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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May 29. 2024

죽고 싶어도 삶을 붙들고 있어.

- 아픈 딸, 아픈 우리를 위한 소소한 위로들.

 예쁘지?

 토요일 밤에 한강 주변에서 뭘 했을까. 저녁 8시쯤 한강 드론 라이트쇼를 보며 찍은 사진 몇 장 달랑 보내고 너는 일요일 아침 8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왔어. 그리고 종일 아무 말 않다가 저녁에 엄마한테 말했지. 지금 다니는 학교는 못 다니겠다고. 그러라고 했어. 엄마도 너를 통해 학교가 모두에게 필요한 장소는 아니란 걸 비싼 값 치르고 깨달았으니까. 그런데 잠시 후 네가 전한 말엔 사방이 깜깜해지더라. 며칠 후 죽을 거야, 라는 말.

 상담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정말 죽는 아이들은 말없이 세상을 떠난다고. 너처럼 죽을 거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건강한 거라고. 네가 정말 생을 놓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20대 여성 자살률이 최근 크게 증가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 터라 솔직히 두려웠어. 죽고 싶은 마음이 네 안에 있는 한 충동적으로 자살할 가능성을 완벽히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네가 말없이 외박한 밤, 강물을 보며 뛰어들까 말까 고민했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하얘지더라. 

 급한 마음에 네 방으로 따라 들어가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더니 말해도 소용없다며 넌 이불을 뒤집어썼어. 부모를 답답하게 여기는 너는 엄마 아빠를 대화 상대에서 오래전에 지운 터라 아무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 네 마음에 닿지 않는 말을 혼자 쏟아내고 나오는데 훌쩍거리는 소리가 참 슬프게 느껴지더라. 네가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거든. 아직 14년도 채 살지 않은 네가 삶에서 아무런 희망도 얻지 못하고 있다니, 누구보다 엄마 잘못이 크겠지. 네가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나가는 걸 지켜보며 수도 없이 과거의 어느 시간을 뒤적였어. 엄마의 어떤 말과 행동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건지 찾아 사과하고 싶었거든. 

 엄마 오늘 출근하지 말까? 

 잠결에도 완강히 고개 젓는 널 보며 엄마가 어떻게 말을 해야 네 마음이 죽음에서 삶을 향할까 잠시 고민했어. 모르겠더라. 혹시 엄마 없을 때 나가 또 외박을 하지는 않을까,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일터로 갔지. 하필 엄마의 어둡고 예민한 기질을 닮아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어. 엄마가 가진 마음은 다루기가 어렵고 잘 부러지며 자연스레 빛보단 어둠을 향하거든. 자꾸 어둠 속으로 향하는 마음을 다잡느라 쓸데없는 힘을 빼는 날도 부지기수지. 너만은 엄마처럼 부유하는 마음을 갖지 않길, 세상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강하고 밝은 마음을 갖길 간절히 바랐는데, 결국 너도 엄마를 닮은 것 같아. 엄마를 닮지 않았으면 네가 좀 덜 힘들 텐데.

 엄마가 뭘 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해 봤어. 너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대신 맞서줄 수도 없고, 민원을 넣고 읍소를 해 봐도 니가 원하는 전학을 시켜줄 수 없으니까.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의 엄마로서 네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자신을 사랑하게끔 도와주는 일, 엄마가 이제껏 살며 느낀 걸 솔직하게 남겨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그래서 부족하지만 엄마가 경험한 것, 느낀 것들을 너와 공유해 보기로 했어. 너처럼 스스로 죽을 생각을 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글을 써보기로. 엄마의 삶도 다질 겸 말이야.

 먼저 K에 대한 얘기를 해 주고 싶어.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 지금 고2인 K가 초등학교 때 자살 시도를 했다는 말을 들었어. 인간과 인공지능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둘 중 누가 나을까, 뭐 그런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지. 너도 알겠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상대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살지는 못하잖아. 인공지능 친구에게는 뭐든 털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똑똑한 인공지능이 개인에게 딱 들어맞는 조언을 해 준다면 인간의 삶이 덜 외롭지 않을까. 뭐 그런 얘기들. 얼마 전에 네가 아무도 못 믿겠다며 자꾸 슬픈 마음이 든다고 우는데,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고 말했던가? 무책임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관계만 맺고 사는 엄마라 네게 별달리 해 줄 말이 없었어. 아무튼 네게 오빠뻘인 K에게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물으니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며 씩 웃더라. 지금은 기억도 희미한 어떤 일로 K는 삶에 마침표를 찍으려 했던 거야. 그 어린 나이에.

 엄마도 그런 경험이 있어.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죽고 싶었던 순간은 정말 많았던 것 같은데 기억나는 이유는 별로 없어. 경주마가 다른 곳을 보지 못하게 얼굴에 착용하는 차안대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이 죽고 싶은 순간엔 모두 차안대를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을 괴롭히는 한 가지 사실에만 매몰되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거지. 그 안대를 스스로 벗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엄마도 잘 알아. 그런데 같이 기억했으면 좋겠어. 시간이 지나면 기억나지 않을 일로 사람은 때로 삶을 놓아버리기도 한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무심해질 수 있는 일로 말이야.

 상담 선생님이 그러더라. 자기를 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표현이라고. 엄마는 지금 그 말을 믿고 싶어. 네가 엄마한테 조만간 죽고 싶다고 한 건 살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표현이라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땐, 모든 터널은 끝나는 지점이 반드시 있다는 것만 기억하자. 터널에서 우리 길을 가로막았던 것들은 우리 삶에 그다지 중요한 것들은 아니라는 것과 함께. 지나고 나면 기억도 안 나는 일로 생을 마감하느라 앞으로 네 앞에 놓일 좋은 일을 하나도 겪지 못한다면 그처럼 애석한 일이 어디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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