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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Jan 22. 2019

008. 서본 적 없는 곳에 서고 말을 머리에 쓴다

#백편의에세이 #글쓰기

아무것도 아닌 내가 글을 쓴다고 책상 앞에 앉아, 머릿속에 펼쳐놓은 단어들을 고르고 있으면 코웃음이 나왔다. 조금이라도 쓰지 못하고 잠드는 날이면 죄책감이 드는 것은 웃기지도 않았다.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떠오른 생각이 행여 사라질까 서둘러 볼일을 마치기도 하고, 비누 거품투성이인 손으로 설거지를 하면서 좀 전의 생각을 입으로 되뇌기도 하고, 잊지 말고 꼭 적어두어야지 하고 마음먹고는 금세 잊어서 자책을 해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절로 써지던 문장들이 이불을 들썩이면 그 바람에 단어가 흩어질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힘을 써버리면 몸이 그 문장을 먹어 버릴까 옴짝달싹 못 하고, 두 걸음이면 닿을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바라보기만 한 적도 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서 노트와 펜을 잡고 막 끼적였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와서 읽어보면 그게 참 별것도 아니었다. 아마 내 부모는 내가 이러는 줄 알면 ‘현실감 있게 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 이 모양으로 낳아 놓고는. 아니지 이렇게 되도록 멀어져 놓고는.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커피 음료를 사서 마시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빨대 꽂고 쪽쪽 빨아 마시면서 근처 서점이나 어슬렁거려볼까 했다. 그걸 하려던 참이라 기분이 좋았다.


편의점의 출입구 옆에는 라면 먹는 청년이 있었고, 계산대 앞에서 누군가 계산 중이었다. 나는 곧장 커피 음료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10초쯤 지났을까. 커피음료를 가지러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계산대 앞에 서 있던 아저씨가 취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몸도 못 가눈 채 비틀거렸다. 점원이 내 음료를 계산하는 동안 사고의 고삐를 풀고 이말 저말을 주워섬겼다. 혀가 꼬부라져 말끝은 뭉개졌다. 점원은 피하지도 못하고 이 취객의 무례함을 꽤 오랜 시간 견디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자괴감이 드는 일을 겪을 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일에 나의 여남은 힘조차 쓰고 싶지 않다는 듯 무시하거나, 어떤 사람은 얼른 그 자리를 피해 안전한 곳에서 자기를 돌보거나, 어떤 사람은 평소 내본 적도 없는 큰 소리를 내서 쫓아버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남의 힘을 빌려 자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갚아 준다.

이 청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이 듣기에도 화가 치미는 말이 쏟아지는데도 제물처럼 가만히 있었다.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고 하기엔 그 상황을 빨리 끝내려는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게 이상했다.


당사자가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을 때, 그 일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마음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남의 집에 들어갈 때처럼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상황을 빨리 끝내려는 행동을 취하지 못하더라도 저 청년의 내면에서는 어떤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상황이 좋지 않아도 ‘나만 괜찮으면 돼’라고 사력을 다해 최면을 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럴 때 느닷없는 타인의 개입은 자칫 자괴감을 부추기기도 하니까. 나는 겁이 났다. 눈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동정 어린 시선을 불쑥 꺼내게 될까 봐. 나는 점원이 계산하는 동안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속으로만 외쳤다. ‘제발 피해요.’라고.


카드를 돌려받고 돌아서서 나가려는 찰나, 취객은 계산대에 본인 신용카드를 떨어뜨리다시피 던지며 말했다.


-그르니까 너는 한국산이 아니란 말이야. 한국 놈 같으면 내가 탁 말하믄 탁 꺼내줬것지. 안 그래?


그 말을 듣자, 등짝 한가운데가 훅 뜨거워졌다. 그 사이 취객은 욕도 몇 마디 지껄였다. 부끄러운 것이었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모른 척하는 사람. 오늘 이 일을 모른 척하면 멀쩡히 밥은 먹어도 멀쩡한 글은 못 쓴다. 문장 하나도 쉬이 넘길 수 없을 거다. 오늘 내가 가진 것을 더 잃고 조금 더 빈곤해질 거다. 그게 물질이든, 정신이든. 그런 저주가 들렸다. 나는 정말이지 틈틈이 비장해지는 특기가 있다.


-아저씨. 취하셨으면 댁으로 가세요. 괜한 사람한테 그러지 말고.


내 짧은 말에 뒤돌아본 취객이 말했다. ‘나 그냥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 편의점이랑 창고도 나눠 쓰는 사이예요. 아들 같아서 하는 소리예요. 댁이나 집으로 가세요.’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변명할 정신이 있는 것을 알고 나니 더 화가 났다. 취객과 나 사이에 몇 마디 말이 더 오갔다. 상대의 목소리를 따라 내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러다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에 안경을 쓴 핏기 없는 청년의 얼굴에서 불안이 보였다.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들었다.


성급하게 목소리를 높인 것은 아닐까. 청년의 입장만 난처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정말로 저 청년이 한국 사람이 아니면 어떡하나. 혹시나 오늘 일로 마음이 허물어졌으면 어쩌나. 누구보다 가장 먼저 자신을 나무라게 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 서점에 가서 책은 몇 권 만져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행여라도 학생 운동일랑 하지 말라고. 나는 그 말이 어찌나 황당하던지, 한동안은 그 말이 떠올라 맥없이 피식피식 웃었다. 나는 남에게 닥친 곤경에 맞설 사람이 못돼. 학생 운동이 뭐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모른 척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모른 척할 텐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래 묵었던 그 날이 떠올랐다.


글은 내가 가진 것만으로 쓴다. 더 보탤 수도 없고, 더 모자랄 수도 없다. 글쓰기는 내가 좋다고 여기는 온갖 좋은 것들을 부려놓는 것이니까. 거리끼는 것은 치우고 정돈하는 것, 마음을 어떤 결벽의 상태로 이끄는 행위니까. 오늘 나에게 들린 소리. ‘오늘의 일을 모른 척하면 난 더 잃고 빈곤해지리라.’는 외침은 글이 내게 보낸 것이다. 글은 나를 결벽의 상태에 머물게 하고, 마음에 여분의 자리를 만들고, 용기를 만들고 책임을 키운다. 글은 ‘달라지고 싶다’는 마음속 깊은 욕망을 꼭 채워줄 것이다.


글쓰기는 내 전부를 바꾸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를 바꾸었다. 나는 오늘도 글쓰기를 통해 한 번도 서본 적이 없는 곳에 서고 해야만 하는 말을 머리에 쓴다. 내가 조금씩 커다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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