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를 묻는 너에게

오늘의 온전한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

by 이을

매일 아침, 등교하기 전에 아들은 오늘의 날씨를 묻는다. 나는 분주한 마음에 폰에 대고 말한다.

"하이 빅스비, 오늘의 날씨 알려줘!"

그럼 친절한 빅스비가 날씨를 알려준다. 빅스비의 안내에 따라 나와 아들은 외출복을 고른다.


저녁이 되어 일기장을 펼친 아들이

내게 오늘의 날씨를 물었다.

"그건 네가 잘 생각해 봐! "

아들은 오늘의 날씨를 하루에 두 번 물어본다.

나는 아침에는 날씨를 알려주면서,

저녁에는 알려주지 않는 이상한 엄마다.


"엄마! 오늘 날씨 어땠라?"

아들의 이 물음에 치 글짓기 시험대에 오른 것 같았다. 오늘의 날씨가 어땠더라?

그걸 문장으로 표현한다? 에효, 진짜 어렵구나.


오늘의 날씨를 묻는 너에게.

최고 기온 22도, 최저 기온 12도,

어쨌든 맑음!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왕초보 브런치 가인 내가

30년 만에 오늘의 날씨를 한번 적여본다.




[ 아들의 날씨 ]

7살 때부터 써온 아들의 일기장들을 열어보았다.


오늘의 날씨:

'콘크리트처럼 흐렸다'

' 톡 쏘는 추위'

'축구하고 싶은 날씨'

'여우볕'

'냉장고처럼 꽁꽁'

' 나를 날아가게 하는 바람'

'나처럼 우울한 날씨'

' 어지러움'

'비가 수도꼭지 물처럼 내려옴'

'하늘이 바다가 된 날'

'우산에서 나는 소리가 새 똥 소리가 된 날'

'해가 웃음'

'쪄 죽겠음'

'하파(하얀 물감, 파란 물감)'

'하늘에 구멍 뚫림'

'하늘이 뚫렸다 막혔다'

'하늘이 슬프다'

'시무룩한 하늘'


우리 집 작은 시인이 살고 있었다. 나는 너처럼 오늘 주어진 날씨를 생각하며 살지 않았구나. 그저 맑음, 흐림, 비 옴인 내 세계에 네 날씨 표현은

나를 내리 치는 망치이자 글쓰기 자극제다.




[엄마의 오늘 날씨]


사월 끝자락의 하늘은 비취색, 보석이 반짝이는 빛.

그 사이 하얀 비행기구름이 그어져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그 선 따라 나도 저 멀리 날아가고 싶어

발이 동 가벼워진다.

한나절 주차해 놓은 차 안은 뜨거운데

바람이 햇볕 비치는 자리에 여유를 불어주고,

지나는 사람들 이마 한번 들쳐주고 도망 갔다.

초록빛에 눈이 시원해지면 걷고 싶어지고

걷다 보면 얼음 동동 아메리카노가 생각나.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며

짧은 봄과 작별할 준비를 하지.

아마 5월부터 우리는 쪄 죽을 찜통더위

옥수수가 되어 어있다가

한숨 식히기 위해 찜통 밖로 나와

시원한 쟁반 위에 러눕고 싶을게다.

오늘의 날씨 끝!



비가 오면 우울 모드를 켜서 상투적으로

막거리와 부침개를 떠올리고, 날이 너무 맑으면 내 기분과 다른 날씨에 배신감을 느끼다가, 변덕스러운 날씨 탓으로 내 모든 비운과 신체적 고통을 떠 넘겼었다. 매일의 날씨에서 나를 보호하고자 빅스비를 찾고, 객관적 수치로 날씨를 단정 짓고 살았는데 아들의 물음 덕분에 스칠뻔한 오늘의 날씨를 제대로 려보았다.



저녁에 너와 마주 앉았을 때 오늘의 날씨를 묻는 너에게 엄마의 오늘 날씨를 들려주려고 한다.

그전에 남편에게 먼저 보여주었다.

"이게 무. 슨. 날. 씨. 야?"

네가 엄마보다 낫단 소리. 그럼 내 날씨는 꽁꽁 숨겨둬야지. 엄마는 매일 달라지는

네 날씨가 무지 궁금거든.

처럼 매일 적으로 살고 싶다.

일기 쓰기가 싫다는 순수한 작은 시인이여! 영원주라.


Q. '씨 좋다, 이상하다' 말고

당신의 오늘 날씨를 표현해 보시겠어요?



오늘의 온전한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