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쓴 조준호 뮤지션의 기행문, 3년 간격으로 듣다
* 제1회 반달음악회 조준호 뮤지션 「동네책방에서 음악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2021년 1월 23일 (토요일)
* 이도저도 책방에서 듣는 음악 기행문, 29번째 <소파 여행자> 콘서트: 2024년 11월 16일 (토요일)
마이크도 없는 열악한 공연 환경. 목소리와 기타(혹은 우쿨렐레)만으로 공간을 꽉 채워줄 실력 있고 성량 좋은 음악가. 2007년 대학가요제에서 ‘미안 개미야’라는 곡으로 금상 수상, 이후 현재까지 ‘북극곰아’, ‘도도’등 환경에 대한 곡을 꾸준히 노래함. 서점 주인의 안목을 믿어보시라"
라며 반달서림 대표님은 조준호 님이 생태서점 반달서림의 음악회 첫 주인공으로 적격임을 이야기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장에서 많은 관객이 함께 공연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시기, 비대면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관객 없이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공연을 하면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 모니터 화면으로 지켜보던 때라 참 반갑고도 고마운 음악회 소식이었다.
사실 지금껏 나는 그렇게 자주 공연장을 찾는 사람은 아니라서 잘 몰랐다. 내 의지로 공연장을 찾지 않는 것과 외부 상황 때문에 공연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천지차이이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씩 음악회나 뮤지컬 같은 공연을 봐주며 감성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코로나로 공연장에 갈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지자 점점 내 안의 감성이 메말라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던 차에 이제 제법 단골이 된 반달서림에서 여는, 무려 제1회 음악회는 무조건 신청 각이었는데, 나와 같은 목마름을 가진 이들이 많은 듯 불과 3일 내 목표 관객 10명이 모두 채워졌다.
음악회가 열린 날 반달서림은 소규모 공연장이 되었다. 음악가와 관객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 공연장이 있었던가? 뮤지션 조준호 님을 제외한 관객 모두가 마스크를 한 채, 풍부한 성량과 신선한 우쿨렐레 선율로 빚어낸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 바닥 같은 감성을 촉촉하게 적셨다. 한 구절 한 구절 잔잔한 파장을 그리며 내리는 노래 가사도 느끼면서……
조준호 님은 “좋아서 하는 밴드”와 ‘출국’의 하림 님과 만든 그룹 “아프리카 오버랜드”에서 연주하고 노래했던 곡들을 들려주었는데, 조준호 님의 노래와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중 기억에 남는 몇 곡을 소개하자면…..
“음악으로 떠나는 아프리카 여행” 프로젝트로 만들었던 음악들, 특히 첫 여행지 잠비아를 가기 위해 두 번 비행기를 갈아타던 때, 갈아탈 때마다 비행기를 놓쳐 다음 날 또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 했고, 자동차로 다시 하루가 걸려 총 3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만든 곡 “아프리카로” 는 가고 가고 또 가는 기나긴 여정을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다음은 나름대로 만든 첫 번째 레게음악이었다고 한 “말라위 호수의 아침”. 이 음악은 가사에도 등장하는 숙소 관리인 헨리 아저씨가 “자신은 레게 음악을 좋아하는데, 레게 음악도 연주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함에, '자신은 포크 음악 가수라 연주할 수 있는 레게 음악이 없다.'는 답변을 하자 헨리 아저씨는 ‘레게 음악 연주도 할 수 없는 가수가 무슨 가수냐?’는 식으로 살짝 비웃은 것 같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하여 만들게 된 이 레게 음악이 좋았던 것은, 이 노래로 아프리카에 이렇게나 큰 호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그 호수의 아침 분위기가 이 음악으로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몇 해 전 인상 깊게 읽었던 구효서 작가의 소설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의 배경이 말라위였다는 생각이 나서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국적이 다른 세 사람이 한 가지 공통적인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각기 그 비밀을 알고 있음을 공유하지 않은 채, 새벽 별빛을 받으며 기도한 각자의 한 가지 염원. “말라위 호수의 아침” 노래와는 사뭇 다른, 그 소설의 분위기와 빛깔이 떠올랐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다음 여행지는 캐나다의 옐로화이트였다. 조준호 님 인생의 버킷 리스트였던 “오로라 보기”를 실현하러, 그동안 모은 돈으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오로라 스팟인 캐나다의 엘로화이트를 방문했지만 아쉽게도 오로라는 볼 수 없었다고...... 실시간으로 위성지도를 보며 오로라가 잘 보이는 곳으로 관광객을 데려다주는 오로라 체이서는 부지런히 차를 몰았지만, 결국 먹구름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이야기. 이번 여행에서는 오로라를 볼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며 “오로라 체이서”라는 음악을 만들었는데, 여기엔 오로라 체이서 운명의 아이러니함도 담겨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다시 캐나다로, 또 북쪽으로 북쪽으로 가 결국 그 먼 곳에서 오로라를 찾는 직업을 갖게 된 오로라체이서. 그는 그의 운명을 받아들였지만, 이번 여행에서 오로라를 볼 수 없는 관광객들의 운명을 본인 노력으로 거슬러보고자 했던 사람. 부지런히, 열심히 또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청춘 같은 음악이었다.
캐나다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와, “귤꽃”을 소개하면서는 꼭 4월 말에서 5월 초에 제주도를 방문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 시기 귤꽃 향기가 너무 좋다는 이야기였다. 아직까지 귤꽃향을 맡아보지 못한 나는 아카시아 꽃향기와 어떻게 다른지, 귤의 향이 조금은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귤꽃향을 맡으러 4월 말 5월 초 제주도를 방문하는 것은 별개로 하고, 조그마한 조약돌처럼 생겨서 특정 향기를 입력하고 그 조약돌을 코에 대면 잠시 그 향기를 풍기는 그런 발명품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하다.
3D 프린터가 상용화되었듯이, 모든 향기와 관련된 분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분자들을 분리하여 저장할 수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귤꽃향 대신, 신기하게 유기화학실험 시간 때 합성했던 실험실 전체를 떠돌았던 달달한 바나나맛우유의 이소아밀아세테이트 향만 코끝에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기차소리”는 대구방송 TBC에서 안동 임청각을 주제로 기획한 고택음악회에서 연주한 곡으로, 임청각에 3박 4일간 머물면서 만든 곡이라고 하였다. 임청각은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생가이기도 한데, 일제강점기 중앙선 철도부설 때 집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철로를 놓는 바람에 아흔하홉간 절반의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차소리는 모든 걸 데려가 버리네~”로 시작하는 담담한 가사와 덜컹덜컹 들리는 리듬이 우리 역사를 무심히 싣고 가는 듯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의 일본 여행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만든 “오마가리” 노래와,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나라에 친구 한 명 알게 되니 그 나라는 이제, 친구가 살아서 일기예보도 챙겨보는 친숙한 나라가 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릴리” 까지…… 정말 음악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온 느낌이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라이브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았지만, 이 공연으로 작고 귀엽고 손이 많이 가지 않게 생긴 우쿨렐레에 관심도 생겼다. 크기가 작아 지참하기 편하고, 연주하면서 관객을 보고 노래를 할 수 있으며, 줄이 4개밖에 되지 않아 연주가 비교적 수월하다며 조준호 님도 우쿨렐레를 침이 마르게 칭찬하였다. 품 안에 아기처럼 안겨있는 우쿨렐레가 어쩐지 우쭐우쭐하는 것 같았다.
악기 하나쯤 연주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던 차에 우쿨렐레가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 달 후 입문용으로 우쿨렐레를 구입하고, 홀로 독학으로 6개월쯤 치다가 반달서림의 “반달과 베짱이”에 들어가 2년 넘게 회원들과 함께 우쿨렐레를 배웠다. 이제 초급을 벗어난 실력으로, 아직 운지가 자유롭지 못해 손목에 통증이 오거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는 서툰 연주이지만, 내가 연주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좋은 소리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좋다. 휴일 오후 여유로운 거실에서 내가 우쿨렐레를 꺼내 들 때면 각자의 방문을 조용히 닫는 가족들이, 열린 문 그대로를 유지하는 그날까지 우쿨렐레는 계속 나와 함께 할 것 같다.
여기까지가 2021년 1월 23일 용인 반달서림에서 있었던, 제1회 반달음악회 「동네책방에서 음악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의 조준호 님의 “음악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2024년 11월 16일 대전 이도저도 서점에서 있었던 소파 여행자 29번째 공연 “음악으로 쓰는 기행문” 이야기이다.
사실 앞의 브런치 글과 순서를 바꾸어, 제1회 반달음악회 이야기로 이 글을 먼저 올렸어야 맞지만, 대전의 이도저도 서점에서 열리는 29번째 소파 여행자 공연을 신청했던 지라 3년 남짓의 간격을 두고 참석했던 두 공연 이야기를 함께 쓰고 싶었다.
반달음악회 이후 조준호 님은 『소파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북』을 제목으로 단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내기 위해 와디즈 펀딩을 하였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냉큼 신청하여 얼마간의 기다림 후 그림책 같은 예쁜 앨범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반달서림을 가끔 봐주는 날, 지구가 그려진 CD를 반달서림의 CD 플레이어에 넣고 감상하곤 했는다. 음악을 들으며 3년 전의 음악회가 생각나면서 당시 조준호 님이 이야기했던 코로나 시기이므로 자신의 작은 작업실에서 5명 관객을 위한 “5 Seats”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한 기억도 소환되어, 코로나가 끝나고 마스크를 벗게 되면 5 Seats 공연에 한 번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0월 마지막 날의 100번째를 끝으로 5 Seats 공연은 종료한다는 공지를 보았다. 아쉬움이 남던 차에, 『소파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북』이 일종의 책이므로 올해는 한 달에 한 번 한 도시의 동네책방에서 하는 “책방에서 듣는 음악 기행문” <소파 여행자> 콘서트를 지속하고 있음에, 올해 이 공연은 챙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 청춘의 고향 대전에서, 나의 결혼기념일인 11월 16일 토요일에, 이도저도 서점에서 29번째 <소파 여행자> 콘서트를 한다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동의를 구한 후 신청을 하였다. 졸업 후 처음 집을 떠나 직장 생활을 시작한 대전에서 열두 간지의 세월을 보내고, 용인으로 이사와 다시 열두 간지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용인에서 처음 본 공연을 다시 대전에서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져, 공연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오랜만에 방문하는 대전이 어떻게 변했을지, 3년 만에 듣는 공연은 어떤 느낌일지 설레었다.
다시 찾은 대전에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못 보던 높은 건물, 커다란 백화점, 새로 생긴 다리들…….. 이제 대전은 내게 과거에 행복했던 도시로만 남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 가운데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보였다. 종종 갔던 식당, 내가 다녔던 요가원, 수목원, 공연장, 미술관 등등……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장소들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이도저도 서점에는 서점대표님이시며 싱어송라이터 태 PD 님이 나와 계셨다. 이도저도 서점 내부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소파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북』을 정독하니 이제 공연이 시작할 시간. 곡의 구성이나 이야기는 3년 전의 공연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공연을 하여도 그날의 관객과 공연 장소에 따라 공연의 분위기와 느낌이 다르다는 조준호 님의 말처럼, 구별되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명확하게 달라진 부분으로 3년 전에는 관객이 모두 마스크를 써야 했지만, 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 하나.. 3년 전에는 현재 살고 있는 우리 동네의 동네책방에서 혼자 공연을 보았다면, 어제는 과거 살았던 동네의 옆동네에서 남편과 함께 공연을 보았다는 것 둘. 3년 전에는 음악을 감상하는 수준으로 공연을 즐겼다면, 어제는 따라 부르기도 하고 특히 조준호 님의 우쿨렐레 연주를 눈앞에서 자세히 관찰하면서 공연을 즐겼다는 것 셋. 아직 우쿨렐레 연주가 초중급 수준에 불과한 내 눈에, 조준호 님이 연주하는 왼손 손가락 움직임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얼마나 어떻게 연습해야 자연스러운 운지를 하면서 청량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일까? 뒤늦게 질문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3년 전에는 없던 “소파 여행자”. 조준호 님의 공연을 함께 나눈 관객을 주인공으로 하여 만든 곡으로, 처음 Live로 듣는 자리였다. 음악을 들으며 이도저도 서점의 쿠션이 무척 두꺼운 의자를 비행기 좌석 삼아 나는 그 어디도 아닌, 내가 대전에 살던 과거로 아스라이 여행을 떠났다.
앵콜곡으로 조준호 님의 슬럼프를 끝내게 해 준 “천체사진”을 듣고 『소파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북』에 사인을 받으며, 반달서림 음악회 때 참석했다는 이야기와 그 공연을 본 다음 달부터 우쿨렐레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더니 조준호 님은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조준호라는 뮤지션이, 한 명의 관객에게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배울 결심을 하고, 우쿨렐레의 매력에 빠지게 만든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공연을 마치고 이도저도 서점을 나와 남편과 예전에 살았던 동네로 이동했다. 익숙하지만 낯선 동네 모습에서, 십여 년 전 두 아이의 돌상을 차렸던 식당 건물이 사라지고 들어온 새로운 건물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보였다. 남편과 와인을 곁들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파스타를 저녁으로 먹고, 숙소까지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갔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걷곤 했던 길이었다.
옆의 공원길은 새로 공사를 들어가는지 가림막으로 가려져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어떤 변화일지….. 큰 변화는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일까? 십여 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 아련하고 아쉬운데, 십여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또 십여 년이 지난 후 나는 어떤 상태일지 궁금하면서, 나희덕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다시, 십 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생각했다.
어제 <소파 여행자> 콘서트는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여러 차원으로 넘나드는 여행이었다.
* 참고자료
1. 반달서림 음악 이야기 "비대면 공연을 보며"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2207835183?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2. 1/23 반달음악회, 첫 번째 음악가 조준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2207839129?
3.『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구효서, 해냄, 2016
4.『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나희덕, 수오서재, 2024
5. 29번째 <소파여행자> 콘서트 https://www.instagram.com/p/DCddfm3T-LU/?utm_source=ig_web_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