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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Apr 15. 2016

005.안그럼 영화지

#백편의에세이 #조심하며씁니다

옆집 여자는 종종, 아니 자주 신경을 돋우는 음색으로 짜증을 부린다. 가끔은 자기 화에 못 이겨 바닥을 쿵쿵 구르기라도 하는 날엔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쫓아가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주고 싶기도 하다. 원래 부부라는 게 저리도 자주 싸우는 존재들이었나 싶게 자주 다투는 소릴 듣는다.


날이 좋았던 어느 날, 옆집 여자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남편과 또 다투기 시작했다. 언뜻 들리는 그의 말은 어느 오래된 영화의 대사 같은 말들이었다.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는데!’

피식. 대체 뭘 해줘야 하는데. 나는 쉬는 날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놓듯 구겨진 말들을 펼쳐놓았다.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그런 종류의 말을 들었는데도 남편은 이상하게 아내에게 쩔쩔맸다. 여자는 기어이 집 밖을 나서겠다고 했고, 남편은 어딜 가냐며 붙잡았다.


쾅.


나는 옆집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 베란다 블라인드 사이로 그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 사촌 언니와 비슷한 음색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역시 내 사촌 언니와 비슷한 체구와 모습을 지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몸을 뒤로 젖힌 채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가늘었고, 배가 부른 모습이었다.


임신했구나. 바람이 빠지듯 숨이 삐져나왔다. 그래서 그동안 그리도 악을 쓰며 억울해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이 오락가락했던 것일까. 안쓰러움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안쓰러움은 옆집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이 되었다. 이후로도 옆집의 남자는 아내의 악다구니를 몇 번이고 받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어느 순간 여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를 낳으러 간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혼이라도 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예민한 임산부에게 남편이 하등 도움이 되질 않아 친정에 가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심 안도했다. 이혼한 것은 아니구나. 이제 아이를 낳았으니 다투더라도 조용히 다투거나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겠지. 이런 두 종류의 안도. 그러나 결론만 이야기하면 나는 안겨있는 아기의 뒷모습을 보았고, 그 아기를 안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옆집 남자를 보았다.


‘아시잖아요, 여기 방음 잘 안 되는 거. 알만하신 분들이…’


코트를 주섬주섬 꺼내 입고 옆집 문을 두들겼던 나 역시 어느 영화 속 ‘옆집 여자’쯤 되는 배역의 대사를 읊듯이 울분을 다 토해내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이후로 한동안은 조심하는 듯싶었으나, 사람이 어디 그리 쉬이 변하던가. 옆집 여자의 히스테리는 여전했다. 다행인 것은 아이를 위한 평화로운 순간도 있다는 것이랄까.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을 향해 악을 쓰던 옆집 여자도 가끔은 저 주먹만 한 어린 아기의 마음을 읽고 젖을 주거나 안아주거나 재워주겠지. 주로 내 생각만 하며 사는 나 같은 사람보다 울어 재끼는 아기를 달래 보려고 잔잔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옆집 여자가 어쩌면 나보다 한참은 어른이겠다 싶기도하다. 오직 나만 생각하며 누군가의 마음일랑 개의치 않으려 했던 오늘같은 날은 옆집 여자의 노랫소리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래도 사람이 뭐 그리 쉬이 변하던가. 동네 공원을 땀이 나도록 냅다 뛰고 돌아오며 나는 또 비아냥거린다. 사는게 다 그렇지. 안그럼 영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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