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ivia dean - echo
they say distance can make the heart grow founder
사람들은 거리감이 사랑을 더 애틋하게 만든대
but for you i wonder
하지만 난 궁금해
cause if i'm not by your side are you still on mine?
내가 네 곁에 없어도 넌 계속 내 것일까?
(중략)
so when i need you most
그러니 널 가장 필요로 할 때
will you be my echo?
넌 나의 메아리가 되어줄래?
트럼본을 연주하는 친구의 밴드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영상을 찍어달라고 해서 공연장 불이 꺼지고 나서부터 휴대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프닝 곡의 첫 소절을 듣자마자 영상 시작 버튼을 누를 타이밍을 놓쳤다. 드럼, 기타, 키보드, 보컬, 브라스까지 완벽하게 좋아서. 촬영은 무슨, 그냥 홀린 듯 감상모드에 빠져버렸다. 이런 맛에 그 힘들다는 티켓팅에 사활을 거는 건가 싶었다.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한다던 친구가 뒤풀이가 취소되었다며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늘 비슷했다. 소란스럽지 않은 이자까야. 늘 조용한 곳을 찾았다. 안 그래도 둘 다 목소리가 작은데 시끄러운 호프집이나 고깃집에 가면 서로 인상을 쓰고 입모양을 읽기 바빠서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친구는 나와 같이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조리과를 전공했다.(전공이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조리자격증도, 내신 공부에도 열심이었던 친구는 결국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 내가 대학에 합격한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다 뿌듯하고 그랬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우리는 자주 만났다. 스무 살 친구들이 만나면 뭘 하겠는가, 그땐 만났다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늘 술부터 마셨었다.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친구가 트럼본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웬 트럼본이지 싶었지만 혼자 장비를 사서 음악을 만들기도 하던 친구였어서 생각이 있겠지, 아님 취미로 하는 거겠지 하고 그냥 넘겼었다. 근데 점점 트럼본 연습 때문에 스케줄이 빼곡해졌고 학교 동아리 연습, 공연 연습 등등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야 들었던 이야긴데 그 친구는 처음부터 음악이 하고 싶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한 거라고 했다. 갑자기 노선을 틀면 부모님이 놀라실 테니 믿음을 위해서 약간의 보험이 필요했다고. 그 친구는 지금 음악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다면 으스댈까 봐 쓰기 싫지만, 난 그때 걔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계획형이라면 나는 불도저형에 가깝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셰프가 되겠다고 설치다가 고3 때 갑자기 마음이 돌아섰다. 일반고 아이들은 수능 준비, 특성화고 아이들은 수시 지원 준비나 취업 준비를 할 때 나는 돌연 그래픽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고 심지어는 대학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 때 즈음 친구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갑자기?' 였다. 자세한 설명도 없이 혼자 이리저리 뛰는 나를 보며 엄마는 제발 대학에 입학하라고 사정을 했었다. 결국은 엄마 말을 듣고 스물한 살에 전공을 살려 대학에 입학했다. 방황했던 그때를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 나 때문에 등골이 휘었던 엄마는 할 말이 많겠지만 그때 배웠던 것들은 지금도 종종 써먹으니까. 일러스트, 포토샵, 영상편집, 그리고 불도저 같은 실행력을 조금 죽이는 방법도. 어른들이 배운 건 어디 안 간다고 했던 말을 이제는 실감한다.
망나니 같았던 나와는 다르게 엄마친구딸 같았던 친구라서 그런지 그날 밴드 공연에서 그 애가 무대 끝자리에서 트럼본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트럼본 자리도 좀 무대 중앙으로 옮겨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절대 그 친구가 자랑스럽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목을 꺾고 영상 찍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정말이다.) 종종 찾아가는 친구의 공연은 나를 항상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묵은 꿈을 꺼내보자면 사실 나도 노래하는 걸 참 좋아했다. 이루지 못한 꿈이랄까. 오디션에 참가하고 싶다느니 지금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을 하고 다녔던 어릴 땐 가수가 꿈이었다. 청산유수 같았던 말과는 다르게 별다른 시도는 해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밴드부와 보컬학원에 다녀본 게 전부. 내가 넘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대신 두 번째로 좋아하는 요리를 꿈으로 삼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의 진짜 꿈을 찾아가는 친구를 보면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기도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질투도 난다. 그냥, 저 애는 저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쫓아 움직이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공연 오프닝 곡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나는 친구에게 연주곡 리스트를 보내달라고 했다. 오프닝 곡 제목은 올리비아딘의 에코였다. 약간 취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친구와 지하철에서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 그 노래를 들었다. '내가 네 곁에 없어도 넌 나의 메아리가 되어줄래?'라고 하길래 처음엔 이기적인 사랑 노래인가 싶었다. 근데 며칠 동안 들으면서 곱씹어보니 결국 이건 사랑을 갈망하는 노래였다. 내가 너에 곁에서 잠시 떨어진 그 순간에도 내가 너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멀리 울리는 메아리 같은 존재로 언제나 나의 곁에 있어달라는.
어릴 때 하고 많았던 꿈들 중에 노래는 나의 영원한 갈망이다. 닿을 수도 없고 그다지 닿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던. 꿈이라고 부르기도 거창할 정도로 무력한 마음이었지만 늘 노래하는 순간을 사랑했다. 만질 수 없는 메아리를 들으려고 산 정상에서 '야호-'를 목 놓아 외치는 것처럼. 언젠가 그 메아리가 나에게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때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