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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Sep 24. 2018

001. 한여름의 짜장면

#백편의에세이 #조심하며씁니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사계절 중 유독 여름에만 살아계셨다. 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여름의 할머니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은 그가 여름 내내 더운 공기 안에 포위되어 지독히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뜨겁게 데워진 일분일초를 견디는 할머니. 목구멍에 ‘시옷’이라도 숨겨놓은 듯 들숨 날숨마다 섞여 나오던 깊은 쇤소리. 그래서일까. 할머니에 대한 기억 끝에는 언제나 힘겨움이 버티고 서있다. 나는 ‘노쇠하다’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할머니의 숨소리로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다.


물기가 쪽 빠져버린 것 같은 피부. 다섯 자녀를 먹이고 남은 늘어진 가슴. 가슴보다 더 늘어진 난닝구. 가슴께 있던 구멍, 그 허름한 천 쪼가리. 그래, 할머니는 그것을 자주 입고 계셨다. 뼈며 근육이며, 뭐 하나 풍족하지 않았던 두 다리와 둥글게 굽은 등이 난닝구 안에서 늘 가난했다. 두 다리에 비해 퉁퉁했던 할머니의 몸통 때문에 할머니에게는 바닥에 몸을 내려놓거나, 누이는 일이 곧 수고였다. 천천히 다리를 굽히다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마침내 털썩. 무거운 엉덩이가 바닥에 가까워지면 할머니의 다리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할머니는 큰일을 마친 듯 한숨을 내쉬셨다. 나는 그때마다 할머니의 안색을 살폈었다. 햇볕에 그을린 할머니의 콧잔등 위로 땀이 맺혀 있었다. 목주름이 땀으로 빛났다. 여름은 호시탐탐 할머니의 몸속 물기를 빨아 마셨다.


더운 날 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담배를 태우는 것이었다. 창호지가 발린 사랑방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뻐끔뻐끔, 흐느적거리며 퍼지는 연기를 친구 삼았다. 여름 해에 눈이 시려서인지 할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은진이 왔니?’하고 웃으실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얼굴이 또 다르게 일그러지는 것이었다. 눈꼬리가 슬쩍 가늘어지는 것. 입꼬리가 살금살금 굽어 올라가는 것. 제멋대로 찌그러지는 주름이야 어찌 되었건 할머니의 웃는 얼굴은 귀한 것이었다.


ㅁ자 안마당을 가진 집이었다. 안마당 쪽으로는 대청마루가 있었지만, 할머니가 주로 담배를 태우시던 곳은, 그러니까 바깥마당 쪽으로 난 사랑방의 뒷문이었기 때문에 마루가 없이 곧장 문이었다. 바닥에서 사십 센티미터쯤 위로 사랑방 문이 달려있었다. 할머니가 문턱에 다리를 걸치고 앉으면 바닥까지 한참 모자란 두 다리가 허공에 떠 있었다. 우악스럽게 빚어진 점토처럼 울퉁불퉁한 발가락과 흙색 발톱이 가끔 움직거렸다. 그곳에서는 멀리 삼거리를 드나드는 차며, 경운기 모는 사람, 논일 밭일하는 동네 사람들, 그 옆으로 할머니와 가족들이 일군 논이 보였다.

나는 할머니가 자리에 안 계실 때면 하릴없이 할머니의 사랑방 문턱에 앉아 다리를 까딱-까딱-하곤 했다. 할머니의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문지방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사랑방 앞뒤로 문을 열어두면 바깥마당에서 안마당까지 환한 빛을 비추듯 바람이 불었다. 바깥에 다리만 내놓고 벌러덩 드러누우면 식은 방바닥 덕분에 등이 서늘했다. 할머니는 많은 날을 그곳에 앉아 옆 동네서 마실 온 손자 손녀의 인사를 받으셨고,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말을 걸면 몇 마디 말씀도 하셨고, 할아버지에게 타박을 듣기도, 주기도 하셨다. 한결같았다. 퍼렇게 자란 모가 누런 벼가 될 때까지 그 작은 네모 안에서.


그날도 찌는 듯한 여름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언제나 그랬듯 동생과 밥을 챙겨 먹었거나,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너무 뻔해서 무수한 날들과 함께 사라질뻔했던 날. 갑자기 전화가 울려서 받으니 엄마였다. 곧 할머니가 집으로 가실 테니 마중 나가 보란다. 왜? 너희들 짜장면 시켜주신대. 왜? 너희들 굶어 죽을까 봐 걱정되신대. 왜? 엄마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바깥에서 개가 짖었다. 할머니였다. 저 멀리서 지팡이를 짚은 둥그런 할머니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아이와 지친 노인의 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가까워진 우리. 할머니 곁에 서니 고춧가루 냄새와 습하고 어둔 창고에서 오래 묵은 지푸라기 냄새, 비린 땀 냄새가 났다. 할머니! 더운데 걸어오셨어요? 할머니는 웃을 힘도 없어 보였다. 할머니는 다짜고짜 손바닥을 내게 내미셨다.


"느이들 짜장면 시켜줄라고 손바닥에 써왔는데, 오면서 땀에 다 지워져 버렸다.”


굽어서 다 펴지지도 않는 커다란 손바닥 위로 땀에 번진 숫자들이 몇 자 남아 있었다. 괜찮아요, 할머니. 집에 전화번호 책 찾아보면 돼요. 나는 어른이라도 된 양 할머니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왠지 모르게 아이처럼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우리가 왜 굶어 죽어요, 할머니? 묻고 싶었지만, 그것도 꾹 참았다. 할머니는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설 때까지 또 한 번 말씀하셨다. 느이들 배곯고 있을까 봐 짜장면 시켜줄라고 왔는데, 오는 길에 다 지워져 버렸다. 괜찮아요, 할머니. 나는 또 한 번 어른인 척했다.

전화기 너머 엄마가 웃었으니까. 할머니가 짜장면 시켜주시면 맛있게 먹으라고 했으니까. 괜찮다고 말해주진 않았지만, 엄마가 웃어서 울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이후로 조금 비장해졌다.


어른이 갑자기 달라지면 아이의 조그만 심장에서는 고장 난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난다. 어딘가가 쪼개져 꺼내 볼 수도 없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심장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심장을 안아보지만 그치지 않는 딸꾹질처럼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가 제 심장을 쥐는 것을 보고 철이 들었다고 한다. 숨죽이는 것을 보고 철이 들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꽃상여에 실려 나가시던 날, 나는 그날도 내 심장의 달그락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를 더는 못 본다는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났다. 아빠가 엄니- 하면서 서럽게 우는 것을 보고 나서야 울기 시작했다. 아빠를 보고 울다가, 고모며 작은아버지며 어른들이 무섭게 슬퍼하기에 그 모습을 보고 뚝 그쳤다가. 퍼뜩 할머니 얼굴이 생각난 후로 한밤중에 이불에 오줌을 옴팡 싸듯 울었다.

지팡이를 짚고 오다가 짜장면집 번호가 다 지워져 버렸다고 미안해하시던 얼굴. 할머니. 내 불쌍한 할머니. 당신이 더 불쌍하면서. 우리더러 불쌍하다고 우시던 할머니. 자식을 걱정하다가 자식이 또 자식을 낳으니 당신은 그 옆에서 걱정을 낳아 키운 할머니. 할머니가 남기신 여름날 짜장면, 내게 남기신 유일한 유산. 그날 그 숫자들을 내 손금 삼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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