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행복한 나날
2018년 기자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언뜻 7년 차로 보이지만 사실 5년 차 기자다. 다시는 이 길을 걷지 않으리라..! 기자생활과 이 직업에 일종의 '환멸'을 느끼고 퇴사 후 기자생활에 등 돌렸던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너무 하고 싶었다.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소위 언론고시라는 언시 기간 동안 매일 논술과 작문을 쓰고 상식과 한국어 공부를 병행했다. 활자부터 영상 뉴스를 챙겨보면서 '내가 저 기자보다는 잘할 것 같은데?' 하는 근거 없는 뽕이 차오르던 시기가 있었다.
하루빨리 기자가 하고 싶었다. 지금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구르면서' 배우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컸다. 기자 선배들의 특강을 들으면 그 뽕은 더 차올랐다. 결국 여차여차 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지쳤고, '글을 잘 쓴다'는 내 자부심은 기자생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빼고 모든 글을 쓰는 나날이었다.
이런 것도 써야 해? 이건 또 왜 못 쓰게 해?라는 반항심과 반발심, 스몰스몰 그 사이를 비집고 일어나는 자괴감까지. 나는 분노로 똘똘 뭉친 인간이 돼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기자가 저래도 돼?', '기자가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냐?' 하는 질문이 피어오르면서 분노는 환멸로 변해갔다. 이 세계에 더 있다가는 나도 저런 '기레기'가 되겠구나. 나는 기사를 쓰는 기계지 기자가 되고 있지는 않구나.라는 이런 생각이 피어오르면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을 때. 정말 쉬어야겠다. 싶었고 그래서 그만뒀다.
2년여간 '기자 다시 할 생각 없어?'라는 말이 발작버튼이었는데, 쉴 만큼 쉬어서 그런가. 신기하게도 딱 2년이 넘던 어느 날. 언시생활을 함께 했고 여전히 기자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갑자기 기자가 너무 하고 싶어졌다. 아..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 열정 가득하고 근거없는 뽕으로 채워져있던 맑은 눈의 광인과 언시생 사이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 기자를 하고 있다. 2년 동안은 주변에서 '다시 기자 할 생각 없어?'라는 말이 너무도 듣기 싫었다. 너무 힘들었고 너무 싫어서 그만뒀는데 왜 자꾸 기자 이야기를 꺼내는지 진절머리가 났다. 말이나 행동이 '기자 같다'는 말을 들을 때도 기자가 아닌 사람한테 왜 자꾸 저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족들이 기자의 기자만 꺼내도. "아 안 해, 안 한다고!!!!" 빽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참...;ㅎ)
2년 반 만에 기사를 쓰는 날. 사실 긴장이 되고 떨리기도 했다. 너무 잊었으면 어쩌지. 운동신경도 아니고 글쓰기는 연습인데.. 갑자기 돌아가면... 면접 때 쉬었다고 말했으니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시려나...? 싶었는데. 역시 이 바닥은 그런 법이 없다. 신기하게도 글이 써졌다. 지금 보면 좀 엉망이었다. 아무래도 방송기사는 또 처음이다 보니...라는 핑계를 하지만. 차치하고서라도 꽤 자연스럽게 다시 스며들었다 이곳에.
다시 돌아오면서 나는 내 미래가 궁금해지지 않았다. 항상 궁금했던 게 내 미래였는데 말이다. 엄밀히 따져 말하자면 내 직업의 미래말이다. 10년 뒤에는 15년 차 기자. 20년 뒤에는 25년 차 기자가 돼있겠지라는 생각. 그래서 마음이 너무 편하다. 입사한 순간부터 1년 차 3년 차 퇴사 후 그 혼돈의 시간에도(퇴사 후 n잡러로 활동했었다) 매일이 카오스였다.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에 밤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는 말이 어쩌면 시니컬하고 되게 안쓰러운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 내 직업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제는 방황하지 않고 이 길에 집중할 수 있으니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을 테고, 환멸에 도망쳤던 20대는 2년 반동안 약간의 산전수전을 겪은 30대가 돼 돌아와 조금은 능숙하게 취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그때는 약했던 부동산 기사에 이제는 함께 분노하며 기사를 쓸 수 있게 됐다.
조금은 대담하고 털털한 성격과 보이쉬한 목소리, 다소 인색한 웃음, 낯에 얹은 좀 많이 두꺼운 철판까지. '기자 같다'는 말이 요즘은 더없이 듣기 좋다. 내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나는 그때도 지금도 기자를 하면서 분노하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