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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 시 '

평론

by 주연




우연히 어떤 시를 보았다.



작자미상


너를 사랑하면서부터
난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너를 기다리는 시간은
나를 미워하는 시간이었고
너를 생각하는 순간은
나를 잊는 순간이었다

너를 만나고
너를 사랑하고
너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 사람의 자전적인 고백보다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가 가진 잔혹성을 본 것 같았다.


감정은 대개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되지만,
화자의 마음은 가장 음습한 바닥까지 가 닿는다.
그곳은 사랑이 아닌 자기소멸의 방,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대신
그 빈자리로 상대를 채워 넣으려 했던
지독한 감정의 종속이 자리한 곳이다.

첫 연의


' 너를 사랑하면서부터

난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


이 한 줄은 시의 모든 전개를 압축하고도 남는다.


사랑은 보통 ' 함께 성장하는 관계 ' 라는 이상 속에서 이야기되지만

이 시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사랑은 곧 자신의 자아를 해체하는 일,
자신을 버림으로써 그 사람을 품는,
지극히 위험한 감정의 거래처럼 보인다.

시의 화자는 기다리는 시간마다 자신을 미워했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자신을 잊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연인의 애틋한 고백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사랑을 명분 삼아 스스로를 부정했던 사람의 고백,

아니면 타인의 존재로 인해 자기 내면이 점점 지워져가는 상황에 대한 절절한 보고에 가깝다.

이 시의 진짜 아픔은 점점 작아지는 자아에 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통해
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성숙해진다고 생각하지만
화자는 그 역설을 들이민다.


사랑은 꼭 사람을 성장시키는가?
이 시는 그 질문에 대답한다.


“ 아니, 어떤 사랑은 사람을 줄인다. ”

사랑은 그렇게 ‘ 서로 ’ 를 깎는 일이었다.


그는 자기를 매만지지 못했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자기 감정을 위로할 줄 몰랐다.
생각할수록 자기는 사라졌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 행,


' 나는 점점 작아졌다. '


이 문장에 도달한다.


이 말은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거의 실존적 감각에 가깝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한 인간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를
이 한 문장이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줄곧 ‘ 너 ’ 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자기 자신을 삭제하면서 관계를 유지해왔다.





시는 늘 감정의 끝자락에 있다.
그 끝은 달콤한 감미로움이 아니라,
말랑하고 연약한 체온을 가진 체념이다.
이 시 또한 격정적인 감정보다는
묵묵히 자기 파괴를 감내하는 한 인물의 초상이다.


모든 감정이 지나간 후, 사랑이 아닌 상처만 남은 사람의 모습.


그는 울부짖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저 ' 작아졌다' 고 고백하는 담담함이, 이 시를 더욱 아프게 만든다.

문학적으로 보자면, 이 시는 일기 같지만 동시에
심리의 아주 정밀한 진단서이기도 하다.


‘ 사랑의 감정 ’ 은 얼마나 쉽게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감정이 끝난 후
남겨진 자는 어떤 모습인가...


그것을 시는 단 네 줄로 압축했다.




너를 만나고


너를 사랑하고


너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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