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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규 Jakyu Chun Aug 31. 2024

4. 벼랑 끝에 우뚝 서기.

선고 후의 담담함과 조용하지만 울리는 다짐

- 이 글은 현재 대장암 4기 투병 중인 저의 투병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쓰는 글입니다. 얼마나 자주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몸이 허락하는 대로 자주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에 오신 나그네 분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 마음의 갈림길에서


이라는, 과거에도 그래왔고 의학이 발달한 지금도 여전히 정복되지 않고 불치병으로 인식되는 병에 걸렸다는 것을 선고받을 때, 환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환자는 아예 생(生)의 끈을 놓아버린다. 암이라는 거대한 절벽을 넘기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주저앉는다. 주변에서 아무리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아줘도 이미 자신의 마음의 문이 닫힌 것도 모자라 자물쇠에 스스로 쇳물을 부어 완전히 잠가버린 경우. 오히려 주변의 응원에, "너희들이 뭘 아는데! 나의 고통을 너희들이 알아!"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참고로 의사 선생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남성의 40%, 여성의 34%가 죽기 전에 암을 겪는다고 한다.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암환자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매우 많다는 소리다. 물론 같은 암이라 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긴 하지만)


그리고 이렇게 굳세게 잠긴 문틈으로 스며 들어오는 것은, 얄궂게도 암과 암이 데리고 다니는 애완동물인, 통증뿐이다. 암은 절망과 포기로 물들어있는 마음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닫혀있는 문틈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몸을 점령해 나아간다. 백혈구 등 우리 몸의 방어 도구는 자동으로 움직일 것 같지만, 주인의 마음이 서있지 않으면 생각 외로 무기력하다. 급속도로 잠식되는 몸과 함께 늘어나는 통증에 진통제를 부르짖고, 마지막에는 잠시 '뭐라도 해볼걸...'이라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지도. 그렇게 암은 또 하나의 목숨을 아주 쉽게 가져간다.


또 어떤 환자는 의욕적으로 치료를 시작하지만 차츰 치료가 주는 무자비한 고통에 스러져 간다. 암의 치료는 고통스럽고, 그것이 암을 치료하리라는 보장도 없으며, 언제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기약도 없다. 낫겠다는 나의 의지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나의 의지를 꺾는 것들 뿐. 그렇게 시간이 등을 돌리고, 환자의 의지는 바스러져 결국 포기하고 암이라는 사형집행자의 전리품이 된다.


마지막으로 어떤 환자는 끝까지 굴하지 않고 버티고 버텨서 결국 암을 몰아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철 같은 멘털과 굳은 의지,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주변의 헌신이 필요하다.


길게 썼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버티지 못할 때 몸은 절대로 암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


11. 번지점프를 하다.


다시 8월 10일로 돌아가본다. 전의 글에서 희망이라고 뇌까렸지만, 당연히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집에 와서 아내가 퇴근해 귀가하기 전까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려 했지만 실패. 아내가 집에 오고 같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사가 말한 치료계획, 절망적인 확률, 가족에겐 어떻게 알릴 것인가, 우리는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최대한 담담하게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아내와 부둥켜안고 잠시 함께 울었다.


이때 내 눈물에는 무엇이 담겨있었을까. '왜 하필 나야'라는 억울함분노는 (내가 관리를 제대로 못한 부분이 있지만) 분명히 있었고, '왜 미리 관리를 안 했을까'라는 회한도 있었다. 나 때문에 앞으로 가족들이 겪어야 할 힘듦에 대한 미안함과, 미지의 치료를 감내해야 한다는 두려움 역시 있었다. 당시 아기를 가지기 위해 노력 중이었는데 이것이 알 수 없을 시간 동안 멈추게 되는 아쉬움과, 이제야 우리나라 평균 수명의 반절정도 살았는데, 아직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한탄도 섞여있었다.


그래도 잠시 울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쏟은 눈물에 감정의 웅덩이에 고여있던 저 감정들이 함께 실려서 나갔을까.


번지점프를 해본 적은 없지만, 가장 두려울 때가 뛰기 직전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라고 들었다. 암이라는 거대한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내가 과연 무사히 요동치는 밧줄과 휘몰아치는 폭풍을 뚫고 무사히 바닥에 안착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극대화된 순간,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통히 쏟아낸 눈물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켜 줬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로 이 죽음의 전령에게 굴복하지 않겠노라고. 내 아내와 가족의 눈에서 절대로 피눈물 나지 않게 하겠노라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다 하기 전엔 절대로 눈감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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