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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Oct 07. 2024

죄책감에 중독된 것일까?


우리에게 프로그래밍 된 수많은 신념 중에


아래는 정말 대표적인 것중 하나라 생각된다.



"착해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



마음공부를 시작하고 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정말 문득 어렸을 때 들었던 캐럴송 하나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어른이 돼서 오랜만에 이 노래의 가사를 읊어 보는데


그 노래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날 때 장난할 때도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



어렸을 때 정말 많이 듣고


따라 불렀던 노래다.



이런 노래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의 개념을 내 마음속에 주입시켰다.



착한 아이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그리고 나는 매 순간 평가받고 있다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산타 할아버지 또는 어떤 상위의 존재에게.



울면 안 된다고.


울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울지 않았다.


우는 건 나쁜 아이고, 나약한 아이라고 믿었다.


그런 아이는 사랑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착한 척하며 살았다.


나의 기분 상태와 상관없이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하고


내 마음이 불편해도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억지로 어울리고, 좋아하는 척했다.



그래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내 안에는 언제나 죄책감이 거대하게 존재했다.



착한 '척'하는 나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왜 나는 진정으로 기뻐하며 남을 배려할 수 없는지


왜 나는 '진짜' 착하지 않은 건지


스스로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죄책감은 불안감을 일으키고


불안감은 상대방의 기분을 눈치 보고


그 사람의 마음에 드려고 노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다.



막상 착하다는 말은 듣기 싫어했다.



착해서 만만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나를.


상대방이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할 것을.


만만한 나를.



그런 내가 싫었다.


내가 인정하기 싫은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내가 싫어서 죄책감으로 벌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에게 착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압박감.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진심으로 착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감정 수련 독서모임 4주 차 책으로 <놓아버림>을 선정했다.



덕분에 이 위대한 책을 재독 중인데


아래 문장이 다시 한번 나의 의식을 깨워줬다.




분노, 증오, 자기연민, 억울함.


이 모두에 하잖은 싸구려 보상,


하찮고 은밀한 만족감이 들어 있다.


아닌 척하지 말자.


고통을 움켜쥐는 데서 오는


이상야릇한 쾌감이 분명히 있다.




놓아버림 - 데이비드 호킨스






죄책감과 억울함 사이에서


올라오는 자기연민에 중독되어 있었을까?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처벌하면서 은밀한 만족감을 느꼈을까?



나는 이제 죄가 없다고,


이런 나는 착하다고.


이런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이 모든 것들을 놓아버린다.



이런 자잘 구리 한 감정들.


나의 뿌리 깊은 신념 모두 다.



나는 이제 안다.



'나에게' 착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그게 나의 신념이어야 한다.










같이 있으면 힘든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한다.


거절하고 싶은 부탁은 거절하면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지 내가 거절하고 싶어서'이면 충분하다. 


어떠한 해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 시간을 나에게 충분히 줘야 한다.


나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 생각마저 내려놓는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기적인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함부로 대한 것은


내가 나의 마음을 함부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베푸는 것이다.


그 사랑은 조건이 없다.


나는 착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이 신념만이 나의 위대함을 깨울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베푸는 동안


스스로에게도 충분히 친절을 베풀었나요?



우리는 참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합니다.


그래서 쉽게 휘둘리고 때로는 어리석기도 합니다.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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