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소 맨과 인간의 존엄에 대하여
어제 체인소 맨 첫 화를 봤다. 첫 장면부터 불편했다. 주인공 덴지는 아버지가 야쿠자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신장 하나, 눈 하나, 고환 하나를 팔아버린 상태로 등장한다. 더러운 집에서 씻지도 못하고, 100엔에 담배를 먹고, "개"라고 불린다. 그의 꿈은 잼 바른 식빵을 실컷 먹는 것이다.
이 장면이 과거의 어두운 이야기로만 느껴졌다면 덜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지금, 여기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왜 사는가?
야쿠자는 덴지를 죽인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좀비의 악마가 더 유용해졌으니까. 단순한 비용 계산이었다. 덴지는 "무쓸모"했으니까 죽어도 된다는 논리.
나는 여기서 멈췄다. 무쓸모한 인간은 죽는 게 당연한가?
우리 사회도 비슷하지 않은가. 생산성 없는 사람은 부담이고, 경제에 기여 못 하면 쓸모없고, "자기 몫을 못 하면" 비난받는다. 노인, 장애인, 실업자.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체인소 맨은 이 논리를 극단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악마를 못 죽이면 죽고, 능력 없으면 버려지고, 공안도 쓸모 떨어진 데블 헌터는 소모한다.
하지만 덴지는 살아났다. 포치타가 자기 심장을 줬으니까. 포치타에게 덴지는 "쓸모"와 무관하게 소중했으니까.
그럼 뭐가 맞는 건가? 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야쿠자가 맞는가, 아니면 쓸모와 무관하게 덴지를 살린 포치타가 맞는가? 나는 모르겠다.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질문 앞에서 너무 쉽게 "당연히 포치타가 맞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실제로 매일 사람을 쓸모로 평가하며 살고 있으니까.
덴지가 쓰레기통에서 일어난 이유는 뭘까. 포치타와의 약속 때문이다. "내 꿈을 보여달라"는 계약. 그렇다면 덴지의 생명은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타자 때문에 의미를 가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가?
덴지는 혼자서는 살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살았고, 그나마 유일한 이유가 포치타였다. 포치타가 "내 꿈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덴지는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를 얻었다. 자기 꿈이 아니라 포치타의 꿈을 보여주기 위해.
이게 슬픈 이유는, 만약 포치타가 없었다면 덴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생명 그 자체는 충분한 이유가 아니었다. 누군가와의 연결, 약속, 관계가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졌다.
그럼 관계 없이 인간은 살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확신 없이 서 있다. "당연히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체인소 맨이 보여주는 세계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 세계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알고 있는 사람", "가까운 사람"의 생명만 진짜로 존중하는 거 아닌가.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 전쟁터의 민간인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들. 우리는 그들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가?
덴지는 공안에 들어간 후 밥을 먹고, 침대를 쓰고, 씻을 수 있게 됐다. 분명 "업그레이드"다. 하지만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마키마의 통제 하에 있고, 여전히 도구로 쓰이고, 여전히 "이거 하면 저거 줄게"라는 거래 관계다.
생존과 존엄은 양립할 수 있는가?
덴지를 보면 이상하다. 야쿠자 밑에서 살 때 그는 생존했지만 존엄은 없었다. 공안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생존 조건은 나아졌지만, 그는 여전히 "개"처럼 다뤄진다. 마키마가 "가슴 만져도 돼"라고 했을 때, 그건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보상으로 만든 것이다.
배고파 죽을 지경인 사람에게 "존엄을 지켜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생존만 하면 되는가? 존엄 없이 그냥 살아있기만 하면 그게 "사는" 건가?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덴지가 영원의 악마와 싸울 때, 무한히 반복해서 베어댈 때, 그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 같다고 느꼈다. 끝없는 노동, 반복되는 착취.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멈출 수 없으니까.
그래도 덴지는 조금씩 변한다. 파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아키를 가족처럼 여기기 시작한다. "가슴 만지고 싶어"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로 조금씩 이동한다.
어쩌면 이게 답의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시스템(야쿠자, 공안, 사회)은 사람을 도구로 보지만, 진짜 삶은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 쓸모와 무관하게, 생산성과 무관하게, 그냥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
하지만 이것도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그럼 관계 없는 사람은?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칸트도, 니체도, 사르트르도 이 질문들과 씨름했지만 명쾌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그들도 못 찾은 답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건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쓸모한 인간은 죽는 게 당연한가?"
"인간의 생명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가?"
"생존과 존엄은 양립할 수 있는가?"
"관계 없이 인간은 살 가치가 있는가?"
나는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질문들을 던지는 것, 불편하고 고통스러워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게 어쩌면 인간답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체인소 맨은 잔인하다. 생명을 가볍게 다루고, 사람을 도구로 쓰고, 쓸모없으면 버린다. 하지만 바로 그 잔인함이 우리 세계를 비춘다. 우리도 매일 이런 논리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다만 체인소 맨만큼 정직하게 보여주지 않을 뿐.
나는 이 질문들과 함께 살 것이다. 답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이 질문들이 불편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너무 쉽게 답을 내리지 않으면서.
덴지가 쓰레기통에서 일어났듯이, 나도 매일 아침 일어난다. 왜 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어난다.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답 없이, 그저 질문을 품은 채로 살아가는 것.
이미지 출처 : https://chainsawman.dog/tvseries/episodes/#ep1 (C)Tatsuki Fujimoto/SHUEISHA, M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