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미나와 미나미가 살았다. 미나는 태초부터 미나미와 허어진 채로 태어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미나미는 매우 화가 나있으며 머리를 묶은 벌거벗은 미나미는 눈썹을 치켜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꽉 채운 채 말을 하지 않았으며 다가오려는 듯 지나쳐 가고 항상 노려 보려다 눈길을 돌렸다. 미나미는 머리를 푼 자도 있는데 생김새는 달라도 똑같은 모습으로 자기의 미나를 다가가려는 듯 못마땅해하며 지나쳤다. 그들은 모두 고운, 곱디고운 진흙으로 빚어졌는데 양감과 굴곡이 탁월히 아름다웠고 빛깔은 갈회색 회갈색의 고운 빛이었다. 그들의 팔과 다리는 움직일 수 없고 그저 자리를 한 발씩 순간이동을 하며 다녔다. 이런 재질과 움직임은 미나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미나는 각자의 미나이와 쌍으로 운명 지어졌는데. 서로 닮지 않았다. 그들은 태초부터 미워하고 싫어했고 태초부터 원한과 상처를 안고, 서로 묶여 계속 마주 만나려다 다시 멀어졌다. 미나는 그런 미나미가 태초부터 그렇게 된 것이 정말 다행스러웠다.
태초부터 다행스러웠다.
화가 나있는지, 무엇에 화가 잔뜩인지는 내 알 바가 아닌데 그 화라는 것을 자꾸 내게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해 줄 의무도 없는데 내게 다가오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나인데 자꾸 너도 나이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정말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미나는 다행스럽고 내 삶이 행복하다. 즐겁고 기쁘다. 내 길을 간다. 미나미가 회는 나있어도 나를 맴돌기에 외롭지도 않다. 미나미의 가슴에 무슨 상처가 있든 내가 어떤 짓을 했든 상관이 없다. 우리는 태초부터 이러하다. 정말 다행 아닌가! 내 생각엔 정말 다행이다. 이 안전함!
미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게 좋지. 다가오고 말을 걸었다간 내 흙덩이 가슴에 세게 부딪힐 테고 그러면 그 입이 열리자마자 오랜 침묵이 깨져 태초의 고요함이 사라지지 않겠나. 미나는 그런데 그럴 일이 없다. 이미 태초에 어마어마한 부딪힘이 있은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상태로 그 표정에 그 걸음걸이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불화는 태초에 미나와 미나미의 운명이었다. 미나는 그래서 너무 다행스럽다.
미나미는 울지도 않는다 생각지도 않는다. 미나. 그녀의 미나를 향해 다가가다 비껴간다. 때초에
오늘 태초에
그러니 더 이른 시작점이 없다는 것이다.
시작은 그들이 한 것이 아닌데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미나미는 걷고 화가 잔뜩 난 채 입을 굳게 다물고 미나의 곁을 스친다.
미나는 바쁘고 기쁘고 즐겁게 태초에 태어났다. 미나미가 왜 내 곁에 맴도는지 그건 관심 밖의 일이지만 그녀가 아름답고 양감이 제대로이고 젊고 곱게 머리 빗어 묶은 벌거벗은 미나미가 부끄럽지 않으며 관심 없다.
태초부터 이런 게 정말 다행이고 굳센 정신으로 미나는 오늘도 즐겁게 나의 길을 걷는다. 때로 휘파람이 나올 지경 아닌가!
미나는 울지 않는다. 알 필요 없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잘 모르겠는데 미나미의 가슴에 난 태초의 상처는 내가 새겼다 한다. 정말 태초부터 모르겠고 그런데 모는다는 게 다행스럽고 알고 싶지도 않다.
외롭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나의 길로 다니고 미나미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고 관심 없는 그 태초의 잔뜩인 그 일들로 화가 난 채 지금 나를 향해 오다 비껴간다. 아름다운, 양감이 제대로인 흙덩이 테라코타. 아름답고 걸작이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된다니, 그냥 스치듯 생각만 하다 내게 온 마음을 쏟아도 미나미는 내게 화를 쏟지 않는 이 안전하고 외롭지 않은 세상이 정말 다행이다.
즐겁고 행복하다. 그녀가 있지만 그녀 없는 이 세상이 즐겁고 행복하다 할 수 있겠다. 즐겁고 행복하다 즐겁고 행복하다 즐겁고 행복하다 즐겁고 행복해다. 즐겁고 즐겁고 즐겁고 행복하고 행복하고 복에 겹다.
행복한 햇살 아래에 미나는 미나미 없는 미나미와의 생활에 만족하며 고요히 평화롭게 잠이 든다. 미나미 없는 이 미나미와 미나의 삶에 정말 안도하며 그의 삶을 잠시 쉰다. 철없이 깊은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