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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온 Jul 17. 2024

책 '구의 증명' 리뷰

싫고 그로테스트한, 그러나 이해되는


* 이 리뷰는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 가기 눌러 주세요.


* 이 글의 내용은 철저히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유명한 책이라 제목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 내용도 알고 있었다. 예전엔 인생 책이라고 소개할 만큼 인상 깊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다.


'구의 증명 읽는데… 분명 싫고 그로테스크한데… 이해되는 무언가가 있고… 내가 이해된다는 게 싫어.' 내가 이 책을 읽는 중간에 친구에게 sns로 보냈던 말이다. 이 책은 구가 죽으며 내용이 시작된다. 구와 담이 어떤 사이인지, 왜 구가 죽게 되었는지, 왜 담이 구를 먹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냅다 구가 죽기 때문에 읽으며 어리둥절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겠지만, 친구에게 보낸 말처럼 난 내가 이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는 게 싫었다. 나를 이해시킨 건 온전히 작가의 몫이니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느낀 바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볼까. 나는 읽으면서 구가 담을 사랑한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 무서울 수 있지. 그래, 담을 보면 죽은 노마가 떠올라 마음이 아파 도저히 담을 볼 자신이 없었을 수 있지. 그렇다고 진주 누나랑 같이 있는 건 뭔데. 백 번 양보해서 그래, 위로해 줄 사람이, 옆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했을 수 있지. 근데 그게 꼭 잠자리까지 갔어야 했나? 담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했다면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건가. 구는 사랑하는 마음과 육체를 나누는 행위가 별개의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담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섹스도 구별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고작 섹스하기 위해, 그게 아니더라도 외롭다는 이유로, 곁에 누군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만나고 잠자리를 갖는 사람이라면 담은 훨씬 좋은 사람을 만나 마땅하다, 구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런데 이해 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 나는 어느새 구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어,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겠어 생각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내가 구의 상황이라면 난 그러지 않고 배길 수 있었을까, 자문하면 당당하게 난 안 그럴 거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고, 그런 내가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담이 구에게 주는 사랑의 크기가 부러웠던 것도 같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난 누군가에게,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받거나 줄 수 있을까.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다, 말이 쉽지 과연 내 애인이 구의 상황을 겪고 있을 때에도 선뜻 이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구에게 화가 났고, 담이 더 안쓰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나쁘다고,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그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로 내가 왈가왈부 할 자격이 있나. 이 책에 나왔듯이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기에, 괴로움이 있다고 바로 당사자도 아닌 사람이 이별을 권하는 게 맞는 걸까.


괴롭다는 것은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


구와 담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금까지 나를 거쳐 온 관계들을 생각하게 된다. 꼭 연인 관계가 아니었더라도, 내가 지금까지 만난 친구들, 지인들까지. 그 사람들도 어디선가 이런 사랑을 하고 있을까. 아니라면, 꼭 세상에 서로만 있는 것 같은 사랑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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