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굴레
무엇인가에 미쳤다는 것은 균형이 깨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의 30대 후반의 삶은 그렇게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에만 집중된 채 몸과 마음의 모든 균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주 큰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댄 제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갇혀있을 땐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죠. 그곳이 제가 사는 세상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인공수정도 번번이 실패하고 힘겨운 나날의 연속.
그 당시 성행하던 길거리 선교활동을 종교의 강요로 여길 만큼 싫어했던 제가 스스로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세례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좋았고 무언가에 매달리고 나를 구해줄 것을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 세례를 받은 저는 수녀님과의 성경 공부에도 자진할 만큼 열심히 종교 활동에 임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혜화동 성당은 따뜻하고 저만의 성소로 삼고 싶을 만큼 좋은 곳이었음에도 저를 그 구덩이에서 꺼내주지는 못했습니다.
신부님도 수녀님도 모두 인간일 뿐입니다. 제 마음속이 지옥인데 누가 저를 구해줄 수가 있었을까요.
그 지옥 같은, 제가 갇혀있던 세상이 너무 힘들었음은 분명했던 것 같아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았으니까요.
저는 성당 나가기를 그만두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2010년 1월 1일 올해는 무조건 100권을 읽자고 마음먹고 그냥 읽기 시작했습니다.
늘 책 읽기가 취미가 되길 원했지만 결코 그것이 나의 습관인 적은 없던 저는 집에 틀어박혀 무작정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9권 정도는 무조건 읽어야 100권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때는 권 수를 채우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봄, 여름이 지난 8월 말쯤 어느 날 저는 밤새 잠 한숨을 안 자고 영어학원 등록을 고민했습니다. 남편이 유학을 준비 중이었기에 저도 생활을 위해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전 그 당시 ‘곧 임신할 테니, 조심해야 해..’라는 생각에 아무 외부 활동도 안 하고 있었거든요.
어학원 등록, 그걸 왜 잠도 한숨 못 자며 고민했는지 그때는 몰랐어요. 그렇게 밤새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가기로 결심하고 아침에 종로로 버스를 타고 나가 등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그날을 돌아보며 알았어요. 그날 비로소 저는 그 구덩이를 기어 나온 것이라는 걸. 밤새 고민한 것은 영어학원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기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한 포기라는 것을요.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와서 친구들도 만나고 술도 한잔씩 함께하고 학원도 다니며 다 잊고 지냈습니다. 솔직히 내려놨죠. (그러다 겨울 임신을 확인했답니다. 삶은 참 얄궂죠. 다 내려놓고 다시 앞을 보고 달리고 있는데 주시더군요)
그렇게 원래도 집순이인 제가 집안에만 처박혀 오로지 임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상적인 생각과 생활을 할 수 없던 저만의 지옥 같은 웅덩이를 제 힘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책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도 책의 힘을 믿어요.
제가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고, 책은 저에게 안 먹으면 죽는 또 다른 양식입니다.
저는 책이 좋고 책을 읽는 저를 믿고 매일 성장하고 싶고 그것을 나누고도 싶습니다.
여기 브런치 작가님들도 책 너무 좋아하시죠? 쓰시는 분들이니 아마 다들 그 마음 아실 거예요.
여러분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