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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두 개의 우표
우리들의 편지
by
수노아 레인
Jan 01. 2025
아래로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위의 구절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의 한 부분이다.
이 시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교내 우편함‘이라는
이색적인 우체통이 등장하기 시작하게 된 데서 출발한다.
한 선생님의 아이디어에서 착안되었는데, 그 선생님은 다름 아닌 ‘선도부‘라는
그때 당시의 백 미터 거리에서만 보여도 벌벌 떤다는 일명 ‘교문 앞의 저승사자’였다.
표현이 좀 과한 부분이 있지만, 이것은 규율을 어기는 학생들에게만 해당 돠는 것이지,
규율을 잘 지키는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따뜻하고 인자한 선생님이시다.
사춘기 아이들의 일탈이 아쉬워서 ‘어떻게 하면 중요한 시기의 아이들이 슬기롭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시다가 착안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교내 우편함’이 등장하게 되었고, 맹활약을 하게 되었다.
소액의 우표도 등장하였는데, 교내의 불우한 학생을 돕는데 쓰였다.
순풍에 돛을 단 듯, 교내 우편함을 이용하는 학생 수는 날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평소에 친구들끼리 쑥스러워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편지로 써 보내니
교우 관계도 더 돈독해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져서 좋았다.
어떤 친구는 등교할 때 꼭 함께 가자고도 하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시험지 답안지를
함께 맞춰 보자는 재미있는 내용의 편지도 보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익명의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반의 편지들은 거의 내가 담당했기 때문에 미리 알 수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익명의 편지를 개봉도 못하고, 누가 보지도 않는데
괜히 혼자 낯 뜨거워서 화장실로 들어 가, 사춘기 소녀의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틈도 없이 조심스레 개봉하는 순간,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특별활동을 같이 하는 친구였지만, 너무 조용한 친구라서 있는 듯, 없는 듯
하더니 편지는 거리낌 없이 써내려 간 거 보면 편지가 체질인듯했다.
특별한 내용도 없었기에 ‘ 왜 익명으로 했을까?‘ 의구심이 들었고
자꾸만 웃음이 났다.
교내 우편함은 그렇게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해 주었고,
점심시간의 교실 풍경 또한 바뀌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편지를 쓰는 친구, 교실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는 친구, 편지를 전해주면 무슨 비밀스러운 내용이 담긴 듯
슬며시 밖으로 나가는 친구 등등,
편지 하나로 인하여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분명 좋은 변화였다.
매점에 가면, 하루가 다르게 편지지가 새 단장을 하고 학생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적은 용돈을 받지만 편지지 고를 때의 모습은 제일 예쁜 편지지를 고르려고 고심하였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들었다.
특히, 선생님께 편지를 쓸 때는 편지지 고르는데 더 신경을 썼고, 마음을 꿰뚫고 계시기라도 하듯
매점 아주머니께서는 더 다양한 편지지를 하루가 다르게 바꿔서 진열해 놓기 시작했다.
교내 우표는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였기에 엉뚱한 나는, 두 개의 우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나 또한 적은 용돈을 받지만, 용돈조차 생각할 수 없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풍에 돛 단 듯, 교내 우편함은 불우 이웃도 돕게 되고 선생님과 학생들의 반응 또한
좋아서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씩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총각 선생님이 계셨는데, 이 선생님이 노처녀 선생님한테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문 하나에 망연자실한 친구들도 많았고, 그도 그렇듯이 그 노처녀 선생님은 인상도 그렇지만,
학생들에게 얼마나 화도 잘 내시는지 학생들이 제일 무서워했고,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아무 죄도 없는 노처녀 선생님의 험담까지 하였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게 분명 죄는 아닌데 험담하는 학생들이 얄밉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런 표현을 하면, 총각 선생님을 좋아하는 영순이는 원래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네가 선생님 좋아해 봐! 그런 말이 나오나?”
하고 말하면서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사실 총각선생님은 우리 마을에서 하숙을 하고 계시기에 어느 땐, 러닝셔츠 차림에 부스스한 얼굴로
수돗가에서 양치질을 하는 모습을 몇 번 봐왔었고,
한여름에는 슬리퍼를 끌고 가게에서
막대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고 나오는 모습을
자주 봐왔으니 무슨 환상이 있겠는가!
어느 날, 학교에서 늦은 귀가를 서두르며 교문을 나서려던 그때,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에 리듬을 넣어서 부르는 것을 보니,
그 총각선생님이 틀림없었다.
선생님께서는 늦었는데 언제 걸어가냐며 자전거 뒤에 타라고 하셨다.
같은 마을에 사니 몇 번 탄 적은 있었지만, 노처녀 선생님 하고 핑크빛 소문이 도는 상황에서
나는 괜히 쭈뼛거리게 되었다.
난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그냥 우편함을 이용해 본 것뿐이고, 교무실에서 말할 수 없는
부분을 편지로 전한 것뿐이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편지가 신경 쓰일 만큼 ,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듬직한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그 표현에 담긴 진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다음날, 친구 영순이에게 사실을 전하니 선생님께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였다.
그 이후로는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님의 편지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게 되었고,
나 또한 선생님께서 그때 하신 말씀이 맞나 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그리 오래가지 않게 만든 일이 일어났으니,
친구 영순이의 큰 눈이 부엉이 눈이 되었고,
난 줄행랑을 쳐야만 그나마 살 수가 있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다름 아닌, 그 두 분의 처녀, 총각 선생님이 결혼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난 자전거를 태워 주며 진심을 얘기해 주던 선생님의 듬직했던 뒷모습이
무슨 이유인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우리들의 축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날은 왔고, 아무 죄도 없는 노처녀 선생님은 한동안
학생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한편으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교내 우편함은 그렇게 큐피드의 화살을 타고 날고 있었는지, 누구와 누구가 좋아한다는 핑크빛 소문들이
들려오던 그때, 처음의 취지와 맞지 않게 가고 있다는 판단하에 아쉽게도 멈추게 되었다.
그래도 최대 수혜를 입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총각 선생님은 연신 싱글벙글
한동안 그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나 또한 아쉽게도 더 이상 두 개의 우표를 붙일 수 없게 되었고, 편지 한 통으로
바뀌었던 교실 풍경 또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한동안의 편지 쓰기로 인하여 ‘교내 편지 쓰기’ 백일장도 열리고, 더 나아가 도내 백일장에서도
우리 학교가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거리에서 우체통 보기도 힘들어져서 아주 가끔 마주하게 되면,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이나
반갑다.
언젠가 '느린 우체통'이라는 대형
우체통도
등장하였는데, 편지가 일 년 후에나 도착하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신기하기도 해서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 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부쳤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주인 없는
빈 집,
빛바랜 우편함에 자리한 지 오래된 편지 한 통...
뭐가 그리도 급하셨던지 내 어머니는 머나먼 소풍길에
오른 후였다.
어머니! 머나먼 그곳에서 보내신 편지는
언제쯤이면 제가 받아 볼 수 있을는지요?
등교 시간이 되면 두 딸이 더 생각나서
하염없는
그리움을 편지로 담아 부치신다던
그때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제가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고 보니 더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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