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 반반
누구를 닮은 것이 주는 눈칫밥
어릴 적 아빠에게 크게 혼난 기억이 있다.
앞 뒤 상황을 전혀 기억 못 하는데도 '혼이 났다'는 기억을 40년 넘게 간직하게 된 건 그날 아빠가 읊조린 한 마디 때문이다.
"저게 지 엄마 닮아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화내고 후회하는 일이야 부지기수지만 가끔 내 스스로가 약간 눈이 뒤집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이의 잘못이 과연 그 정도로 혼낼 일인가는 두 번째이고 이미 안전핀이 뽑혀버린 소화기처럼 소리소리 지르고 있을 때 그 손에 꼽을만한 몇 번의 장면을 나의 엄마가 지켜보는 상황이 있다.
그때 나를 말리는 엄마의 말은 "그만해라." 정도에서 더 나가시진 않지만 나는 엄마의 눈빛에서 한 줄의 메시지를 느끼는데 "저게 지 아빠 닮아서...."이다.
내가 내 부모님의 딸이니 아빠와 엄마를 닮는 게 뭐 별스런 일이겠냐만은 유독 저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 엄마를 닮았다고 꾸짖고, 아빠를 닮았다고 타박하는 경험을 갖게 되면 울컥울컥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는 것이 느껴진다.
오늘도 그런 기분을 가지고 자리에 누우려니... 새삼 눈물이 나는 게 이 세상 어느 부모가 엄마 닮아서 혼내고 아빠 닮아서 미워한단 말인가. 그것은 내 근간을 흔드는 말인 거다.
마흔 중반의 내 안에 아직 엄마를 미워할 수도, 아빠를 미워할 수도 없는 안절부절못하는 아이가 남아 있다고 느껴진다.
돌아가신 아빠와는 영영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살아계신 엄마와도 풀리지 않을 숙제로 그렇게 마음에 또 하나 쌓인다.
눈칫밥을 먹었구나 내 부모와 살면서 남의 집살이처럼.
이 문장이 내 유년시절의 많은 것들을 관통한다.
부모님이 서로를 극히 미워하던 시기 아빠는 내게 엄마 닮았다고 다그쳤고 이제는 엄마가 나에게 욱하는 이 성질이 아빠 닮았다고 짐짓 걱정하는 눈빛을 보낸다.
어릴 때의 나는 울면서도 다음엔 울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는 아이였는데 이제는 그 말을 너무 잘 지켜서 울지도 못하는 어른아이가 되었다.
그래 나랑 엄마의 매듭을 풀지 못한다 해도.
나랑 내 아이들과 매듭은 짓지 말아야지.
내 선에서 끝내야지.
적어도 엄마 닮아서. 아빠 닮아서 미워하진 말아야지.
나와 신랑을 닮은 좋은 점을 찾아서.. 아이에게
아빠 닮아서... 엄마 닮아서 그 부분이 참 좋다고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