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가진 아이를 유산했다.
많이 울었다 울고 코 풀고를 하도 해서 얼굴이 다 까질 정도로 그렇게 울었다. 하지만 아무리 울어도 이 원통한 마음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울다 울다 나는 원망할 대상을 찾아 나선다. 관심과 배려가 시댁보다 못한 친정 식구들이 원망스럽고, 분명 축하로 시작했으나 본인의 유산 경험을 신나게 떠들어대는 몇몇 사람들에게 분노와 환멸을 느끼며 그들 탓도 해본다.
태몽
시험관 이식 3일 차 새벽, 꿈을 꿨다. 횡단보도를 마주하고 반대편에 서있던 까맣고 작은 원숭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설마 나한테 안기려고 하나? 생각하는 찰나 아기 원숭이는 긴 팔을 내 목에 감으며 그렇게 안겼다. 그때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얼마나 생생하던지, 정말 현실 같았다. 나는 그렇게 원숭이를 품에 안은 채로 주변을 돌아다니다 잠에서 깼고 야근 중이던 남편에게 전화해 얘길 했더니 무조건 태몽이라 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처음으로 임테기 두 줄을 보았다. 10월엔 내 생일이 있었고, 생일 선물을 묻는 남편에게 단연 '아이'라고 대답했었는데, 정말 기적처럼 생일에 찾아온 우리 아가.
짧은 여정
초반부터 5일가량 발달이 느려 우려 속에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일주일마다 열심히 크고 있던 기특한 아기, 여차하면 입원도 불사하며 그렇게 지켜내던 아기는 7주 3일 차 검진에서 희미한 맥박을 보여주었다. '엄마가 노력 많이 했는데 너무 안타깝네요'라던 초음파 교수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치의에게서 희망적인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이변은 없었다. '오늘부터 약과 주사 모두 끊고 다음 주에 수술합시다'..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인 7주 4일 차 저녁에는 아기가 떠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날까지도 있었던 입덧과 가슴 통증 등 모든 임신 증상들이 하루 만에 없어졌으니까.
목요일에 유산 소견 듣고 오늘은 일요일, 수술까지는 앞으로도 3일이 더 남았다. 어제저녁을 먹고 속이 더부룩해 냉장고 속 콜라를 꺼내 들었지만 이내 내려놓았다. 아직 아기가 내 뱃속에 있기 때문에, 임신 중에 아기를 위해 하지 않았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가 없다. 힘겹게 뛰던 심장은 이미 멈췄을 테지만 그래도 아직 내 몸속에 있는 아기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너는 내게 행복만 주었는데 나는 네게 힘듦만 주었던 건 아닐까, 초기 유산은 엄마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지만 자책과 원망은 어쩔 수가 없다. 나보다 일찌감치 결혼한 주위 친구들 중엔 유산 경험이 있는 집들이 더러 있다.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지만 지금에 이르고 보니 그때의 나는 백 퍼센트 공감하지는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흔한 일이고 금방 치유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 그런데 내 얘기가 되니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
병원에 다녀온 후 남편은 내 멘탈케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산은 나만의 일이 아닌 우리 부부의 일이고 남편에게도 크나큰 슬픔인데 자신의 슬픔은 뒤로하고 나를 챙겨야 하는 남편 생각에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지 않은가, 지금 내가 바라고 비는 것은 우리에게 잠시 다녀간 아이가 떠나는 길에 너무 힘들지 않았길, 많이 아프지 않았길 바라는 것뿐이다. 가을 단풍이 예쁜 동네 길을 지나치며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