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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Oct 17. 2018

006.시 때문이다

#백편의에세이 #조심하며씁니다

커피 마시러 올라와.

오늘 오전에는 아랫방에 사는 H가 내 방으로 올라왔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창문을 열었다. 현관에서부터 기분 좋은 바람이 내 방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식빵 두 장을 꺼내 굽고 크림치즈와 함께 내놓았다. H는 사과 한 알과 찐계란 두 알을 들고 왔다. 나는 커피 두 잔과 귤 몇 알을 더 내놓았다. 우리는 조촐하게 끼니를 때웠다. 햇빛이 눈이 부시도록 밝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어제   샀어. 지난번에    읽고 다음에 읽으려고.  그래?   재밌어. H   책장에 꽂힌 책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어제부터 읽고 있던 어느 식물 학자가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식물의 무게를 합한 것과 인류의 무게를 합한 것 중에 어느 쪽이 얼마큼 많을 것 같아? 식물이 세 배 정도 많을 것 같은데? 아니, 동물과 식물 전체의 무게가 100그램이라면 식물의 무게가 99.5에서 99.9그램이래. 그러니까 인류의 무게는 0.5에서 0.1그램뿐이라는 거야. 와 진짜? 응. 그러니까 우린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저 말을 하면서도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걸 어떻게 계산했을까? 그러게. 세상엔 뭐 하나에 꽂혀서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재밌지 않아? 그러게.


나는 내가 최근 자주 펼쳐보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을 꺼내 들었다. 시인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 페이지 한 귀퉁이가 접혀있었다. 나는 H에게 그 시를 읽어주었다. 고집 있게 생겼어. H는 책날개에 인쇄되어 있는 슌타로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그치, 꼬장꼬장하게 생겼지. 근데 그 할아버지 시 재밌어. 나는 <일부 한정판 시집 ‘세계의 모형’ 목록>이라는 제목의 시가 실린 페이지를 펼쳐 다시 건넸다. 시는 1번부터 66번으로 번호가 매겨진 사물의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H는 가만히 그 시를 읽더니 물었다. 근데 이게 왜 좋은 거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인 박연준 시인의 말을 떠올렸다. ‘시란 이 세상에 이름 없는 것들을 호명하는 일이에요.’ 나는 H에게 그 말을 전했다. 어쩌면 이 시가 그말에 들어맞는 시가 아닐까 한다고.

66개의 이름 없는 사물에 번호를 붙이는 일이 시가 아니면 무엇이 시일까. 시인이 아니면 파란색 천 쪼가리를 거들떠나 볼까. 감귤색 셀로판지에 뭐하러 번호를 매길까.

게다가 이 시는 앞서 번호를 매긴 것을 뒤에 가서는 취소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불완전한 물건이 비로소 완전해지도록 새로운 물건을 추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물건 4의 셀로판이 너무 클 때 사용하는 가위'가 15번에 포함되어 있다. '한쪽 눈에 대고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감귤색 셀로판을 4번에 포함시킨 것도 모라자 그것이 조금 더 완전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가위를 추가한다. 가위는 이미 완전한 물건이지만 셀로판이 없다면 그조차 쓸모가 없으니까. 우리는 가위마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이 난 김에 더 쓰자면) 11번은 ‘무엇인지 모를 청색 물건 하나’다. 그런데 이 뭔지 모를 물건이 19번에 추가되어 있다. 삭제가 아니라 추가. 그 물건이 뭔지 알 수 없어서 쓸모를 가늠할 수 없는 물건을 하나 더 주워다 넣은 것이다.

세상에 그 모양으로 나와서 이름 없이 사라질 무수한 것들 중에 하나를 골라 번호를 매기고, 그것을 ‘한정판 시집’이라는 제목의 글 한편으로 정의하는 것. 나는 이 시 자체가 시의 정신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무언가를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애매하고 하찮은 어떤 것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시를 쓰는 일 말고는 없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만약 말에도 성분이 있다면, 그리고 그 말에 담긴 고유함의 농도가 액체의 점성처럼 우리 눈에 보인다면, 시란 마치 오래 끓인 진액같지 않을까.


바람이 조금 더 불었다.

말을 끝내고 나니 H의 시선이 싱크대에 걸려있는 노란색 고무장갑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어느 날인가. 내 방 고무장갑을 보는데 그게 그렇게 처연한 거야. 고무장갑이 왜? 그냥. 저 고무장갑도, 수세미도. 내가 고른 거잖아. 너 왜 또 울려고 그래? 몰라.


나는 얼굴이 곧 붉어져서 서로가 민망해질까 봐 또 우냐며 무안을 주었다. 뒤늦게 그 마음을 짐작해보건대, 저 물건들을 살 때마저도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고민하면서 최선을 다했을 테지. 저 고무장갑도 최선을 다하는 중일 테지. 그런데 저렇게 축 늘어져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슬퍼졌으리라. 슬픔이란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생각해보니 H와 나는 얼마 전에도 함께 눈물바람이었다. H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건물 12층에 살고, 몇 달 후 바로 위층에 내가 이사 왔을 때부터 우리는 종종 만나 서로 울다가도 곧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우리가 만약 66개의 물건 목록을 만든다면, 아마 H는 66개의 물건 중에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은 나와 같은 물건을 골라 넣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이나 유리조각 같은 것을 주워다 놓고 오래 고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끼리끼리'라는 말은 66개의 목록에 같은 물건을 넣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매일 집을 나서기 전, 현관에 서서 내 방을 가만히 둘러본다.

쓰다가 버려지더라도 너희들은 시가 되렴. 짧게 인사한다.

이 모든 건 시 때문이다.

아니면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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