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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아 레인 Dec 02. 2024

돈가스와 수프

고백

  가을햇살이 내리쬐는 주말의 교정은  어느 때보다도 더 따사롭고 활기차다.

하교를 알리는 방송실의 멜로디가 무색하게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이,

학생들은 일제히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교정을 나서던  은선이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 우와! 그 오빠가 왔어!" 하는 거였다.

일순간에 술렁이기 시작했고, 어디서는 탄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 주인공은  대학생 오빠였다.

친오빠는 아니지만 집안끼리도 잘 아는 처지라, 그냥 스스럼없이 주말이면 가끔씩

교문 앞에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기다리기 일쑤다.


  나는 반갑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괜히

오빠한테 타박을 한다.

"오빠! 오빠는 부끄럽지도 않아? 여학생들이 우르르 나오는데 ㆍㆍ"

오빠는 눈하나 끔쩍 안 하고 오히려

실실 웃으며 "다  동생 같은데 뭘!"

오히려 그런 반응을 보이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연신 웃음이다.


  오빠는 동네에 경양식집이 새로 생겼다면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오빠!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경양식이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내 표정을 보던 오빠는 한마디 한다. "내 동생 돈가스 사줄 돈은 있지!"

내가 돈가스를 좋아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오빠의 주머니 사정을 잘 아는 내가 

극구 사양하는데도, 억지로 자전거에 태워

경양식집으로 향했다.


  정말이지 새로 생긴 경양식집은 너무나 멋지고,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베르디'의 오페라까지 취향저격이다.

철이 없는 나는 너무 좋아서 이곳저곳을 살피며

 연신 감탄사를 자아냈다.

오빠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오길 잘했지? 너 안 온다고 계속 버텼으면 후회 많이 했을 거야!"

오빠의 말 한마디에 나는 내심 '많이 비쌀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빠는 그런 나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주문을 했다.

"여기요! 돈가스 한 개 주세요!"

순간, 나는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라서 "오빠 왜 한 개야?" 하며 대뜸 물으니,

"응! 나는 집에서 먹고 와서 배불러" 오빠는 활짝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둘이 와서

한 개만 시킨다는 것에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어찌하든 실크처럼 부드러운 갈색 망토를 두른 돈가스를 생각하니,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노릇노릇한 수프가 먼저 등장을 하자,

오빠는 얼른 "수프는 오빠가 먹을게! 배불러도 수프는 부드러워서.."

 "오빠! 돈가스도 같이 먹어야지!" 말했지만, 오빠는 손사래를 치며

"이런데 돈가스는 양이 적어!"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오빠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순식간에 뜨거운  

수프 한 그릇을 비웠고,

드디어 돈가스가 등장했다.


  진짜 지금까지 보아온 돈가스와는 달리, 그 크기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오빠는 반짝이는 나이프로 '서걱서걱' 돈가스를

 예쁘게 잘랐다.

"어서 먹어봐!"

"아니야! 오빠가 먼저 먹어야지!"

나는 오빠가 썰어 놓은 돈가스를 빨리 먹어 보고 싶었지만, 그중에 제일 큰 한 조각을 포크로 '쿡'

찍어서 건넸다. 하지만 오빠는 끝까지 사양을 하였고, 철이 없던 나는 혼자서 돈가스 한 그릇을

다 비우고야 말았다.


  그렇게 오빠와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어느 날, 오빠는 군복무를 위해 ROTC 공군으로

임관을 하게 되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아도 내 생일날은 잊지 않고 찾아오던 오빠가 어느 날, 교회 목사님을

뵈어야 할 일이 있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오빠가 다니는 교회를 처음 가보았고, 목사님께서는 오빠와 미리 대화가 오갔던지, 초면인

나를 너무도 반갑게 맞아 주셨다.


   목사님께서는 내게 농담을 건네셨다.

"주민등록증 나왔다면서요?"

'어떻게 아셨을까?' 순간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은 했지만 그때까지도 왜 그런 표현을 하셨는지

알리 없었다.

오빠는 연신 싱글벙글 웃고 계시는 목사님께 "목사님! 제가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인데요,

기도 부탁 드립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고, 목사님께서는 오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는 허공으로 흩어지지 시작했고,

'사랑'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은 나는, 무슨 기도를 하시는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목사님께서는 손수 떡국을 내어 줄 정도로 극진 하셨지만, 나는 떡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교회문을 나섰다.

그렇게 오빠와 나의 어색한 시간은 공원을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에서야,

오빠의 어설픈 '고백'을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너와 돈가스를 두 개 시킬 수 있도록 너를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 거야! 평생 옆에서 지켜봐 줘!"


'이건 또 무슨 소린지!'


  당황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어색한 그 순간을 모면하려 애썼던 내 모습과,

용기를 내어 '고백'했던 오빠의  모습이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그날,주말이 되어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여자'와 '사랑'이란 단어를 되니었다.

다른 것보다 이제껏 나를 '여자'로 보아 왔다는

오빠가 너무 어색했고, 야속하기까지 하였다.

역시나 십 대의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그렇게 오빠를 향해 닫아버린 내 마음을 열지

않은 체 세월만 흐르던 어느 날,

오빠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의

머나먼 '소풍' 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에야ㆍㆍㆍ



 그렇게 젊은 나이에 오빠가 떠난 지  수십 년이

흘렀고, 나 또한 돈가스를 다시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끔씩은 내 소중한

사람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이다.

그래도 뜨거운 수프를 '후루룩후루룩' 들이키던

그 시절의 가난한 대학생 오빠와, 단 한 번만이라도

먹어 봤으면 좋겠다.


 "여기요! 돈가스 두 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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