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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온 Jul 21. 2024

영화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리뷰

이 세상의 모든 퀴어들이여, 파이팅이다.

* 이 리뷰는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 가기 눌러 주세요.


* 이 글의 내용은 철저히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가볍게 고른 영화였다. 퀴어, 그중에서도 레즈 영화라 전부터 위시리스트에 담아 놓긴 했지만 보기로 마음먹은 건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했고, 짧은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쓰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구독하는 ott 중에서 예상 별점 높은 순으로 정렬했을 때 가장 첫 번째로 뜬 영화라 봐야겠다고 결심했을 뿐이었다.


이 영화 도입부를 볼 때만 해도 몰랐는데, 내가 이미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더라고. 그때는 별생각 없이 2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킬링 타임으로 본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감상이 풍부해졌다. 내가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써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더 집중하여 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경이가 화를 낸 이유가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다만 대처가 미숙했을 뿐. 그래서 부제목이 '어리고 불안한 나에게 보내는 편지'인가 보다. 아웃팅은 지금도 민감한 문제이다. 커뮤니티를 봐도 심심찮게 올라오는 주제이고, 아직 사회에서 퀴어를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신경이 더욱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성인도 그런데 고등학생이라면 오죽했을까. 학교에서 대놓고 레즈비언 아니냐고 놀림받는 연이는 아웃팅에 대해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진 않을까, 우리가 평범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아마 하경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둘의 관계가 특별한, 아니 남들이 보기에 특이한 관계라는 걸. 그런데 그걸 애인한테 직접 들을 때의 기분이란 또 다른 거니까. 내가 부끄럽나, 어쩌면 본인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연애 초반에 여자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학교에 친구도, 딱히 소속된 곳도 없는 나와 달리 동아리도 많이 하고 충분히 특정될 수 있는 신분이었던 여자친구는 아웃팅에 특히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와 만나는 걸 티 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시의 나도 서운하고 내가 창피한가, 이런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마지막 부분에 연이와 하경이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웃는 장면에서 난 어렴풋이 하경이가, 연이가 그런 고민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았구나 싶어 안도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어리고 불안했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지금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고, 그로 인해 고통받고 고민하고 있을 모든 퀴어들에게 띄우는 위로다. 본인이 퀴어인 것에 대해 이상함이나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고민은 당연한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절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거나 본인의 성 지향성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싶다. 또한 아웃팅에 민감한 애인을 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생각이나 고민에 충분히 공감해 주고, 그렇다고 해서 본인을 덜 사랑하는 게 절대 아니니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응원하고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퀴어들이여,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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