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2024년 6월 28일 꼭 전해 줄게!
엊저녁 산책길. 까만 여름 밤에 보이는 거라곤 까만 논두렁인데 왠 입주민들이 그리 많은지 개구리 떼창 소리에 귀가 왕왕 거렸다. 코로 들이 마신 숨의 온도가 제법 괜찮다. 장맛비 사이 쾌청한 날씨에 찌뿌둥했던 무릎이 가벼웠다. 내일이 급식실 근무 마지막 날이었어야 했는데 한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6월의 마지막 날. 등판 선수들 엔트리가 화려하다. 어묵뭇국과 돼지사태 김치찜 그리고 마늘종 새우볶음. 최강군단의 메뉴로서 대단한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어느 것 하나 맛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국은 어묵이 열 일 할 것이고 사태찜은 김치가 열 일 할 것이고 새우볶음은 기가 막힌 양념장이 열 일 하니 두 말할 나위 있을까. 군침이 벌써부터 돈다. 그런데 별들의 각축장에선 어떤 게 별인지 잘 모른다는 것. 화려한 메뉴에 무얼 먹을 지 몰라 방황하는 젓가락사이로 잔반이 더 많아 질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선다. 나는 국 담당. 같은 조의 세라 언니가 폐검사 때문에 공가를 내서 본의 아니게 보조가 아니라 메인 요리사로서 책임을 지게 되었다.
"혜성아, 혼자 할 수 있겠어?"
"넵. 언니 걱정 말고 잘 다녀와요. 국은 어차피 솥이 다 알아서 할 텐데..."
언니가 말로만 걱정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급식실 미모 담당 세라 언니는 눈웃음이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소녀 같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17년 근무하다가 완전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이 직업을 택했다고 했다. 언니랑 같이 일하면 마치 유치원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언니의 상냥한 말투와 행동에 뭐든 아장아장 따라 하게 되고, 무엇이든 침착하게 차근차근 얘기해 줄 때는 귀도 쫑긋 눈도 또랑또랑 언니를 바라보게 된다. 언니는 마법을 부리는 듯하다. 무얼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몸 둘 바를 몰라하는 방향 잃은 눈과 몸이 언니랑 짝꿍을 할 때면 제법 길을 잘 따라간다.
언니는 모처럼의 휴가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걱정은 세라 언니보다도 남아 있는 언니들의 몫이었다. 덕분에 시어머니가 9명으로 늘어났다. 오늘의 험난한 여정은 안 봐도 불 보듯 뻔했다. 아마 언니들이 한 번씩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만 해도 그걸 아홉 번이나 들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의기소침해졌다. 그래도 국 솥 앞을 지키는 자에게 삽이 들려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해보자 다짐했다.
급식실에 결원이 생길 때면 도움을 주는 급식실 귀요미 해지 씨가 세라 언니 자리를 대신해 주기로 했다. 해지 씨는 서른일곱인가 여덟인가. 내가 친해지고 싶은 타입의 성격이 아니라서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그마한 키에 긴 머리, 긴 원피스를 즐겨 입고 큰 리본 삔을 꼽는 옷차림으로 급식실에 자주 왔어도 몇 마디 말을 섞어 본 적이 없다. 급식실에서 1년 정도 일하고 지금은 대체 인력으로 용돈 벌이나 하러 나온다고 하는데 올 때마다 집안 얘기부터 시댁 얘기까지하면서 주목받고 싶어하는 스타일이라 낯선 이들과는그 어떤 얘기도 섣불리 하지 않는 경직된 인간관계의 바운더리를 추구하는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해지 씨를 조리장님은 귀엽다고 귀요미라 부르고 언니들은 힘든 일은 시키지 말라고 아우성이니 새로 발령받아 온 미현이나 명자언니는 그 모습이 볼썽사납고 이해되지 않아 불만이었다.
"일을 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지. 이 힘든 급식실에서 밥도 하루 한 끼만 먹고, 이것 저것 가리는 것도 많은 얘를 도우미로 불러서는 이거 시키지 마라 저거 시키지 마라고 하면 되냐? 매번 힘들어서 휴게실에 누워 있고 힘들다고 시도 때도 앉아 있는데 그런 얘를 대체 인력으로 왜 쓰는 거야? 상전을 모시지. "
명자 언니 말이 맞기는 맞다. 급식실 일 중에 힘들지 않은 일이 없는데 그중에 힘들지 않은 그나마 몇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게 하면서 감싸는 이유를 모르겠다 싶었다. 무슨 대단한 관계라고 둘러싸서 보호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명자언니나 미현이나 우리에게는 이 일 저 일 마다하지 않고 막 시켜대고 안 했다가는 뒤로 가서 욕을 바가지로 할 것 같은 언니들이 왜 유독 그 아이만 예외 사항을 늘 만들어주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 조차 신경 쓸만한 여력도 힘도 아끼고 싶은 나는 해지 씨에 관한 모든 이슈들이 나의 업무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명자 언니처럼 불만스럽거나 열을 올리지도 않았다. 아무튼 오늘은 그 해지 씨가 세라 언니 대신 나와 일해 주기로 했다.
"해지 씨, 무는 제일 마지막에 넣을 거예요. 이따가 40분에 어묵 넣고 10시에 무 넣고 20분에 파 넣고 마무리해요. 쑥 갓은 소독해서 작은 바트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놨어요. 배식 시작 전에 한 줌씩 넣고 배식하면 돼요."
"네, 언니."
"간이 내 입에는 좀 싱거운데 국 간장을 조금 더 넣을까요?"
"그럴까요?"
해지 씨는 냉큼 냉면기를 가져다가 국 간장 반 사발을 가져왔다. 휘리릭 국 간장을 조금 넣고 후추를 사사삭 뿌리고 삽을 들어 휘저어주었다.
"으음! 맛있는데? 언니, 맛있어요."
국 담당은 그나마 다른 담당에 비해 쉬운 일은 아니더라도 조금 수월하다고는 하나 마무리의 일이 퇴식대와 잔반통등의 대형 기구들을 세척하여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라 해지 씨가 잘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 발이 척척 맞았다. 국 조리 시에 상당량의 어묵을 썰 때도 그랬고 작은 키에 버겁지만 끙끙 대면서 무며 어묵이며 국 재료를 솥단지에 쏟아부을 때도 최선을 다했다. 솥 앞을 경비병처럼 지켜 서있다가 시간이 되면 차례로 재료를 넣고, 간을 한 다음, 국 운반차에 국을 담고배식 준비를 마친다. 이 후, 1차 배식이 끝나고 다시 솥단지에서 국을 퍼 채우고 다음 배식을 위해 준비하였고, 2차 배식 전에 남은 몇 분 밖에 안되는 시간엔 조리실을 청소해야 하는데 그 또한 빈틈없이 잘 해 주었다. 또 2차 배식 후, 3차 배식 후, 잔반을 버리는 일에도 빠짐없이 세라 언니의 몫을 해주었다.
제대로 대체 인력이었다. 해지 씨에 대한 그 어떠한 선입견도 느낄 수 없었다. 명자 언니 말처럼 꾀를 부린다거나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약삭빠름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명자 언니의 괜한 질투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해지씨는 어묵뭇국을 친절하게 3차까지 배식하였고 아이들이 잘 먹어주니 누구보다도 기뻐하였다.
"언니, 아이들이 추가 배식을 정말 많이 받으러 왔어요. 엄청 뿌듯했어요."
"다 해지 씨가 수고해 준 덕분이에요."
솥단지를 가득 채워 둥둥 떠다니는 어묵 볼은 장관이었다. 아마 누구든 집에서 24cm 작은 양수냄비에 끓이는 어묵국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광경. 저게 저러다 넘치는 것 아닌가 싶은 불안감에 좌불안석일 것이다.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어묵덕에 약간의 국간장과 후추의 힘을 빌어 적당히 간이 된 국물은 어묵에서 우러난 감칠맛과 어우러져 딱 좋다고 조리장님께서 합격 점수를 받았다.
나 같은 초짜를 도와주느라 같이 긴장했던 해지 씨는 아이들과 조리장님 그리고 언니들의 칭찬으로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만두려고 사직서를 냈는데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했던 이의 도움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사직서를 제출해야만 했던 수도 없는 이유로 떠남에 대해 매일 합리화를 시켜 다시 돌아보지 않을 거라 했는데 나의 발길을 붙잡는 이들의 진심과 따뜻함에 가끔씩 가슴이 뭉클해진다.
도망가고 싶은 순간, 이 더운 여름 위생모와 마스크를 해야 하고 화상의 위험 때문에 긴팔에 긴 바지, 위생 때문에 면장갑에 니트릴장갑까지 끼고는 겨우 눈만 나와 있는 그들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저 아래에서부터 왠지 짠한 긍휼함이 올라온다. 정체 모를 이런 서로에 대한 연민과 끈끈함 때문에 계속 나오다 보니 몇 년이 또는 십여 년이 흘러버린 그들에게 서로는 전쟁터의 전우들 같았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지금의 복잡한 감정들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그들밖에 없었다. 남은 자가 미련하다고 하나 그들은 그곳의 자기 자리를 많은 이유로 지켜나간다. 각자 본인의 일을 담당하기에도 벅찬데 세척실에서 온몸이 흠뻑 젖는 이들을 위해 오늘도 게토레이를 들고 찾아와 '힘들지? 이거 먹고해. 안 그러면 쓰러져.'라며 콸콸 종이컵에 따라주고는 마스크를 내려 음료수를 먹여 주었다. 서로를 위해 기댈 수 있는 벽과 같은 존재로 버티고 있다.
그들은 서로 미워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서로를 향해 소리쳐 싸우기도 했다. 처음에는 살벌하게 느껴졌지만 오히려 이곳은 모든 감정이 회처럼 날 것으로 드러나는 살아 있는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감추어지는 감정이란 것이 없다. 사람이 단순해지면 행복해진다하지 않았는가. 군더더기 없는 감정으로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나가는 곳.
나는 얼마 전까지 그들에게 이런 존재였다.
‘너를 봐줄 시간도 여유도 없어. 얼른 나가든지 빨리 도움이 될 만큼 적응해. 한두 번 가르쳤으면 알아서 할 때도 됐잖아’
그런데 사직서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에게 조금씩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무얼 해야 하는지 보였고, 내 손과 발은 생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직서를 내고 떠나는 그날까지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하는 순간, 의지가 투철해졌다. 여기저기 쑤시는 근육통도 괜찮아졌다. 물론, 근육이완 진통제와 소경활혈탕, 그리고 십만 원이 훌쩍 넘는 정형외과 신경주사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처음보다야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샤워하다가 본 나의 팔에는 석 달 만에 울룩불룩 근육이 생겼고, 쑤시는 손가락만 빼면 내 몸 상태는 놀라우리만큼 이 험한 일을 극도의 피곤의 상태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물론, 목요일 즘 되면 소파에 누운 상태로 기절을 해버리곤 하지만 이 정도면 놀라운 발전이다.
어묵뭇국이 맛있었다고 언니들은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혜성아! 어딜 가니? 너 어디 가면 써준대? 여기가 딱이야. 얘들이 맛있다잖아. 천직이야 천직."
혜진언니의 말에 난 기분이 약간 언짢으면서도 좋기도 했다. 이 일이 천직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다가 그래도 맛있다고 해주니 기분은 좋고 참 희한한 칭찬이었다. 영양사 선생님이 내 사직서를 학교에 제출하지 않은 기가 막힌 실수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어묵뭇국을 마지막으로 그 큰 솥단지를 운전할 일이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뻔하였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조리장님께서 CCP를 쓰지 않았다고 부르셨다.
"혜성아, 정말 7월이 마지막인 거야?"
"네...."
"왜? 이렇게 일을 잘하는데 이유가 뭐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간절함이 미안함의 표현임을 안다. 난 어디 가나 게으름을 필 줄 모르는 성격이다. 살림에는 도가 터서 손도 엄청 빠르다. 어리바리함으로 약은 상인들에게 주머니 털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팔방미인 주부구단이다. 그들이 단 시간에 나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쟤는 성실한 아이'라는 사실 정도는 석 달 정도 겪어보니 어느 정도 증명이 되고 있었기에 붙잡을 만한 이유로 충분한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 있었다. 석 달 정도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못했다.
나의 사직서는 드디어 수리되었다. 8월 1일 자 퇴직처리 된다는 공문을 영양사 선생님께서 보여 주셨다. 영양사 선생님께는 지지고 볶고 싸워도 제자리를 지키고 아이들의 점심을 하러나오는그들이 참 고마울 텐데 퇴직한다는 내게 더 신경을 써주시면서 참 미안해하신다. 입장 바꿔 나 같으면 일을 그만둔다는 직원을 상사 입장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들에게도 그건 똑같을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지인들은
"네가 나가면 자기네들이 힘드니까 그렇지 이 바보야" 라고 말한다. 나도 그 즘은 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게 그 전부를 다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불러달라는 내 이름을 잊고 산지가 16년. 내 남편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 언니 빼고는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없는데 그렇게 듣고 싶었던 이름을 그들은 석 달 동안 수천번 불러주었다. 물론, 솥에 빠질까봐였지만....
“혜성아, 혜성아, 혜성아, 혜성아, 혜성아, 혜성아, 혜성아, 혜성아, 혜성아, 혜성아....”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여기서 저기서 대답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어떨 때는 우려의 부름으로 어떨 때는 귀여운 막내를 향한 애정으로 어떨 때는 실수에 대한 타박의 불호령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에 그들은 또 부른다. 내 이름을. 자꾸 내 이름을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가 집에 와서도 맴돈다. 그 부름에 진심이 있음을 느낀다. 석 달이었을 뿐인데 그새 정이란 것이 무섭게 들었다. 내가 만나 본 사람들 중에 가장 날 것인 듯한 사람들에게서 진심이 느껴진다. 부정하고 싶다.
“혜성아, 오늘 어떤 아이가 오늘 국이 왜 이렇게 맛있어요라고 묻길래 오늘 국 만든 사람한테 꼭 전해줄게라고 말해줬어.”
명자언니의 말에 내 마스크 속은 눈물인지 땀인지 웃음인지 모를 무언가로 범벅이 되었다. 부정하고 싶은 그 진심 어린, '나를 또 부름'에 먹먹해져 버렸음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