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의 추억
스무 살이었던 2011년 10월쯤이었다.
막 대학생활 적응을 마치고 신나게 학교 친구들과 놀고 있던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저기... 혹시 내 여자친구가 하는 아르바이트 대타 가능하냐?"
같은 대학에 다니는 불알친구의 연락이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친구의 여자친구는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기숙사에 살고 있었기에 매번 외박신청 후 밖으로 나와야 하지만, 실수로 외박신청을 하지 못해 기숙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 대타도 구해지지 않던 상황이었고, 친구 역시 타지에서 다른 일을 보고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사장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책임감 넘쳤던 그들은 여러 사람을 건너 굳이 나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었다.
뭐 어찌 됐든,
의리와 열정 가득한 평범한 이십 대 청년들이라면 이러한 부탁을 흔쾌히 들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까지 아르바이트란 것을 해본 적이 없던 '안타까운 온실 속의 화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진짜 어려운 거 하나 없어. 진짜 부탁이야... 진짜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래"
"아 싫어... 알바 같은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아~ 진짜 너 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스무 살 커플의 좁은 인간관계 덕분에 친구는 나에게 계속 매달렸고 질척거렸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모질지 못했던 나는 자정부터 오전 여덟 시까지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그렇게 긴급 투입되었다. 일당은 오만 원 정도였다.
자정이 가까워져 가던 시각.
시내버스를 타고 겨우 편의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흥가 한복판에 있던 그 편의점엔 덩치 좋고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깊은 유혹의 머릿냄새를 풍기던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험악함이 돋보이는 그의 인상을 보며, 왜 친구 커플이 나에게까지 그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는지 감히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어~ 대충 들었어... 얼른 알려주고 나가봐야 하니깐 이리로 와 봐..."
사장은 내 어리바리한 인사를 건성으로 씹어 넘긴 후, 나를 카운터 안으로 같이 불러들였다. 그리고 뒤편에서 담배 하나를 꺼낸 후, 그것을 예시로 나에게 포스기 사용법을 아주 빠르게 알려주었다.
난생처음 보는 기계와 용어, 그리고 살짝 음주상태였던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졌다. 하지만 한국인의 기본 소양인 '대충 이해한 척'을 사용하며 재빨리 상황을 넘기려 애썼다.
그렇게 업무를 정말 간략히 설명한 사장은 오늘 처음 본, 그것도 만난 지 10분 정도밖에 안된 아르바이트 대타를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그 이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이렇게 안일한 전개는 위기로 이어지는 법...
그 당시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이런 상황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 감정을 곱씹을 새도 없이 가로등 및 날벌레들처럼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그래도 장판파의 장비처럼 맞서보자라는 마음가짐은 첫 손님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금 오천 원을 건넨 손님에게 거슬러줘야 할 이천 삼백 원.
그 돈을 포스기에서 꺼내야 하지만, 물건을 찍고 '현금' 버튼을 눌러도 포스기 아래 현금통은 열리지 않았다. 이리저리 포스 기를 만져도 녀석은 입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
머릿속에선 'X 됐다'라는 표현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손님은 멀뚱멀뚱 거스름돈만 기다릴 뿐이었다.
난 그를 잠깐 바라보았다.
만약 이 50대 남자에게 포스기가 열리지 않아 거스름돈을 줄 수 없다고 하면 날 얼마나 대단하게 바라볼까... 답은 보이지 않았고, 그 남자 뒤에도 손님들이 각자의 물건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일단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급했다. 그렇게 긴박함 가득한 머릿속에서 갑자기 번뜩이는 섬광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내 빵빵한 엉덩이 뒷주머니로 손을 옮겼다. 그곳엔 내 낡아빠진 싸구려 지갑이 좁은 그곳에 끼어 힘겨워하고 있었다.
황급히 그것을 꺼냈다. 지갑 안엔 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 여러 개가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내 지갑에서 주섬주섬 거스름돈 이천 삼백 원을 맞춰 손님에게 건넸다.
그는 건네받은 돈과 나를 여러 번 쳐다보았다. 대략 '이게 맞나?'라는 눈빛이었다
나 역시 이 상황이 맞나라고 생각했지만, 뒤편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이 한가득이었다.
서로 의구심이 가득했지만, 풀 수 있는 겨를이 없었다. 모든 계산을 마친 손님은 계속 나와 돈을 번갈아보며 편의점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현금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않아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내 멍청함을 자책하고 떠나버린 이천삼백 원을 그리워할 겨를이 없었다.
성질 급해 보이는 젊은 여자 손님은 '버지니아 골드 슬림' 담배를 찾아대며 쏘아댔고 만취한 아저씨는 왜 자꾸 모르겠는지 자꾸 내 번호를 물으며 추근덕댔다.
옆집 24시 순댓국집 아줌마는 만 원짜리 지폐를 천 원짜리로 세 번은 바꿔갔고 한 무리의 고등학생 무리는 사발면을 온 탁자 위에 흘리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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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온갖 진상들을 받아내고 나니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 여덟 시가 다가왔다. 잠시 후 다음 근무자인 이름 모를 아주머니가 도착했다. 나는 의아한 표정의 그녀에게 상황을 대략 설명하며 '인수인계'라는 것을 했지만, 피곤함에 휩싸였기에 횡설수설 대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고생했어요. 얼른 퇴근해요."
뚝딱거리는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인자하게 웃으며 나를 보내주었다. 여덟 시간 만에 나온 편의점 밖. 수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밤을 보내던 그곳엔 다소 따갑기까지 한 아침햇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더운 느낌이 섞인 초겨울 공기가 내 얼굴을 스쳤다. 눈가엔 피곤함이 가득했고, 입술은 나도 모르게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그렇게 내 첫 아르바이트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친구에게 일당을 대신 받으며 듣기로는 그날 시재가 오히려 오천 원 정도 마이너스였다고 한다. 나의 이천 삼백 원어치의 희생이 빛바래졌다는 것과, 내 과오를 누군가가 대신 처리했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꽤 아려왔지만, 큰 사고 없이 첫 아르바이트를 마쳤다는 것으로 이를 위로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이 뜻밖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이십 대의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쉴 새 없이 보내게 되었다. 골프장, 술집, 커피숍, 고깃집, 워터파크, 철거용역, 축제지원, 그리고 편의점까지...(위의 편의점은 아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 자리 잡기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막무가내로 지원했다.
다양한 일을 하며 나는 내가 참 부끄럼 많고 남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하는 일을 쳐내며 어렵고 당황스러운 순간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럴 때마다 그날 밤 지갑을 꺼내던 미련한 경험이 한 번씩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문제를 해결했던 기억은 도망치고 싶던 내 마음을 꾸역꾸역 붙잡아주었다.
쏜살같은 시간을 지나 얄팍하게나마 노련해진 서른이 되었다. 아직도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변수들이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고, 앞으로도 수많은 고난이 내 앞길에 질펀하게 들러붙을 것이라 예상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다들 사는 게 이러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나만의 미련한 재치로 매번 유쾌하게 떼어내고
술자리 안줏거리로 웃으며 날려 보낼 수 있길 오늘도 기원한다.
뭐 어쨌든 해결은 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