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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Jun 28. 2019

013. 우리는 긴 복도에 그 꿈 하나를 가두자.

#백편의에세이 #이모리 #천천히씁니다 #예지몽 에 대하여

내게는 공포에 관한 꿈이 하나 있다. 가족과 외식하러 나간 날. 난데없이 살인마가 나타났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그는 화장실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밤새 표적이 되었다. 꿈이 끝날 때까지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어서 그의 성별도 모른다. 단지 그가 쏜 화살에 맞은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다. 공포란 실체를 알 수 없을 때 더 짙어진다. 그가 쏜 화살을 맞은 사람들은 몸을 배배 꼬다가 화살촉이 꽂힌 부위를 중심으로 액체가 뒤섞이듯 무늬를 만들면서 서서히 독이 퍼져갔다. 곧 몸 전체가 코발트블루빛을 띠었다. 그리곤 행동이 엄청나게 느려졌다. 파란 인간이 우리에게 공격성을 띠고 신변을 위협하거나 전염시키려고 기를 쓰는 등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혼돈에 빠졌을 뿐이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없는 화살과 그로 인한 비명 만이 그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행동이 느린 것’과 ‘코발트블루’는 각각 따로, 나의 내면에서 아주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코발트블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고, 이 꿈을 꾸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전교생 중에서 가장 밥을 느리게 먹는 아이였다. 그러니 내게 행동이 느린 파란 인간은 조합되어 이상한 존재이긴 했어도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다. 물론 이상한 것과 무서운 것이 같을 때도 많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두려웠던 것은 파란 인간이 아니라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화살 그리고 얼굴을 알 수 없는 범인과 오리무중이 되어 버린 가족의 행방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괴상한 꿈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아주 치열하게 공포를 체험했다. 내가 빚은 고유한 공포를.


꿈은 몸이 겪지 않고도 몸에 생생히 살아남는다. 꿈은 건너뛰기와 압축, 충돌의 변주가 이어지는 이야기. 현실이라는 서랍에서 넘쳐흐른 것. 물에 꽂힌 기둥. 그 기둥의 끝에 벽과 천장이 없는 하나뿐인 방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에 대한 꿈은 어떨까. 그런 꿈은 ‘오는’ 것이다. 내가 마음먹는 것이 아니라 꿈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마치 비가 오고 그 비에 흠뻑 젖는 것처럼. 내게는 타인이 대신 꿔준 예지몽이 하나 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응.”

“얼마 전에 꿈을 꿨어.”

“무슨 꿈?”

“네가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셔츠 바깥으로 드러난 곳은 깨끗했는데 셔츠를 들추니까 옷으로 감춰진 부분이 전부 검은 종기로 뒤덮여 있었어.”

“그래서 뭐랬어?”

“너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랬지.”

“희한한 꿈이네.”

“응. 너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


겪은 일로 치자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뭐 하나 해결하고 숨 좀 돌리려면 다른 일이 성큼 다가와 있고 그 일마저 겨우 해치우고 나면 다시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 해는 유독 버틸 힘이 없었고, 이리 나부끼고 저리 뒹구는 그런 날들이 몇 개월이나 이어졌다. 쉬이 잠들지 못했다.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잠깐 잠들었다가 눈이 떠지면 다시 긴장 상태가 되었다. 안색은 점점 창백해졌다. 머리카락은 푸석해지고 몸은 점점 야위어 갔다. 피곤해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몸에서 어떤 징후가 발견되었다. 통증은 없었다. 그러니 병원에 가볼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내 몸보다 걱정해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데 몸에서 보이는 사소한 징후쯤이야 얼마든지 뭉갤 수 있었다. 

그래도 얼마 안 가 검사를 받긴 했다. 다른 것 때문은 아니고 꿈에 대해 말하던 동거인의 표정이 얼마간 잊히지 않아서였다. 몸에 징후가 있는데도 부득불 병원에 가지 않는 행동 따위야말로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으니까.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내원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의사는 조직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또 며칠이 지나 내원하라더니 이번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했다. 나도 모르는 새 가슴에 이상한 덩어리가 여러 개 생겼고, 그걸 떼야 내가 안전해진다는 말이. 밤잠을 설쳐가며 위험한 무언가를 키우고 있었다는 말이.

까짓 거 수술이 뭐 대수인가, 해버리면 그만이지. 그 와중에 회사 스케줄이며 수술비며. 나에 관한 사정을 그러나 내가 아닌 것들의 사정을 떠올렸다.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상계단을 찾았다. 나는 왜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섰는 시간을 견딜 수 없는 것일까.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림자는 길어질 대로 길어져 있었고, 지는 해는 빨개질 대로 빨갛게 부풀어있었다. 그림자는 칵 부러져버렸으면. 부푼 해는 뻥 터져버렸으면 싶었다. 당장 무언가 큰일이 벌어져 주었으면 싶었다. 그리고 당장 무언가를 입에 넣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평소 즐기지도 않던 치킨이 먹고 싶어 졌다. 그것도 아주 사무치게. 나는 병원 건물 1층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혼자서는 다 먹을 수도 없을 정도의 치킨과 햄버거 세트를 포장해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아주 경쾌한 목소리로 튀김 냄새가 참 좋다고 했다. 튀김을 워낙 좋아해서 얼마 전 은행 포인트로 산 소형 튀김기로 고기도 튀겨먹고, 채소도 튀겨 먹는다고, 그것 참 쓸만하더라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이어갔다. 다시 볼 일 없는 아저씨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알게 되었네. 이건 쓸모없는 이야기일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집 앞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탁자 앞에 앉아 햄버거와 치킨을 먹어치웠다. 콜라도 마구 들이켰다. 오랜만에 먹으니 이게 이렇게 맛있구나 하면서.


꿈이 맞았다. 나는 몇 해 전 친구로부터 들었던 꿈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며칠 무리했더니 몸살이 나서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데, 마침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내 몸에 돌이 쌓이는 꿈을 꿨대. 신기하지.”


엄마가 말한 대로 몸이 돌처럼 천근만근 같았다나. 그걸 내내 떨어져 살던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여전히 기이하다고 친구는 말했다. 나는 알 수 없는 어딘가에 구멍이 난 공기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꿈 따위가 이토록 정확하다니. 꿈이란 본래 자고 일어나면 날아가 버리는 것 아닌가. 정보가 아니라 단상이고, 부정확하기에 금세 잊히기 마련인데. 동거인의 꿈은 나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주었고, 행동하게 했고 그 내용은 현실의 결과와 맞닿아 있었다.

꿈 이야기를 하면서 안부를 묻는 존재는 인간뿐일 것이다. 누군가를 염려하는 마음이 꿈으로 이어지는 일은 대체 어째서 생기는 것일까. 시어머니가 태몽을 꿔주거나 헤어진 지 십 년도 더 된 전 연인의 꿈에 내가 등장하는 일 따위는 왜 벌어지는 것일까. 동거인은 어떻게 내가 아프다는 것을 꿈으로 알게 된 것일까. 꿈은 마음의 무게에 비례하는 일인가. 아니면 계시 같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는 전파가 있나, 텔레파시 같은 거. 이런 생각을 이어갔다. 


나는 세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사람 간에는 냄새로 보이지 않는 정보가 오간다는 이야기를. 우리 몸은 먹는 것에 따라서 다른 체취를 풍긴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나라마다 사람들의 몸 냄새도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몸은 탄수화물을 적게 먹으면 부족한 포도당을 메우기 위해 지방산을 연소하는데 그 과정에서 몸 냄새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뒤죽박죽이었는지 몰랐던 당시의 내 몸이 평소와 다른 체취를 풍긴 것인지도, 호르몬의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냄새와 매력의 관계에 관한 보고서가 꽤 있다는 것을 보면, 체취란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는 요소일 테다. 한 곳에 지내며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 입자가 그의 본능을 발동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감정적 동요가 클수록 더 자주 꿈을 꾼다. 불안, 공포, 조바심, 걱정. 이런 감정은 우리를 깊은 잠에 빠질 수 없게 만든다. 링컨이 자신의 암살을 꿈으로 예지 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그가 사로잡혀 있던 극도의 불안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보좌관들의 증언 중에는 암살이 모의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링컨 자신도 알고 있었던 데다 지속적인 암살 협박에 시달렸고, 심지어 저격수가 쏜 총알이 링컨의 모자를 관통한 적도 있었다고 하니 꿈을 꾸지 않고는 못 배길 입장이었던 것이다.

나는 병원 진단을 받기 몇 달 전부터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나 있었다. 불면으로 새벽까지 뒤척였다.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출근하는 일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체중은 줄었고, 무분별한 말들과 잦은 말다툼과 예민함, 널뛰는 기분, 무기력과 과각성. 이런 통제 안 되는 상태가 이어졌다. 이런 시기에 그와의 동거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해소되지 않는 불편함도 주었다. 바깥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이나 감정은 한 공간에 있으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게 된다. 잠깐 방심하면 나의 괴로움이 그의 괴로움이 되고, 나의 불안이 그의 불안이 된다. 그것도 순식간에. 동거란 그런 것이다. 숨기고 싶어도 좀체 숨겨지지 않는 것. 나는 이미 여러 번 보인 밑바닥을 더 이상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럴수록 움츠러들었다. 작은 방으로 도망치는 시간이 길어졌다. 거기엔 책도, 책상도, 노트북도 있어서 혼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도피할 수 있었다. 그 방에 없는 것은 단 하나. 동거인이었다. 나는 그게 참 편했다. 그 방 의자에서 잠드는 일이 많았다. 그 방에 요가매트를 깔고 그 위에서 수건을 덮고 자는 것이 한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편했고, 동거인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그것이 내 도망의 핑계가 되어주었으니까. 

문 밖에 나갈 때마다 단 벌의 명랑함을 뒤집어진 후드티를 입 듯했다. 좋은 모습과 좋지 않은 모습을 가려서 보여주는 것. 나는 그것만이 그와 나의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 방 안에 갇혔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닫은 문이 그에게는 어떤 메시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조금 냉정해지자면, 내가 과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 느끼는 불안감 혹은 본능과 별개로 이 모든 것은 그저 우연일지도 모른다. 수학자들 중에는 예지몽이란, 그저 통계적으로 꽤 다수에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아무리 특이한 사건이라도 발생 기회가 많으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법칙을 ‘대수의 법칙 Law of Large Numbers’이라고 하는데, 이 법칙에 따르면 나는 한국 인구 약 5,170만 명 중 2,350명 중 한 명일 뿐인 것이다. (한 사람이 365일 꿈을 꾼다고 가정하면 60년간 꿈을 꾸는 횟수는 21,900번이고, 특정 사건이 벌어질 확률은 1/21,900이다. SKEPTIC vol.14 참고) 그래, 세상에 나만큼 아팠던 사람도, 동거하는 인구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테니까. 내 경험은 수학적으로, 통계적으로, 과학적으로 별 거 아닌 일이니 호들갑 떨지 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이천 명 중 한 명이 되는 일은 또 쉽던가. 게다가 타인의 밤에 내 소식이 배달되고 그것이 그이의 입을 통해 내게 되돌아오는 일은 어디 흔한 일인가. 나는 여전히 예지몽이라는 건 기이하고 희귀하며, 심지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내게 꿈이란 현실이 잃어버린 조각. 조물주의 힌트. 인간의 두 번째 언어. 비처럼 내리는 시와 같다. 


동거인의 꿈이 발단이 되어 12월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이 일화는 우리 사이에 두고두고 전시될 거라고. 우리 사이에 마침내 보이지 않는 붉은 끈이 우리를 꽁꽁 묶고 있는 거라고. 꿈이 그것을 증명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서서히 차오르는 충만함을 느끼며 ‘세상엔 이런 기쁨도 있구나.’ 했다.

우리는 그해 3월, 도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설레었다. 캐리어 하나에 짐을 꾸리는 것과 내 파우치에 그의 사적인 것들을 차곡차곡 개켜 넣는 일과 일일이 묻지 않고도 그가 입을 옷가지를 챙기는 것이. 또 한 번 ‘기쁨에도 종류가 있구나.’ 했다. 기쁨은 딱 거기까지였다.

여행은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것을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나. 노동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만큼 열심히 움직였다. 하루는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하필 그가 가보고 싶어 했던 곳에 가는 일정이었다. 날씨에 시달리다 보니 몸이 떨리고 금세 피곤해졌다. 우리는 라멘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말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비는 좀체 그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가 누워있고만 싶었다. 그는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 경로를 검색 중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내 그랬던 것 같다. 그가 앞장서길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여행 기간 내내 그가 어딘가를 찾아 헤매게 했던 것 같다. 음식이 나오자, 나는 다시 힘을 내어 웃었다. 맛있겠다. 먹으니까 힘이 난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 너덜너덜해진 단 벌의 명랑함을 다시 꺼내 입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태연함이라는 가면을 썼다. 나는 그 가면을 보자, 엉엉 울고만 싶었다. 곧 속수무책이 되었다. 너랑 뭘 해야 네가 웃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네가 오고 싶어 했던 이곳에 왔는데 넌 내내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고. 너. 너 때문에 여길 왔는데. 왜 하필 이렇게 비는 쏟아지냐고.

여행 기간 내내 우리는 무언가를 숨기기 바빴다. 추운 것. 피곤한 것. 힘든 것. 돌아가고 싶은 것. 재미없는 것. 우리의 여행은 그러니까 시작부터 이상했다. 그는 나 때문에 여행을 갔고, 나는 그 때문에 갔다. 그가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기뻐할 수 없었고, 내가 기뻐하지 않는데 그 라고 좋을 리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함께 웃을 수 있는지. 그의 말대로 여행할 돈으로 맥북이나 샀다면 적어도 그가 그토록 불편해하던 우는 일 따위는 없었을까. 우리는 함께 지낼 수 있었을까. 

무언가가 악화되는 데에는 불과 한 달이 채 걸리지 않는다. 아니, 일주일.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충분히 나빠질 수 있다. 누군가는 단 몇 초만으로도 세상이 바뀐 것 같은 경험을 해봤다고 했지. 나는 여행을 다녀온 후 두 달여가 지나 5월 초가 되었을 때, 혼자 지낼 집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6월이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살지 않게 되었다. 동거인의 꿈은 우리 사이에 덩그러니 전시되었다. 양 끝으로 서로를 향해 굳게 닫힌 문이 있는 아주 긴 복도, 그 중간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서로 다른 우리가 섞이는 것이다. 오죽하면 ‘케미’라는 말이 있겠는가. 관계란 잇는다고 이어지거나 끊는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농도와 무게를 기준으로, 비탈을 따라 흐르다가 한 곳에 고이는 것이다. 너와 내가 우아한 액체가 되는 것. 이것이 관계의 형태, 꿈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중학생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시장 골목을 지나 귀가했었다. 요즘처럼 아케이드형 지붕이 있는 골목은 아니었지만 그곳에는 천막도 있고, 파라솔도 있어서 비를 조금이나마 덜 맞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바람은 피할 수 있었어도 말 그대로 길목을 천막으로 이어 놓았던 터라 곳곳에 덜 막힌 곳에서는 비가 줄줄 새었고, 간혹 오래된 천막에는 구멍이 나있었다. 천막에 기울기를 주지 않으면 빗물이 한쪽으로 고이다 못해 그 무게를 못 이겨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면 물벼락이 떨어져 다리가 다 젖도록 물이 튀었다. 


나는 천막 위 빗물이 쏟아지는 것이야말로 꿈이 우리에게 오는 방식과 가장 유사하지 않은가 한다. 천막에 고인 빗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에는 맥락이 없다. 빗물은 무자비하다. 천막 밑에 무엇이 있든, 준비가 되어 있든 말든 그저 (떨어질) 때가 되면 떨어진다. 그것이 빗물의 소통 방식이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예상할 수 없기에 당혹스럽고 피할 수 없기에 운명적이다. 

비 오는 날 재래시장 골목의 풍경. 골목 이곳저곳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천막에서 쪼르르 떨어진 빗물이 정수리에 떨어졌을 때의 느낌. 물방울이 어깨 위로 톡 떨어지거나 머리에 떨어진 빗방울이 볼을 타고 내릴 때, 그사이 체온에 맞춰져 미지근해진 빗물을 피부로 느껴본 경험. 혹은 마구잡이로 촤라락! 쏟아지는 물세례에 다리를 적셔본 황당한 경험 같은 것은 내 안에서 ‘꿈꾸기’로 재해석되었다. 


머리 위에 천막이 있다. 

그 위로 그치지 않고 내리는 사람이 있다. 

그가 모이고 모여 크고 작은 웅덩이를 만든다. 

구멍 사이로 그가 떨어진다. 

천막은 그의 무게를 못 이기고 기울다가 

쏟는다. 뒤집어쓴다.

나는 그에게 폭싹 젖는다.


‘꿈을 꾸는 것’이란 타인의 존재로 푹 젖는 것, 다른 세계의 무작위성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예고를 모르는 빗물을 맞듯이 쏟아지는 그를 온몸으로 맞는 것이다. 누군가 내 꿈에 등장해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일을 벌이고 모른 척하고 느닷없이 병들어 있고 한참 앞서있거나 뒤로 물러나 있을 때. 우리는 빗물 세례를 맞은 것과 같은 기분이 되지 않던가. 


나는 ‘꿈’을 언어로 택한 세계. 미움, 증오, 서운함마저 양질의 원료가 되는 세계. 현실에서는 말이 안 돼서 죽고 불가능해서 죽은 것들이 생생히 살아 날뛰는 세계가 밤마다 내 머리맡에 펼쳐지는 상상을 한다. 그 세계에서 모두가 그치지 않고 떨어지길. 그러다 이 세계로 슬쩍 흘러들어 꿈이 되어주길. 이제 나는 누구의 머리 위로 쏟아질까. 오늘 밤 내 머리 위 천막에는 누가 고여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을까. 


나와 너는 우리에게 과거가 되었다. 실은. 네가 도통 쏟아지질 않는다. 너의 의지인지, 머리 위 천막이 튼튼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할 수 없다. 우리는 긴 복도에 그 꿈 하나를 가두자. 못 몇 개쯤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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