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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온 Jul 13. 2024

책 '재와 물거품' 리뷰

특이한, 그러나 특이하지만은 않은

* 이 리뷰는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 가기 눌러 주세요.


* 이 글의 내용은 철저히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언젠가 추천받았던 책이라 꼭 한 번 읽어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추천을 받은 뒤로 주변에서 여러 번 얘기가 나왔어서 '이게 그렇게 재미있나?' 반신반의하며 첫 장을 펼쳤다. 여성과 여성 사이의 사랑을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한 책은 없을 것이라 얘기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던 듯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 그리 인상 깊게 남은 책은 아니었다. '뒤로 갈수록 재미있어지겠지....' 기대감을 버리지 못한 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조금씩 실망하는 마음은 더해져 갔다. 마녀가 된 무녀와 인간이 된 인어의 사랑 이야기라, 이 특별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갈까 기대했었는데, 그냥 특이한 이야기들 중 하나였다. 개연성이 없고 우연적인 일들의 연속이어서 뒷내용이 궁금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에 단점만 있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친구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입버릇처럼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난 이 책에 나오는 수아처럼, 마리처럼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처음 보는 것처럼, 언제나 새로운 것처럼 애인을 바라보고 사랑해야 되는데 나는 지금 그러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또 지금 우리 관계를 설명하는 듯한 문구가 있어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아래 적은 글이 바로 그 문구이다.


대체 너는 나를 왜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 나는 어째서 너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도 너를 놓아주지 못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걸까?


많은 상처를 주고, 또 받으면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갖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서로를 놓지 못하는 우리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는데, 서로를 죽을 만큼 사랑하는 수아와 마리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싶어 위안이 되었다.


어쩌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상처를 주고받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하고 잠깐동안 생각해 본다. 물론 서로 행복하기만 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관계이겠지만, 둘 다 불완전한 사람인지라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우면서도, 동시에 그렇기에 타인과의 사랑이 아름답고 숭고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 좋았던 건, 퀴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렸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다정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표현을 했다는 점이다. 여자친구는 아웃팅에 대해 걱정이 많다. 누군가가 우리를 혐오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두렵고, 그래서 친하다고 생각이 드는 친구들에게도 말하는 게 무섭다고 한다. 물론 나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 심지어는 나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단순히 내가 퀴어라는 사실만으로,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를 배척하고 경멸하면 견디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꽤 개방적인 학교 문화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가, 이 책에 나오는 혐오 세력보다 우리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내 경험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도 커서 필남 할머니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단순한 레즈 소설이라기엔 sf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고, 그렇다고 나와 다른 세계의 레즈 소설이라기엔 현실적인 요소가 많다. 동성애자거나 동성애에 거부감이 없는 분들이 한 번쯤은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읽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락 한 통 남겨 보는 건 어떨까.

울어도 돼. 내가 곁에 있을게. 내가 널 지켜줄게. 난 이미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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