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리 Jul 02. 2019

013-1. 손의 용도

#단상 #사진일기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따는 사람을 보고 감탄했던 때가 있었지.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이. 처음이었어. 병따개가 할 일을 숟가락도 할 수 있다니. 그 사실을 가장 처음 알게 된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마 가진 물건이 많지는 않았을 거야. 젓가락 한 벌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단출한 사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반찬도 떠먹으면서, 숟가락 하나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삶으로 터득한 사람. 아마 지금 내 책상 위, 내 주머니 속을 슬쩍 보며 너 하나 살자고 이 많은 물건이 봉사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냐고 입을 비죽일 사람. 그 사람에게도 젓가락이 있었을 거야. 그러나 숟가락을 달리 쓴 것처럼 그이의 젓가락은 어쩌면 문고리가 되어 있을지도. 보기 좋게 굽어서 꿋꿋하게 비밀을 지키는 일을 해내고 있을지도 모르지.


‘처음’에 대해 생각해.

숟가락이 지닌 오목함의 이유 같은 것 말이야. 우리의 입이, 눈이, 코가 저마다 먹고, 보고, 냄새 맡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이유, 최초의 용도.

세상엔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지. 가령, 이마 같은 것. (이제와 이마가 없다면 우린 모두 조금씩 우스꽝스럽겠지만) 이마는 두개골에 담긴 뇌의 면적 때문에 생긴 여백 같은 거. 아닐까? 낭만이 없대도 할 수 없지. 열이 나면 짚어보기도 하고, 둥근 이마를 보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건, 애초에 이마가 있었기 때문일 테니까.

세상엔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첫 번째 이유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지. 가령, 손 같은 것. 손은 쥘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찌를 수 있고, 때릴 수 있고, 쓰다듬을 수 있지. 그런데 말이지. 그건 손이 아니라 팔이 하는 거야. 손은 그저 쥐고 놓지.


엄마가 아이에게 손 내밀며 ‘엄마 손 잡아.’ 하는 거 말이야.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작은 사람은 큰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한 사람은 앞에, 또 한 사람은 뒤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걷는 광경을 보았어. 나는 그것이야말로 손의 최초의 용도가 아닐까 생각해. 손은 내 몸에 타인의 존재를 묶기 위한 거야. 내내 서로에게 속하지 않았던 개개인이 느슨한 우리가 되는 거.


손을 잡는다는 건, 신뢰. 앞선 몸이 가는 여정에 뒤선 몸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앞서가는 몸이 세상 어느 곳으로 뻗어갈지 골몰한다면, 뒤선 몸은 그 방향이 아니라 앞선 몸을 믿는 것이지. 다섯 개의 작은 움켜쥠은 오직 하나의 의지야.

손을 놓는다는 건, 상실. 무의미로 멀어져 가는 몸의 항해.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서 우르르 쏟아져서 멍든 복숭아. 뚝 소리를 내고 끊어진 노끈 같은 것. 뒤선 몸에도 앞선 몸보다 중요한 사정이 생기는 것이지. 다섯 개의 작은 펼쳐짐도 오직 하나의 의지야.


손의 첫 번째 용도를 생각해. 손은 무엇을 잡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 손은 잡기 위한 것일까, 놓기 위한 것일까.

손이 다름 아닌 손을 잡는 거. 그리고 놓는 거. 나는 그것이 손의 최초의 용도일 거라고 믿어.






할머니 두 분이 지나가셨다. 무언가 잔뜩 들었는지 무거운 박스 하나를 한 손 씩 나눠 들고. 손을 나란히. 손목을 나란히. 걸음을 나란히. 그렇게 서로의 보폭에 맞춰 누구든 더 들거나 덜 들지 않게 조심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013. 우리는 긴 복도에 그 꿈 하나를 가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