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AI가 장례를 치뤄줄 때가 왔다.
오늘, 대전의 한 선생님이 과로로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봤다. 묵묵히 낡은 방송장비를 교체하고, 방송실을 관리하고, 그러다 교권침해 학급에 임시교사로 임명됐다고 한다. 그리고 쓰러지셨다.
댓글에는 "교권침해가 문제다", "학부모 민원 때문이다"라는 말들이 가득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교권침해는 분명 나쁜 일이다. 하지만 이건 어쩌면 과거 선배 교사들이 잘못한 것에 대한 결과가 아닐까.
과거, 교사는 "스승"이라 불렸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면서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히고, 욕하고, 부모에게 돈을 받던 나쁜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교육받은 학생들이 이제 학부모가 되었다. 그들은 교사를 불신한다. 그리고 그 불신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선생님 말이라고 다 옳은 건 아니야." "뭔가 이상하면 바로 엄마한테 말해." "우리 아이만 차별하는 거 아니야?"
세대를 넘어 책임을 묻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 교사들에게 상처받은 학부모들이 그런 정도의 이성을 갖추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복수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처럼.
내 친한 친구는 유치원 교사다. 그는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만 이렇게 해달라고 해요. 그럴 거면 개인교사를 고용하지, 왜 공공 유치원에 와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30명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30명의 학부모가 각자 다른 "당연한 요구"를 한다. 교사는 30명의 개인교사가 되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교사는 매일 경계선을 긋는다. 친절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공평하게 대한다. 이 줄타기가 매일 반복된다. 지친다. 그리고 어느 날, 쓰러진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웃었다. 상식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다고.
맞다. 교사의 상식은 "30명을 공평하게"인데, 학부모의 상식은 "내 아이가 최우선"이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닌데, 충돌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대로 해!"라고 외친다. 하지만 법도 완벽하지 않다. 판사도 인간이고, 같은 사건도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 그러니 "일단 법정까지 가보자, 혹시 알아? 내가 이길지도"라는 계산이 깔린다.
모든 것이 회색이다. 명확한 답이 없다. 그래서 두렵다.
교육이 언제부터 "서비스업"이 됐을까?
원래 교육은 공동체가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이었다. 교사와 학부모는 협력자였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함께 고민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부모는 "소비자"가 되었고, 교사는 "서비스 제공자"가 되었다. 교육은 "상품"이 되었다.
서비스업 논리가 들어오면, 당연히 "진상 고객"도 등장한다. 식당 직원에게 갑질하듯이 교사에게 갑질한다. "고객님은 왕"이라는 마인드로 무리한 요구를 한다. 만족 못 하면 민원을 넣고, 리뷰를 쓰듯이 교육청에 신고한다.
하지만 교육은 서비스가 아니다. 햄버거는 내가 돈 내고 주문하면 내 입맛대로 만들어주지만, 아이 교육은 그렇게 안 된다. 30명의 아이들이 함께 배우는 공간에서 한 명만 특별대우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부모의 불안 때문이다.
"우리 아이만 불이익을 받으면 어쩌지",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지.", "좋은 대학에 못 가면 내 책임 아닌가?", "주변에 창피해서 어떻게 살아?"
이 불안이 아이를 입시 기계로 만들었다.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모든 것이 "대입" 중심이다. 수능 점수로 사람을 줄 세운다. "좋은 대학 = 성공"이라는 공식이 작동한다.
그런데 이 공식이 이제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했을까?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다. 좋은 직업이란?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수, 대기업 직원. 안정적이고, 존경받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
그런데 AI가 이 직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ChatGPT는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법률 문서 작성과 판례 검색은 이미 자동화되고 있다. AI 진단이 인간 의사보다 정확한 경우가 많다. 영상 판독은 이미 AI가 더 잘한다. 회계 처리는? 세무 신고는? 다 자동화되고 있다.
나는 27년차 개발자다. Claude Code를 쓰면서 바이브 코딩을 한다. 생산성이 10배 올랐다. 혼자서 팀 일을 한다.
나 같은 베테랑은 당분간 안전하다. 경험이 있고, 문제를 정의할 줄 알고, AI를 도구로 쓸 줄 안다. 하지만 지금 20대 주니어 개발자들은? 그들은 대학에서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배웠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건 문제 정의, 시스템 이해, AI 활용, 트러블슈팅이다.
그리고 AI가 간단한 작업을 다 해버리니까, 주니어가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줄어든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
10년 후, 회사는 신입을 뽑을까? AI를 쓰는 베테랑 한 명이 더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대학생들이 열심히 코딩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좋은 대학 나와서 삼성 가면 안정적일까?
좋은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직업을 위한 교육도 의미가 없어진다.
더 아이러니한 건, AI 시대에 정말 필요한 능력은 따로 있다는 점이다. 협업, 커뮤니케이션, 공감, 문제 정의, 설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SKY 입학을 위한 12년 교육은 정반대를 가르친다.
친구는 경쟁자다
1등만 의미있다
혼자 해야 진짜다
협업? 그건 "컨닝"이다
AI가 정답 찾기, 코드 작성, 데이터 분석을 다 해주는 시대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여전히 혼자서 문제 풀고 정답 맞히는 법만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교육된 아이들은 사회에 나와서 쓸모없어질 것이다. 오히려 고졸인데 사람들 잘 모으고, 아이디어 설명 잘하고, 팀원들 동기부여 잘하는 사람이 더 필요해질 것이다.
정부가 교육 개혁을 외쳐봤자 소용없다. 이미 AI가 교육 시스템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AI가 교육 개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부모의 욕심이 교육을 죽였다. SKY를 위해, 좋은 직업을 위해, 아이를 입시 기계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AI가 그 모든 것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
나는 50살이 넘었고, 아직도 개발자로 살고 있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대학 입시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방 캠퍼스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전산학과에 진학했다. SKY?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까지 2시간씩 걸렸지만 학교 생활이 너무 재미있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한 건 10살 때였다. 재미로 시작한 것이 전공이 되었고, 전공이 직업이 되었다.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 공부하고 적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다. 항상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신기해서 만져봤다.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뛰어들었다. 실패도 많이 했다. 사업도 해보고 망해도 봤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하지만 돈을 나름 신나게 써보긴 했다. 놀기도 많이 놀았다.
그러다 보니 풀스택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27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닷컴 버블, 웹 2.0, 모바일 혁명, 클라우드, 블록체인, 메타버스, 그리고 지금 AI 시대. 살아남았다. 적응하면서.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시대를 잘 탔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개발자로 시작했을 때는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은 적었다. 회사는 주니어를 뽑아서 실수하게 놔두고, 배우게 하고, 성장시켰다. 나는 그 혜택을 받았다.
단계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주니어로 시작해서 간단한 작업을 하면서 기본을 배웠고, 조금씩 어려운 일을 맡으면서 경험을 쌓았고, 어느새 시니어가 되어 있었다. 실수할 여유가 있었다. 망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 후배들은? 그 사다리가 사라졌다.
AI가 주니어가 했던 간단한 작업을 다 해버린다. 회사는 계산한다. "AI를 쓰는 시니어 한 명이 주니어 세 명보다 낫다." 신입을 뽑지 않는다. 경험을 쌓을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설령 운 좋게 입사해도, 경력자들과 AI에게 밀린다. 배울 기회를 잡기도 전에 도태된다. 나는 27년 동안 점진적으로 기술을 익혔는데, 그들은 첫 발조차 떼기 힘든 세상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빚을 진 기분이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나는 그 혜택을 받았고, 그들은 받지 못한다. 구조적 불평등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들이 묻는다. "선배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나는 답할 수 없다. "그냥 재미있는 걸 했어"라고 말하면 무책임하게 들릴 것 같다. 그들은 취업도 안 되고, 경쟁은 심하고, 불안한데.
하지만 솔직히 그게 답인 것 같다. 재미있는 걸 하면 버틸 수 있다. 정답은 없다. 각자 찾아야 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조언할 수 없다. 대신 나는 계속 배우고, 적응하고, 바이브 코딩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인간 세상에서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지킬 수도 없다. 좋은 직업도 사라지고 있다. 교육은 무너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밥 먹고, 친구 만나 웃고, 잠든다. 반복한다.
완벽한 평화는 없다. 하지만 "관리 가능한 수준의 평화"는 만들 수 있다. 부딪힘을 최소화하고,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하면서.
AI가 교육의 장례를 치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각자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다.
냉소적인가? 어쩌면. 하지만 담대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으니까.
2025년 10월, 대전의 한 선생님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