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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Oct 13. 2024

에세이-와일드를 읽고) 삶은 걷고 걷고 걷는 일?

 날이 어두워지면 입고 있던 추리닝에 카디건 하나 걸치고 더러 걷는다. 바깥바람이라도 쐬지 않으면 적막한 집안 공기에 질식할 것 같아서다. 이따금 부는 선선한 바람에 가슴속 화기가 잦아들면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며 신선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신다. 마음속에 남은 찌꺼기가 가을바람에 정화되는 느낌이다. 노랗게 빛나는 달이 하늘에 걸려있는 날엔, 먹구름 낀 마음도 덩달아 환해지니 걷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걷기가 주는 치유의 힘을 알기에 유난히 심란한 밤엔 몸이 뻐근해질 때까지 더욱더 오래도록 걷게 된다. 그런 날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욱신거리는 몸을 빨리 눕히고 싶은 마음만 들뿐. 잡념이 들어설 마음자리가 없다. 고작 동네 한 바퀴 돌고도 마음의 온도가 이렇게 달라지는데, 4285Km에 이르는 미국 서부 종단 트레킹 코스를 거닌 셰릴 스트레이드가 느낀 ‘변화’는 어떤 걸까. <와일드>의 저자인 그녀를 기어코 걷게 한 ‘그 일들’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와일드>는 셰릴 스트레이드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코스를 거닐며 그 3개월의 험난한 여정을 담아낸 에세이다. 물에 젖은 솜이불보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얼어 죽을 것 같은 설산의 빙벽, 현기증이 날만큼 뜨거워 주저앉으면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사막, 방울뱀이 똬리를 틀고 온갖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험지를 걷고 또 걷게 만든 일. 그건 예상치 못한 엄마의 이른 죽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예상치 못한 죽음을 견뎌내는 것. 그보다 힘든 일이 있을까. 피할 수 있다면 온 힘을 다해 피하고 싶은 게,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일 것이다.


“어쨌든 말이야. 우리 아들이 그렇게 된 다음에 일이 어떻게 되었냐 하면, 그냥 나도 같이 죽어버렸어요. 내 안의 나는 죽어버렸다고.” 루는 담배를 든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 안에 있는 나는 달라진 거지. 그러니까 내 말은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렇게 굴러가는데 루크가 죽으면서 내 영혼을 가져간 거야.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돼버렸어. 내 안에서 내가 빠져나가 버린 거지. 그리고 다시는 되돌리지 못하겠더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이해해요.”나는 루의 갈색 눈을 바라보았다.(p350)


 트레킹 중 만난 루가 묻자 셰릴이 이해한다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셰릴은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아무나 만나 외도를 하고 마약에 취한다. 슬픔은 때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개인의 삶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저도 모르는 곳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삶 속에서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다는 바람은 인간의 본성일까. 물집이 덮어버린 발을 끌고 가다 너덜너덜해진 발톱을 하나 둘 뽑아버리며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악 소리를 지르고 어깨며 엉덩이가 배낭에 쓸려 피부가 만신창이가 되는 여정 속에서 숱하게 굶주리며, 셰릴은 아버지의 가정폭력, 어머니의 폐암과 죽음, 불륜과 마약에 빠진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무엇보다 솔직한 자아와 직면한다. 그리고 읽는 이에게도 서슴없이 보여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온몸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 모든 노력이 반드시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은 훼손되지 않은 야생의 아름다움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무 탈 없이 살아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이어졌다. 내가 길을 잃었건 혹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건 상관없이 말이다. 내가 다른 사람 혹은 스스로에게 저질렀던 후회스러운 행동이나 다른 사람이 내게 저지른 후회스러울 행동들도 다 상관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굳게 믿었다. 이 황야의 순수함은 나를 구해줄 것이다. (P271)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할 셰릴의 트레킹을 눈으로 가슴으로 따라가며 결국 목표지점에 도착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구원한 셰릴 스트레이에게 존경과 부러움이 느껴졌다. 다 벗어던진 순수한 개인의 본질이란 게 셰릴을 구해준 ‘황야의 순수함’과 닮았는지, ‘자신’을 찾은 사람의 영혼은 얼마나 견고할지 나는 모른다. 다만, 셰릴이 여정 끝에 남긴 문장을 마음속에 새기며, 더 자주 걷기로, 그리고 무작정 나를 믿어보기로 하며 책장을 덮었다.


 이제 나는 믿게 되었다. 더는 무언가를 잡으려 텅 빈손을 물속에서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지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다른 모든 이의 인생처럼 나의 인생 역시 신비로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이 고귀하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바로 이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한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줄 수밖에.(p575)


 PS 참고로 셰릴 스트레이드의 스트레이드(strayed)는 셰릴이 이혼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성을 버리고 스스로 지은 성이다. 셰릴의 삶을 보면, ‘벗어나 보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코스를 밟은 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 셰릴 스트레이드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 찾아봤다. 예상대로 단단해 보이는 인상의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이런 말을 남겼다.


Don’t surrender all your joy for an idea you used to have about ourself that isn’t true anymore.

더 이상 진실이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해 가졌던 생각 때문에 여러분의 모든 기쁨을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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