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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럭키슈퍼 / 고선경

by 최형만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일단 심사자인 이문재 시인과 정끝별 시인의 심사평을 보겠습니다.


‘럭키슈퍼’(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최근 시의 파장 안에 있으면서도 지금-여기의 사회 현실과 청춘의 당사자성이 감지된다는 미덕이 있었다. 버려진 과일(홍시), 낙과(사과), 씨는 물론 껍질째 먹는 과일(자두), 그리고 부풀었다 터지는 단물 빠진 풍선껌, 헐렁한 양말, 납작한 동전을 먹는 자판기 등이 있는 ‘럭키슈퍼’가 화자의 현주소다. 젊은이의 미래와는 먼 오브제들이다. 화자는 ‘농담 맛’이 가득한 ‘럭키슈퍼’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화자의 동창이자 ‘럭키슈퍼’ 사장 딸은 감미료로 비유되는 ‘대기업의 맛’을 맛보고 있다는 대비도 능청스럽다. 퉁치면서 눙치고, 관(貫)하면서 통(通)하는 ‘행운’의 의미를 농담과 엮어내는 시적 패기를 높이 평가했다.



시가 어렵기는커녕 재밌습니다. 일전에 소개한 임후성 시인의 ‘볼트’처럼 골머리를 앓으며 이해해야 하는 사유의 언어도 없는 것 같으니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당선작이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막 들죠. 제가 가끔 언급하지만, 어떤 작품을 읽을 때 당선작으로 읽는 것과, 습작시나 혹은 발표작으로 읽는 것과는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천지 차이입니다.


오늘 소개한 ‘럭키슈퍼’도 당선작으로 보니까 더 좋아 보이는 거지, 만약 습작시라고 보여주면 ‘괜찮네’, ‘재밌네’ 이 정도 반응에서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문예지 발표작으로 읽어도 마찬가지였을 테고요. 그런데 우리는 당선작이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읽는 순간, 이 ‘괜찮고, 재밌는’ 작품은 단순히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더 많은 해석과 생각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문학카페에서 시인들의 수많은 발표작을 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대개는 그냥저냥 일별하는 수준일 겁니다. 물론 개중에는 공모전에 내기에는 자신 없지만, 발표작이니만큼 실험적으로 과감하게 써본 작품도 있겠고, 좋은 작품은 공모전에 내려고 아껴두고 싶은 마음에 좀 처지는 걸 발표할 수도 있겠고, 발표작이 좋아야 청탁이 잘 들어온다는 생각에 최고의 작품을 내는 이도 있겠죠. 하지만 어떻든 간에 발표작은 기본적으로 시의 얼개는 갖췄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이러한 발표작을 접할 때의 마음가짐입니다. 당선작이라 생각하고 읽으면 보이지 않던 것까지 보일 때가 있거든요. 그런 거 하나만 발견해도 발표작을 읽는 보람은 있는 거고요. 소개한 시의 1연 첫 행을 보세요.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이런 시구를 보면서 농담이라는 게 왜 껍질째 먹는 과일인지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그런 겁니다. 그냥 그렇게 쓰는 거죠. 3연까지 읽어봐도 인과관계는 전혀 없어요. 1연 2행에서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이 시구가 1행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기껏해야 홍시를 껍질째 먹는 까마귀가 농담을 먹는 거라고 생각될 뿐이죠.


2연에서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는 왜 굳이 세는 걸까요? 그러다가 갑자기 원래 낙과가 맛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건 1연에서 과일을 얘기했으니 2연에서는 내용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부푼 풍선껌을 가져오는 겁니다. 역시나 부푼 풍선껌의 외양이 열매로 치환되고, 풍선껌을 터뜨렸을 때 떨어져 깨지는 낙과를 연상하는 식이죠. 내가 부는 풍선껌이나 사과를 하나의 세계로 인식해야 다음 연에서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말할 건덕지가 생기거든요.




이러나저러나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 세계를 ‘농담’으로 어떻게 표현했는가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들이죠.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좋거든요, -소화되거든요, -기분인데요, -싶어지는데요’,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심사자나 독자를 끌어당기는 건 농담이 아니라, 결국 농담으로 가득 찬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입니다. 시의 내용을 해석하고 말고도 없어요. 이런 표현법을 적재적소에 섞어 넣으면서 묘한 리듬감을 가져가는 겁니다. 그러면 시는 더 돋보이기 마련이거든요.


이건 특별한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써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간혹 시를 굉장히 깊은 사유의 영역이라 보면서, 그런 작품은 난해시여서 많은 공부가 필요한 거라 여깁니다. 실제로 그런 시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시를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말놀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그러니 어떤 시든 읽기 전에 당선작이라 생각하고 좋은 점을 보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를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은 시구가 있었는데 7연 3행이었습니다.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매일 겪는 일상의 고통과 짜증과 스트레스는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를 보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삶도 없지 싶은데요. 이 시를 쓴 고선경 시인의 수상 소감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것을 더 잘 사랑하고 싶은 마음, 그것마저 사랑이라고 믿는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금보다 더 잘 사랑하고 싶은 마음, 이 역시 사랑의 다른 모습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 많이 행복하고 많이 사랑합시다. 최근에 호남을 방문한 어떤 분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지 않았습니까? ㅎ


) 제가 시를 해석하기보다 감상에 머문 것은 우리가 시를 써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무엇인지 아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해석하면 그걸로 끝나지만, 글에서 정서적 감흥을 느낀다는 건 자신의 시를 써나가는 힘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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