 지나쳐 온 일등석 사람들이 생각났다. ‘비행기 좌석만큼 냉정하고 냉혹한 자본주의를, 돈의 힘을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죠…’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르며 내 좌석 보다 두 배 많은 돈을 지불하고 딱 두 배 넓은 곳을 차지한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배도 살짝 아파오는 것 같고…’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가족들을 곁눈질하며… ‘돈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 그래도 좁은 이코노미석을 넓은 일등석 부럽지 않게 앉은 날씬이들… 고마워!’
비행기가 움직인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이거나 무를 수 없다. 말 그대로 구름 위에 붕 뜬 비행기는 나를 다시 설렘, 기대, 희망 위에 올려놓았다. 날개 사이로 비치는 태양 높이의 구름바다, 쪽 빛 하늘…‘아! 정말 아름답다…’
젊은 시절 살았던 괌, 그때 보았던 깊은 바다를 닮았다. 그때 꾸었던 꿈들이 십여 년 만에 현실이 되어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니... ‘아직도 가상현실 같아…’ 멍하니 발갛게 물든 구름바다를 보고 있자니 흑백 필름 속 지난날들이 머릿속 스크린에 스르르 비친다. ‘결혼 10주년, 가족과 함께 괌의 비치를 걷고 뛰노는 모습, 수영하는 모습, 개구쟁이 모습으로 스냅사진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모습… ‘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가 꿈을 키웠던 그곳을 꼭 보여 주고 싶었다. 물론 나도 다시 가 보고 싶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내 힘으로 당당하게 다시 왔노라 고… 그것도 예쁜 아내와 토끼 같은 두 아이들과 함께 완전체가 되어 돌아 왔 노라고…’ 마음속으로라도 외치고 싶었다. 그렇게 가족의 첫 번째 해외여행 이후, 이민이라는 이름의 길고도 머나먼 이사… 긴장과 설렘… 복잡한 심정이 가슴을 두드린다.
‘부모, 형제, 친척들, 친구들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멀리 떠날 줄이야…’ ‘이웃 나라도 아니고 지구 남쪽 끝, 봄이 가을이고 겨울이 여름인 지구 반대편이라니…’
자꾸만 감상에 젖어들다 가는 눈물이라도 떨굴 것 같아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이제껏 살면서 이사를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촉촉 해지는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산이 필요한 순간이다. 얼른 머릿속 필름을 갈아 끼웠다
거의 30 평생을 살았던 동네 망원동, 신혼 때도 세 살았던 동네. 망원동에 사는 것은 습관처럼 편했다. 88번 버스 종점 근처 상가 건물 신혼 옥탑방, 높은 계단이 불편했지만 행복한 공간이었다. 동네 친구들이 아무 때나 드나들며 밥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아지트였다. ‘그런 망원동을 떠나 강남으로 이사하려고 할 때조차, 나름 무척 큰 결심을 했었는데…’ 서른 즈음 친구, 동네 선 후배들은 결혼을 이유로 직장을 이유로 이런저런 핑계로 하나둘씩 망원동을 떠나갔다. 그때마다 왠지 서운했는데 나도 떠나니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바꾸어 생각해 보니 ‘부모 형제들이나 그때 그 친구들은 “우리 이민 가…”라는 난데없는 통보에 얼마나 서운했을까…’
마포 서교동에서 태어나서, 망원동 판잣집, 아빠가 지은 유수지 옆 연립주택, 절두산 성당 근처 합정동 집, 집 나가 친구 랑 살던 광명 집, 부천 집, 다시 망원동 신혼 옥탑 방, 강남 논현동 꽃집에 붙은 방, 허리를 굽히고 드나들어야 하는 방 문이 있던 논현동 월세방 (근체에 MB의 저택도 있는 동네였는데...), 강남 대로변 꽃집에 임시로 들인 방, 다시 입주한 논현 사거리 원룸, IMF 때 작전상 후퇴한 강남 개포동 주공 아파트 전셋집(재건축을 앞둔 허름한...), 강남 국악고교 근처 포이동 상가 주택 전세, 드디어 생애 첫 내 집 뉴아트빌라! 아직 안 끝났다. 이민오기 위해 집을 팔고 임시 거주하던 근처 월세 반지하 방까지 휴우.... 열다섯 번의 이사.
‘이사 한 횟수만큼 나뿐만 아니라 아내 그리고 두 아이의 정서에 나이테가 생겼으리라. 그 굴곡 속에는 기쁨, 슬픔, 희망, 아쉬움, 기대 같은 것들이 섞여 있으리라…’
나에게 ‘이사’는 ‘절망과 희망의 힘겨루기’ 같은 것이었다. ‘어떤 때는 절망이 또 어떤 때는 희망이 승리…’ ‘이사 때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고 팽팽하거나 일방적인 접전이 이어졌고….’ 이사의 끝이 어딘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뉴질랜드로의 이사… ‘희망의 한 판 승 이면 좋겠다.’
‘그곳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망원동만 같으면 좋겠다...’ 망원동은 내게 ‘정서적 모태’ 같은 곳이다. 내 정서가 자라난 곳. 갑자기 하늘에 계실 엄마가 생각난다. ‘ ‘비행기 타고 높이 날아… 하늘하고 가까워져서 그런 가 보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오클랜드가, 뉴질랜드가, 마음의 고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멀리 이사 온 낯섦, 친구 없는 외로움을 이겨 내며 계속 희망의 꿈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별이 녀석은 공주에서 잘 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