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관찰기
일을 하는 재미는 일 밖에서 찾는 것
청명한 하늘, 시원한 바람, 좋은 날씨 가을이다.
신랑 출근하고 애들 학교 가고 나는 마당으로 출근한다.
마당에서 한 작업 목록은 마늘 쪽내기, 땅콩 까기, 쌀 널기, 쌀 말리기, 고구마순 다듬기 등인데 이게 하루치가 끝나면 다음날의 일거리가 나와서 좋은 날씨에 마당에서 하루 종일 보낸다.
마당의 일들은 그렇게 생각이 필요한 건 아니어서 손으로는 작업하며 좋아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하는데 우리 마당이 동네 체육공원 가는 큰길에 접해있는지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를 발견했다.
노부부 1께서는 일단 할아버지가 먼저 지나가신다. 항상 마스크를 끼시고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다.
쏜살처럼 휘리릭 지나가버리시기도 하고 모르는 나하고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으시려는 강력한 의지를 느낀달까? 무튼 일하는 척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슬쩍 본 뒤면 이제 할머니를 기다리게 된다.
할머니는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 천천히 밀고 다리를 뒤뚱뒤뚱 한 모습으로 걸어가시는데 우리 마당을 지나는 시간이 할아버지와 10~20분이나 차이가 난다.
이 두 분이 같은 공간에서 걷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할머니는 나와 인사도 나눠 주시고 내가 고구마 감자 좀 챙겨드리기도 하고 소소하게 근황이야기도 하는데 길게 하진 못한다. 아무래도 내 손엔 일거리가 주워져 있고 할머니는 이미 할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 매우 불리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노부부 2께서는 사이좋게 항상 같이 걸어오신다. 나의 관찰 레이더에서 이 부부가 매우 신기한 것은 정말 사이좋게 잘 걸어오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칠 요량이면 할머니는 어딘가로 사라지시고 할아버지만 남는다는 사실이다. 길을 건너가 버리시거나 축지법을 쓰듯 혼자 휙 가서 저쪽에서 기다리시는 듯하다. 이 팀은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하신데 난 할아버지하고는 스몰토크도 하고 힘드시다고 하시면 차로 태워다 드리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와는 한 번도 말을 나눈 적이 없다.
근 한 달여간 이분들의 산책 사이클을 지켜보면서 혼자 마구마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노부부 1의 할아버지는 성격 급하신 가부장적 할아버지.
노부부 1의 할머니는 할아버지 말이라면 다 수용하는 지고지순한 할머니.
노부부 2는 사실 할아버지의 투병 이후 시골로 내려오셨는데 아무래도 두 분이 정식 부부 같은 느낌은 아니다. 할머니가 나를 너무 피하는 것이 너무나 미스터리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하는 단순노동은 생각을 단순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는데 매일 하다 보니 일은 끝나지 않고 지겨운 차에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그분들이 어떻게 살지 상상해 보며 소소하게 인물 탐구를 하니 지루하던 시간이 훨씬 재미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