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내 어머니의 가을 뜨락은, 여느 때보다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내 유년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어서일까?
다만, 막내딸이 언제 올까 노심초사 골목 입구까지 나오셔서 서성이고 있는, 내 어머니의 모습만은
볼 수 없지만 변한 건 없다.
대문 안을 들어서면 국화꽃들이 제멋대로 피고 지고 마른 가지들이 뒤엉켜서,
마치 거울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물가의 대추나무는, 말라비틀어졌는데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간신히 붙들고 있는
열매를 그나마 지켜내고 있고,
제멋대로 나뒹구는 빛바랜 대추들은 다시 자양분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여름날의 열기를 식혀주던 우물가는, 비닐로 꽁꽁 싸인 수도꼭지의 숨 막히는 절규만이 맴돌고 있다.
화단 한편에서 피고 지던 목화꽃이, 그나마 하얀 솜이
애기 손톱만 하게
남아서 대롱대롱 애초롭게 매달려 있다.
하얀 민들레가 피어 있던 자리엔, 철을 모르는 건지 진녹색 줄기가 꼿꼿이 세우고
도도하게 마당 한편을 응시하고 있다.
새빨간 꽃봉오리들을 다 떨군 동백나무는, 제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아주 오래된 잎을 달빛에 닦아내고 있다.
처마밑, 빨랫줄엔 내 낮은 코를 집기 위해 열일하던 빨래집게가 무기력하게,
늦가을 바람에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다.
내 어머니의 손길에 닳고 닳은 수수빗자루가 바람에 날렸는지 담벼락 밑에 고꾸라져 있다.
그래도 내 어머니의 신발은 댓돌 위에 나란히 있는 것에 안도의 숨을 길게 쉬어본다.
신발을 벗고 내 어머니의 빛바랜 신발에 내 발을 살포시 넣어본다,
내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우리 막내는 발크기까지 나를 닮았네!'
사실, 어머니와 나는 많이 닮은 얼굴은 아니지만
항상 뭔가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귀여우시다.
뒷마당으로 나가보니, 장독대가 달빛을 받아서
주인을 잃은 옹기들이지만
자신의 모습을 한껏 뽐내고 있다.
팔순이 훌쩍 지나도록 자식들을 위해
김치 담그시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마을에서 손맛 좋기로 유명해서 마을분들이 오죽하면
' 돌아가시면 봉분 밖으로 손은 꼭 내놓아야 한다'라고 하실정도였으니..
장독대 옆에 석류는 떨어져서 말라비틀어진 지 오래고,
감나무의 '감' 만이 주인 없는 빈집을 지키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장독대 옆, 텃밭의 '무'들이 하얀 몸매를 드러내며 뽐내고 있을 테지만,
내 어머니의 빈자리가 신이 난 초록빛 풀만이, 뽑힐 일이 없다는 것을 아는지
도도하게 텃밭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제 곧 내 어머니의 뜨락에도 겨울이 올 것이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습관처럼 '딸들의 편지가 와있을까'
들여다보신다는, 내 어머니의 우편함에도
흰 눈이 쌓일 것이고, 겨울밤의 창백한 달빛만이
추녀 끝에서 노닐다가 지치면,
왔던 길을 되돌아갈 것이다.
나 또한 서둘러 빠져나온다.
동백꽃이 필 때,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면서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