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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Jul 09. 2024

여행, 삶 그 어딘가

두번째 세계여행, 그 속의 불안함과 맞서는 이야기 

이번 여행에서 한 때는 일상이 되어버린 순간들이 있었다.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고 피어오르는 에센스 향 사이에 담배연기를 불어넣는 밤으로 고독을 달래며, 당연한 내일을 최대한 천천히 맞이하기 위해 잠을 설치던 연속된 하루들 말이다. 타국이라는 낯선 공간에 서 있는 이방인은 오래 지낼수록 설렘과 고독함을 가진 동전을 몇 시간 단위로 손쉽게 뒤집었고 그때에는 유독 던져진 동전은 자꾸 한 면만 보여줬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유희 목적인 여행이 아닌 살아보고자 떠났음에도 일상에 있을만한 가냘픈 외로움과 불안함에도 쉽게 하루가 무너졌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지난 여행의 설익은 마무리를 만회하고자 했다. 코로나로 인해 강제귀국을 해야 했던 그때의 상황보다는 숱하게 여행을 했어도 당장 세계 어딘가에 재회할 공간과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당시에 되돌아갈 곳이 한국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 탓일까, 좀처럼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한국인 동행과 함께 하며 마치 영화를 보듯이 그저 그들의 삶을 거리를 두고 바라봤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그곳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는 진실되고 당연한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파도는 모래사장에 항상 다른 속도로 다가왔다 돌아간다. 인생을 거시적으로 보면 이처럼 모든 것들이 나를 휩쓸고 언제 그랬냐는 듯 멀어진다. 하지만 당연한 말에도 매일 다른 의미를 심으며 살아가는 게 인간의 어리석은 숙명인 것처럼 ‘스쳐가는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고, 대신 다음에 나는 꼭 그곳에서 살아야겠다’라는 말이 나왔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유락을 위해 잠시 일상에서 멀어져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렇지만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일상과 비일상의 구분 없이 내 몸을 그대로 세상에 던졌다는 말이다. 여행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든 일 중에 하나이니, 굳이 따지자면 여행과 산다는 것을 구별하기보단 여행이 삶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여행 이외 의 느낄 수 있는 감정, 경험들을 마주하며 그 공간에서 그 사람들과 모든 감정을 다 나누고 부딪히고 비로소 유대감을 느꼈을 때 혹은 사회에 소속감을 느낄 때, 비로소 외국에서 산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쉽게 툭하고 내뱉었던 다짐이 민망할 정도로 완전하게 ‘산다’고 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불완전한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언어로 대화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틀에 넣는 것이라 그 과정에서도 불명확함이 수반된다. 하지만 이를 부서진 틀에 넣는다는 것은 더 큰 불확실성을 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나를 오로지 대화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는 모든 아우라를 집중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더 상황과 사람에 눈치를 보게 되어 자꾸 움추러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벽들이 내 주변으로 세워져 있었고, 내가 세운 건지 혹은 사람들이 세워진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마다 벽이 한 층씩 높아졌다. 


이로 인해 여행에서 삶으로 가는 길목에서 자꾸 방황한다고 여겼고 나는 불안정한 모습을 타인에게 감추려고 했다. 그리고 어쩌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마음속 기저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욕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건데? 한국 와서 취직해야지’  혹은 ‘ 너의 삶은 위험요소가 커’라는 말에 지금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은 할 수 없지만, ‘어차피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라는 말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누군가가 여행은 일상, 일상이 여행이라며 우리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눈을 가지고 다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쓴 글을 읽은 적 있다. 이 말이 거북한 이유는 다시 돌아갈 거라는 암묵적인 암시  때문일 테다. 모두가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결국 너도 그럴 거라는 압박감 받는다. 우리 엄마는 늘 구심점이 있어야 사람이 안정감이 생긴다며 항상 이곳에 있다고 말을 한다. 그러한 집이 있다는 점에 감사하면서도 나는 결코 집을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 사회에 소속되어 유대감을 느끼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되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엉망진창인 세계 속에서 발을 내딛는 것이 나는 진정한 멋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산다’의 의미로 불어넣어 본다. 


손에서 습관처럼 튕겼던 동전은 이 글을 썼던 카페의 팁 박스에 넣어뒀다. 

가게 문을 나서니, 보슬비가 내린다. 누군가는 우산을, 누군가는 뜀으로 상황을 무마하지만

나는 그저 사뿐하게 걸었다. 애석하게도 여전히 젖은 비가 거슬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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