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되고 걱정은 안 되는 NZ 부. 자의 <돈. 걱정 환전소>
동네 공원을 함께 산책한다.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아빠: 뉴질랜드는 자연이 너무 좋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노을 지는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한 폭의 그림 같아.
우리 이곳에서 ‘정’ 붙이고 오래 살 수 있을까…?
아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반려견과 함께 걷는 이들을 보며 ‘별이’가 그리워진다.
‘이민 오기 전까지 우리의 둘 도 없는 친구였는데…’
“그때 별이 가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나니?”
엄마는 꽃 일 하면서 원예치료도 공부했지. 함께 공부하며 가까이 지내게 된 한 분이 급하게 미국 연수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가족들도 함께였다. 키우던 별이 와 함께 갈 수 없어서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야 그분이 엄마에게 부탁했어. 1년 만 녀석을 돌봐 달라고. 아빠와 너희들은 흔쾌하게 그러자고 했고 별이는 우리 식구가 되었던 거지.
아빠: 아빠는 동네에서 별이 닮은 녀석이 보일 때마다 ‘별이’ 생각이 나…
아들: 보고 싶네요…
녀석의 목에는 인식표가 달려 있었고 웬만해서는 목줄을 하지 않았다.
녀석은 마음대로 온 동네를 활보할 수 있었다. 포이동 빌라촌 골목골목을 강남 대로변 꽃집을 왕복 달리기하며 신나게 다녔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아홉 살이었던 둘째에게 별이는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 별이는 눈이 하나였지만 온전한 녀석들 보다 촉이 좋아 영리하고 커다란 하나의 눈은 밤하늘에 빛나는 슬픈 별처럼 반짝였다. 목 줄 없이 황야의 무법견처럼 온종일 동네를 쏘아 다니다가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 이면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며 반겼다. 물론, 첫째 아이와, 아내, 그리고 나에게도 너무나 귀여운 친구이고 식구였다. (미안해 별아…)
별이는 자신의 집이 반지하 방이라고 창피해하거나 기죽지 않았다.
강남 반려견배 달리기 대회가 있었다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정도로 날쌘돌이였다. 문제는 녀석의 털이었다. 사실은 녀석의 털 문제보다 창문도 변변치 않은 단칸방에 함께 사는 것이 문제였던 거다. 하루는 아내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온 집안에 떠도는 녀석의 털을 원천 봉쇄하기로 결심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녀석은 벌거숭이 시추가 되었다. 양털 깎인 양 보다 더 앙상하고 왜소해졌다. 예쁘고 탐스러웠던 시츄의 털들이 신문지 위로 떨어지면서 녀석의 눈에 고인 눈물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슬퍼 보였다. 그 후로 한동안 녀석은 아내를 피해 다녔다.
녀석이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지는데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에 충격받고 비관 가출(?)이라도 한 것일까…’ 그럴 리는 없었다 벌거숭이가 되기 전 일이니까. 그럼, 왜 안 보이는 거지…?
온 식구가 녀석을 찾아 헤맸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먼 강남 지역까지 차를 타고 골목골목을 뒤졌다. 너무 자유롭게 둔 것이 후회가 되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당한 것이 아닌지 누군가의 꼬임에 빠져서 유괴된 것은 아닌지 온갖 나쁜 생각에 머리가 복잡 해졌다. ‘우선, 가출 신고를 해야겠다…’ 나는 강남지역 애견 가출 센터 번호를 찾아 전화를 돌렸다.
“외눈박이 시추, 여기 있네요. 몰골이 말이 아니에요. 얼른 와서 데려가세요..”
“아!... 감사합니다. 금방 갈게요!”
센터에 발을 들이는 순간 녀석은 나를 알아보고 유리 벽 너머로 발버둥을 쳤다.
연탄배달견도 아니고.. 녀석에 털은 때 구정물이 좔좔 흐르고, 하루아침에 완전 노숙견이 되어 있었고, 피곤에 절어 있었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깨끗이 목욕을 시켰다. 허기진 배도 채워 주었다. 원래의 별이로 돌아왔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고마웠다. 아무 탈 없이 다시 돌아와 주어서… 녀석의 슬픈 눈이 기쁨에 가득 찼다.
별이를 앉고 공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한 식구가 된 지 채 일 년이 되기 전에 우리는 헤어지게 생겼다. 우리의 이민이 결정되었고 별이를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공주 시골에 사는 이모에게 부탁드렸더니 “그려.. 여기 강아지들이 랑 고양이들 허고 놀면 되겠네…”
‘으흑………ㅜㅠㅠ……………………………’
‘정들 자 이별 이라더니…’ ‘별아, 여기도 친구들 많으니 낯가리지 말고 씩씩하게 잘 지내…’
뭘 아는지 모르는지 엉덩이를 흔드는 녀석을 애써 외면하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 가에 비치는 휑한 논 밭을 초점 없이 바라보며 별이가 벌써 눈에 밟힌다. 목이 길어 슬픈 사슴도 아닌 것이 눈이 커서 슬픈 외눈박이로 태어난 것이 그렇고, 미국에 함께 가지 못해 생 이별을 겪어야 했던 것이 그렇고, 잠시 입양된 가족과도 함께 갈 수 없어서 다시 타향살이를 떠나온 것도 그렇고… ‘녀석… 팔자가 참… 드세네…’
뉴질랜드에서 별이 와 닮은 녀석을 입양할 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한국 보다 도 훨씬 엄격하고 까다롭다. 물론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 그때 와는 한국 사정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잘 안다. 다른 무엇보다 가족의 털 알레르기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도 언젠가, 별이 닮은 녀석이 나타난다면, 그때처럼 벌거숭이를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든 함께 살아 보고 싶다. 그때처럼… ‘
답사 왔을 때 보았던 별이 생각난다.
타우랑가에서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길, 칠흑 같은 어둠, 숲길,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 광경을 보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뉴질랜드로 이민 올 결심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별아, 답사 때 보았던 별들처럼… 너도 내 마음속에 항상 간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